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한인문인협회 회원작품] 첫사랑-이건형

by 코리아포스트 posted Dec 1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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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나이를 초월하는 존재다. 나이가 여든이 넘어도 사랑을 생각하는 겻은 여전하다. 특히 첫사랑에 대한 경험은 누구나 평생 잊어버릴수 없는 일일 것이다. 나 역시 잊을 수 없는 첫사랑의 경험이 있다. 아름다움과 더불어 슬픔을 맛보았던 나의 첫사랑은 육십 년이 지난 오늘도 새삼스럽게 내 가슴에 다가온다.

어렸을 때부터 다른 친구보다 뚱뚱하고 키가 크다보니 나를 좋아하는 여자 친구들이 없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한국 동란시 집에 불까지 나 알거지가 되다시피하자 여자 친구는 커녕 남자 친구도 몇이 되지 않았다. 키가 보통 학급생보다 커서 줄을 서면 나는 제일 뒤에 서거나 제일 앞에 서야했고 키가 크면 속없고 머리도 좋지않다는 우리 옛 말도 있고해서 나를 좋아하는 여학생이나 처녀가 없이 학창 시절을 보내야했다. 예쁜 아가씨를 보면 저런 아가씨가 나의 애인이었으면 하던 생각은 나의 간절한 소망일 뿐이었다.

그런 간절한 나의 소망이 첫사랑으로 이어진 때는 내 나이 스무살때였다. 기독교인으로 세례를 받고 교회 성가대에 들어가자 성가대 회원 중 한 아가씨가 나처럼 키가 크고 조용하고 얌전하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나는 용기를 냈다. 그 아가씨는 듣던 대로 조용하고 선하고 친절하고 마음이 착한 아가씨였다. 자기 아버지는 해군 기관 장교로 근무하다 제대를 했고 오빠는 서울대 법대를 나왔는 데도 직업이 없이 놀고 있다는 가정사를 그 아가씨를 만나면서 알 수 있었다.

그 당시 경남 진해에 "흑백"이라는 다방이 있었는데 그 다방에서는 주로 명곡을 틀어 주었다. 그녀와 함께 명곡을 듣는 시간은 빨리 흘렀다. 가끔씩 영화도 같이 보러다녔는데 그녀와 함께 하는 시간에 내 마음 한구석은 편치 않았다. 아가씨의 언니가 고등학교 영어 선생으로 나이가 스물 여섯이었는 데도 결혼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친구는 자기 부모에게 얘기를 할 수 없었다. 만일 부모가 알게 되면 큰 탈이 날 것으로 서로 몰래 만나는 형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삼 년 후, 교회 소문으로 둘통이 나게 되었다.   

아가씨 집에서는 나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해군 장교도 아닌 사병이고, 가난한 집안의 아들이고, 변변한 기술조차 없다는 이유로 그 아가씨에게 금지령이 내려졌던 것이다. 옛날 진해는 조그마한 해군 마을로 누구 누구이고 누가 무엇을 했다고 소문이 나는 일은 하루도 걸리지 않았다. 가슴이 저릴 정도로 슬펐다. 아버지를 열세 살에 잃었을 때 했던 "나는 술에 절때로 손대지 않겠다"는 맹세를 깨고 스물 여섯에 처음으로 술을 마시고 담배도 한두 번 흡입시켜보았다. 담배는 한두 번 빨다 그 다음날 아침 입속에 모래가 한 주먹 들어있는 것 같아 그만두었지만 술은 취기가 돌면 슬프고 외로운 마음이 달래지는 것 같아 한동안 그만둘 수 없었다. 그 뒤 나는 일에 몰두하며 살았다. 군대의 바쁜 일정 속에서도 야간에는 대학을 다녀 졸업장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 깊었던 사랑이 점차적으로 흐트러지고 옛날 일을 다 잊게 되었다.

첫사랑이었던 아가씨를 잊어버리겠다고 무던히 애쓰던 그 시간들을 추억하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어떻게 암흑같은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사랑과 함께 서러움이 북받쳐 오던 때라 그 고통은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러나 시간은 좋은 약이 되었다. 내 마음과 정성을 다 바친 나의 첫사랑은 지금 고스란히 사랑 그 자체로 남아 있다. 그 시절로 돌아가 다시 한 번 내 마음과 정성을 다 바치고 싶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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