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8월 12일 오후 3시 30분.
아리조나주 엔텔로프 협곡과 20km 떨어진 리체 바위산 상공에서 폭우가 쏟아졌다.
당시 유럽과 미국 관광객 11명이 사진을 찍기 위해 좁은 사다리를 타고 엔텔로프 로워 협곡 안으로 조심조심 들어가고 있었다.
이들은 10분 후에 최악의 비극을 맞는다.
높이 9m의 거대한 홍수가 협곡으로 들이닥쳤고, 그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물살 속으로 사라졌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이들 중 6명이 엔텔로프 협곡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다시 들어갔다가 사고를 당한 것이다.
그런데 급작스러운 사고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밖에서 보면 평지처럼 보이지만, 평지 안에는 대규모의 캐니언이 숨겨져 있어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엔텔로프 협곡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첫째는 평평한 대지에 생긴 균열이다.
균열로 생긴 틈으로 빗물이 타고 내려와 안쪽에 있는 오렌지 사암을 강한 속도로 침식시키면서 아름다운 협곡을 조각한다.
둘째는 장대 같이 내리쏟는 빗물이 만들어 낸 거대한 파도가 지하 바위를 덮쳐 협곡을 생성한다.
협곡 안으로 들어가면 간간이 비치는 햇살과 짙은 주홍색 줄무늬 사암이 환상적인 아름다움을 연출한다.
그래서 엔텔로프 협곡은 전 세계 사진작가들이 가장 오고 싶어하는 곳이다. 특히 정오 무렵이 사진 찍기에 가장 좋다.
눈부신 햇살이 협곡 바닥으로 떨어져 장관을 만든다.
방문객이 많이 몰리는 로워 협곡 안에는 용 바위, 사자 바위, 하트 등 신기한 모양의 바위가 많이 있어 쏠쏠한 재미를 더 한다.
또한 이곳 일대에 영양(사슴과의 동물)이 서식해 협곡 이름도 엔텔로프로 명명됐다.
윈도우 10의 배경으로 선정될 정도로 숨이 막히는 비경을 간직한 이 협곡은 20년 전 사고로 숨진 이들의 유족에겐 '찬란한 슬픔'을 주는 곳이다.
유족 가운데 한 명은 엔텔로프 캐년에 대해 "때때로 이곳이 너무 아름다워서 싫다"는 글을 남겼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광 중 한 곳으로 손꼽히는 엔텔로프 캐년에는 오늘도 관광객들의 카메라 셔터 소리가 분주하다.
하지만 엔텔로프 캐년의 눈부신 아름다운 뒤켠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는 비극적 스토리가 묻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