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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골목은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반 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 동네 골목은 여전히 내 기억 속에서 어린 시절의 향수를 뿌려댄다. 반찬없는 밥일지언정 하루 세 끼 떼우기가 쉽지 않던 시절이었다. 나라가 가난했고 나라 사람들이 가난했다. 동네 아이들은 학교가 파하면 가방을 집에 내팽개치고 소리없이 골목으로 향했다. 동네 들어서면서 시작되는 약간 경사진 골목이었다. 

모여라, 누가 외치지 않아도 어느새 축구장이 되고 야구장이 되고 소꼽장난 도구가 뒹굴던 골목이었다. 그곳에 겨울이면 어김없이 눈이 내렸다. 밤새 내린 눈은 백옥의 카펫을 길게 깔고 아이들을 기다렸다. 아침 먹기가 무섭게 뛰쳐나온 아이들은 눈 위에 크고 작은 흔적을 남겼다. 오징어처럼 납작하게 다져진 눈 위에서 아이들은 사방으로 미끄러졌다. 게으름은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었다. 모두가 분주하게 손발을 움직였다. 학교 가야 할 시간을 원망하면서 아이들은 가끔씩 하늘을 쳐다보았다. 태양은 그날 만큼은 반가운 손님이 될 수 없었다. 눈 녹이는 태양보다 얼굴을 할퀴는 차가운 바람을 아이들은 원했다. 반기지 않은 손님은 또 있었다. 대문을 열고 나오는 어른들은 모두 한결 같아서 똑같은 목소리를 냈다. "이놈들, 조심해." 그들이 염려하는 것은 아이들의 부상이 아니라 눈길 위에서 휘청대는 자신들이었다. 나이가 먹는다는 것은 두려움을 쌓아가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즐거운 일이 어른들에게는 재앙이었다. 

흰 눈길 위에서 아이들이 누리는 즐거움은 길지 않았다. 즐거움이 끝나는 순간은 어김없이 대문 열리는 소리로 시작됐다. 삐걱, 대문을 열고 나오는 아주머니의 양 손이 무겁다. 연탄재는 바닥에서 부서지며 하얀 눈길을 조금씩 메워 나갔다. 아이들의 원망스런 눈길이 몸 곳곳에 박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주머니는 묵묵히 연탄재를 밟아나갔다. 아이들은 올 때처럼 집으로 돌아갈 때도 말이 없었다.  

"연탄재에 얽힌 사연들 있지 않나요?"

지난 주 월요일 문인회 모임에서 한 회원이 얼굴에 옅은 미소를 띠우며 회원들에게 물었다. '연탄재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시인 안도현의 시를 짧게 읊은 후였다. 묻는 회원과 내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조용히 침묵하던 기억을 이곳저곳 들쑤시기 시작했다. 눈길 위로 허연 연탄재가 부서져 내렸다. 아줌마, 연탄재 부수지 마세요, 제발. 반 세기 전에 하지 못한 말이 그 오랜 시간을 뚫고 그제서야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내 앞에 앉은 회원이 강을 사이에 두고 연탄재를 던지는 패싸움 얘기를 시작했을 때 나는 고개를 잠시 밑으로 떨구며 물었다. 내 자신에게.

너는 누구니.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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