지난 1985년 11월 29일 추수감사절 이른 아침.
투산에 위치한 아리조나대학(UofA) 미술관에 걸려있던 그림 한 점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칼로 정교하게 잘린 후 도둑의 코트 속에 숨겨진 채 사라진 이 그림은 추상표현주의 미술의 대표적 화가인 윌렘 데 쿠닝(1904~1997)의 유화 '여인 오커'(Woman Ochre)로 현재 가치는 무려 1억 6500만 달러(약 1840억원)에 달한다.
1950년에 그린 '여인 오커'는 가로 102cm·세로 76cm 크기의 작품으로, 나체의 여성을 표현한 그림이다.
쿠닝의 명작을 훔쳐간 도둑은 당시 50대로 추정되는 남녀 커플로 미 연방수사국(FBI)까지 나섰으나 결국 잡지 못하고 장기 미제 사건으로 남았다.
그로부터 32년이 훌쩍 흐른 지난 여름, 마치 영화같은 일이 벌어졌다.
바로 사라진 '여인 오커'가 홀연히, 그것도 중고장터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뉴멕시코주 실버시티의 중고장터에 나온 이 그림은 골동품 가게를 운영하는 데이비드 반에게 다른 골동품과 함께 떨이로 총 2000달러에 팔렸다.
'여인 오커'의 정체가 밝혀진 과정도 흥미롭다.
당초 골동품상인 데이비드는 이 그림이 멋있다고 생각해 샀을 뿐 그 정체를 몰랐다.
그러나 골동품 가게에 내건 이 그림을 본 몇몇 미술 애호가가 쿠닝의 작품이 아니냐고 물어보면서 본격적으로 그는 인터넷을 통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어 데이비드는 아리조나대학 미술관에 연락해 자신이 소유한 그림의 감정을 요청했고 결국 놀라운 정체가 드러난 것이다.
이후 데이비드는 그림을 선선히 미술관에 반환했지만 여전히 한 가지 의문은 남았다.
이 그림이 중고장터에 나오게 된 계기로 그 궁금증은 FBI가 풀었다.
FBI 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인 오커'를 중고장터에 내논 사람은 텍사스주 휴스턴에 사는 론 로즈먼이다.
그는 자신의 고모와 고모부가 사망한 직후 뉴멕시코주에 있는 자택의 정리를 맡게 됐고 이 과정에서 집에 남겨진 그림과 골동품들을 한꺼번에 중고장터에 내논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림을 훔친 유력한 도둑은 그의 고모와 고모부인 리타와 제리 알터 부부가 되는 셈이다.
로즈먼은 "이 사실을 FBI를 통해 처음 들었을 때 마치 달리는 자동차 앞으로 사슴이 뛰어든 기분이었다"면서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했던 고모와 고모부가 도둑질을 했을 리 없다"며 말을 잇지못했다.
이어 "두 분은 명문대학을 졸업한 부유한 교육자 출신으로 은퇴 후 세계여행을 하며 여생을 보냈다"고 덧붙였다.
한편 32년 만에 '여인 오커'를 다시 걸게 된 아리조나대학 측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다.
아리조나대 미술관의 멕 하야드 임시 관장은 "그림을 도둑맞는 뒤 훼손되거나 다시는 볼 수 없게 될까 봐 당시 관련된 사람들에겐 정신적 고통이 매우 컸다"고 말했다.
아리조나대학 경찰의 브라이언 시스톤 서장은 "만약 이 그림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엄청난 이야기를 해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