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한인문인협회 회원작품] 열망은 늙지 않는다 -이건형

by 코리아포스트 posted Sep 1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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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사내 아이면서도 용감하거나 뭣 하나 화끈하게 해냈다고 자랑할 만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남의 뒤를 따라다녔고 남 앞에 나가 뭔가를 해 본적이 없었다. 신기한 것은 중학교 때와 고등학교 때 농구와 배구선수였고 축구와 핑퐁도 남못지 않게 했다는 것이다. 꿈을 꾸거나 뭔가를 열망하던 것은 아마 남부끄럽지 않게 했던 것 같다. 

내 나이 열세살 때, 우리나라가 해방된 지 그 이듬 해, 나는 아버지를 잃었다. 설상가상으로 6.25 전쟁까지 터져 집마저 잃어 나는 겨우 고학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열망하던 대학에 갈 형편이 되지 않아 자살까지 생각했으나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자살할 약이나 칼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용기가 없어서 못했을 뿐이다. 

속담에 "얕은 물이 더 시끄럽다" 하듯이 내가 직업적으로 깊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해군에는 밥 먹고 옷 입으려고 들어갔는데 전자공부까지 시켜주어서 전자는 내 평생의 직업이 되었다. 게다가 해군 시절, 미국 유학과 함정 이수로 미국에 두번 씩 왔었고, 일본에 있는 미 해군 7 함대에 두 달 보내주어 일본을 구경했고, 타고 있던 함정이 동남아시아에 원양 훈련에 참가한 덕분에 다섯 나라를 구경했으니 나처럼 우리나라 해군 덕을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젊었을 때에 친구하고 등산을 하면 산꼭대기에서 밑 계곡을 쳐다보며 우리가 하던 얘기가 "만일 우리가 여기서 뛰면 어떻게 될까?" 였다. "맨 처음 저 오른 쪽 바위에 부딪혀 대가리가 터지고 둘째는 저 오른쪽에 있는 바위에 떨어지면 두어 쪽으로 더 찢어질 것이고 마지막에 저 산 제일 밑에 가서 뼈와 살들이 다 흩어져 찾을 수도 없겠지." 친구와 나는 얘기를 하다말고 서로 쳐다보며 슬픈 미소를 짓곤 했다.

어렸을 때나 젊었을 때 나는 꿈에서 잘 날아 다녔다. 하늘로, 산 위로, 어떤 때는 높은 나무 위까지 날아 올라갔다가 갑자기 떨어지면 꿈에서도 죽지 않으려고 머리를 흔들며 몸부림 치다가 깨어나곤 하던 것이 기억난다. 지금도 젊은 친구들이 Sky diving을 하는 것을 보면 나도 한 번 올라가서 뛰어내려보고 싶다. 용기도 없고 다 늙은 놈이 새삼스럽게 이런 생각한다고 욕하겠지만 만일 뛰어내려 낙하산이 펴지지 않으면 몇 십 마일 속도로 땅에 떨어지는 것이 전부일 것이다. 떨어지기 전까지야 두렵겠지만 땅에 떨어지면 그만일 거라고 생각된다. 

십칠 년 전에 암수술을 받았다. 아버지 쪽이나 어머니 쪽으로도 암으로 수술을 한 사람은 나 밖에 없다. 우리 형제들이 다 담배 피우고 술 마셨는데 나는 젊었을 때부터 그래도 깨끗하게 살아보겠다고 술도 마시지 않았고 담배도 피우지 않았는데 나만 암에 걸렸다. 삶의 심술이 이렇다.  또 미국에 와서 알레르기로 고생을 할 때마다 나는 용기가 없는 병신이고 나서부터 내 몸이 완전한 인간으로 제작되지 않고 해서 내 자신이 나를  "Born defect"라고 불렀다.  

이제 나이가 팔십이 넘었고 생각하는 것이 다 헛일이지만 그래도 나는 꿈을 꾸고 무언가를 열망한다. 지금 이 나이에도 뭔가를 열망하고 꿈꾸는 것이 인간으로 태어난 운명 때문이라면 나는 나의 운명을 달게 받아 다음 생에도 인간으로 태어나고 싶다. 몸은 늙어가지만 열망은 결코 늙지 않는 그런 삶을 다시 한 번 꾸려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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