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한인문인협회 회원작품] 해방의 날 -이건형

by 코리아포스트 posted Aug 0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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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월이 되어 미국 독립 기념일이 오면 우리나라 독립기념일을 돌아보게 된다. 1940년, 봄이 서둘러 따뜻한 날씨를 안기자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일본군이 "이오지마"에서 뜨거운 패배를 당했다는 것이다. 더불어 연합군이 일본 본토로 쳐들어 간다는 소문이 자자하게 퍼졌다.

나는 국민학교 시절을 전라북도 순창에서 보냈다. 아버지가 순창 전매서장으로 발령을 받았기 때문인데 소학교라 부르던 것을 2차 전쟁 때 국민학교로 바꿔 부르면서 나의 국민학교 생활이 순창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일본놈들 밑에서 경험한 국민학교 생활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얘기를 해도 제대로 이해할 수없는 고달픈 나날의 연속이었다. 겨을에는 저수지를 만든다고 언덕의 꽁꽁 언 땅을 파느라 고생했고 봄과 여름이면 산에 올라가 죽은 소나무 뿌리를 캐어 학교까지 날라야했다. 또 들에 나가 풀을 깍아 말려서 학교에 납부하면 그것은 기병 말들을 살찌우는 먹이가 되었다. 아침 8시부터 12시까지는 명목상 수업시간이었다. 오전 만큼은 공부를 시킨다면서 수업표는 거창하게 만들어 놓고 거의 다 체육시간으로 돌려 창처럼 깍은 대나무 막대기로 군사훈련을 시켰다.

그중에도 전북 남원 농업학교 출신의 선생 하나가 4학년 때 전임왔는데 이놈의 짓은 일본놈의 잔혹함을 무색하게 할 정도였다. 어찌나 어린 우리들을 패고 기압주던지 학급생도들이 이를 갈 지경이었다.

1945년 봄이 들어서면서 믿기 어려운 얘기가 떠돌기 시작했다. 팔월이면 우리나라가 해방이 된다는 얘기를 우리 학생 가운데 기독교 가족 아들에게서 들었다. 그 얘기를 집에 가서 부모에게 전했더니 심한 야단만 돌아왔다. "너 목숨 잃지 않으려면 다시는 그런 얘기를 누구에게도 하지말아라". 그러나 팔자 잎의 미신같은 풍문이 떠돌 때는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시골에 가면 논두덕이나 조그만한 논의 물가에서 자라는 풀이 있는데 그 잎이 한자로 "팔"자처럼 생겼다. 떠돌아 다니는 얘기로는 옛날에는 그런 잎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다. 이런 현상은 한국사람에게 8월에 해방이 온다는 얘기였는데 이런 얘기를 일본 경찰이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얘기가 우리집까지 오자 아버지는 이번에는 우리에게 이런 말하고 다니지 말라는 충고를 하지 않았다.

일본 수상 "도조"가 매일 한,두시간씩 하던 연설도 없어지면서 일본에 원자탄이 떨어졌네, 미군이 일본 가까이 왔네 하는 소문이 늘면서 팔월 십오일이 왔다. 아침에 우리나라가 해방이 됐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나는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었다는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해방이 무엇인지도 몰라 아버지가 얘기를 해주어 그제사 알게됐다

남원 농업학교 나왔다는 한인 선생은 우리 학급 학생들이 때려죽이겠다고 찾아 갔더니 벌써 도망을 간 뒤였다. 둘째형과 친구들은 일본놈 신사에 올라가 신사를 불태웠고 일본 경찰들을 찾아다녔는데 아쉽게도 그놈들의 줄행랑이 한 발 빨랐다.

지금도 눈 앞에 선한 것은, 해방되기 전날은 온 동네가 마치 폭풍 전날 태풍을 기다린 것 같더니 해방날은 폭풍이 지나간 것처럼 조용했다. 온 동네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지 머뭇거리더니 저녁이 되자 골목이 떠들썩해지면서 진실한 자유라는 것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해방은 그렇게 온몸이 소름돋게 기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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