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한인문인협회 회원작품] 양지천 -이건형

by 코리아포스트 posted May 2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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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을 배경으로 갈담의 저수지로부터 조그만한 냇물이 따로 빠져나와 흐르는 것이 양지천이다. 

양지천은 호계리 앞과 장덕리 앞을 거처 읍내로 내려와 맑은 물이 유리처럼 내비치고 모래바닥은 금으로 칠해놓은 것처럼 예쁘다.

여름이면 형들과 같이 양지천에 붕어를 잡으러 가면 내가 항상 하는 일은 형들의 옷보따리를 들고 다니는 것이었다. 

형들은 냇물 언덕밑 풀숲을 더듬어가며 손바닥만한 큰 붕어를 잡으려고 애를 썼다. 

그럴 때면 나는 밝고 아름다운 모래 위에 서 있었다. 

물살로 뒷발 밑에 온폭한 구멍이 생기면 조그만한 붕어들이 내 뒷발 밑에 와서 꼬리를 흔들었다. 

그런 귀여운 붕어들을 보고 있으면 마치 집에서 고양이나 개를 데리고 노는 것처럼 즐거웠다.

냇물가의 언덕에는 봄이면 노란 진달래, 여름이면 키가 덜석 크고 갈대 같은 풀들이 서로 다투어가며 자랐다. 

그런 모습의 언덕 밑에는 세월을 모르는 듯 돌아다니는 물고기들이 양지천을 살아 움직이게 했다.

냇물 양쪽 들에는 논과 밭들이 줄지어 섰다. 

봄이면 논에는 새로 파랗게 자라는 밀과 보리가 밝은 햇빛을 받아가며 노래를 하고 여름이면 힘차게 자라는 벼들이 짙은 녹색으로 햇빛을 즐겨워하며 자랐다. 

가을이면 다 익은 벼들이 논을 누렇게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논과 밭과 함께 어우러지는 양지천은 한 폭의 그림이나 다름 없었다.

두어번 굽으며 흐르는 양지천가에는 버드나무 울타리로 싸여있는 조용하고 평화롭게 보이는 초가집이 있었다. 

조용하고 평화롭게 보이면서도 한편으론 무엇이 숨어있는 집처럼 느껴져 마치 동화 속 집처럼 신비롭게 보였다.

양지천에 여름비가 쏟아지면 그렇게 맑던 냇물이 흙물로 변했다. 

물살이 새어 그 물에 배를 타면 노를 젓지 않아도 제대로 흘러갈 것 같았다. 

겨을이면 추운 냉기에 싸늘하게 보이지만 그래도 조용하고 맑은 냇물은 세월을 잊은 듯 묵묵히 흘러갔다.   

무슨 이유였을까, 양지천에는 다른 물고기들은 없고 붕어만이 살았다. 

붕어는 파리처럼 속도도 빠르지 않고 서서히 돌아다녀 작은 내 손으로도 잡기 쉬웠다

양지천도 문명의 세월을 빗겨 갈 수 없다. 

조용하고 그림같던 양지천은 이제 옛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  

인간들이 버린 쓰레기가 곳곳에 쌓여가고 물은 맑지 않아 바닥이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기억하는 양지천은 세월의 때가 끼지 않았다. 

맑은 물에 바닥이 훤히 내비치고 귀여운 붕어가 내 발끝을 여전히 간지럽힌다. 

그곳이 나의 양지천이다. 

나의 양지천은 내 가슴속에서 일편단심 민들레처럼 변치않고 맑고, 조용히 그리고 영원히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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