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한인문인협회 회원작품] 눈물의 길 -최혜령

by 코리아포스트 posted Jan 26, 2018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new1.JPG



간밤엔 뜬눈으로 새웠다 

아직 깊은 잠에 빠져 이리저리 포개져 있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아내와 어머니는 언제 일어났는지 그림자처럼 움직인다 

짐이라야 양탄자 벽걸이 한 개, 담요 한 장, 양푼 두어 개뿐인데 노끈으로 묶기를 반복한다

고통스러운 일 앞에서 가슴이 먹먹하면 그들은 말없이 하던 일만 되풀이 한다

사크홍바! 

그는 오늘 중으로 가족을 데리고 마을을 떠나야 한다 

정한 기한을 이미 일주일이나 넘겼다 

이번에도 버틴다면 어쩌면 살해당할지도 모를 일 

서둘러 문밖으로 나갔다

지친 하늘이 새벽녘 서릿발로 고원을 덮고 해는 아직도 등을 돌리고 있다

사냥을 위해 허리춤에 차고 다니던 칼과 엽총을 들고 호건* 주위를 맴돈다

어디서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하나!

엄동설한에도 끓는 심장은 무엇을 해야 하나!

밭은기침으로 콧물을 튕기며 바람 따라 집 주위를 돌고 있다

영혼은 아이들과 잠을 자고 있는데… 

그 역시 하는 일만 계속할 뿐이다

싸늘한 벌판 저쪽에서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아~ 누가 온다

기병대 대장이 뉴에코타 협약의* 문서를 내밀며 나팔을 길게 분다

삶은 옥수수 한 줌, 순무 몇 뿌리, 끓인 물 담은 물통을 짐꾸러미 위에 올리고 집을 나선다 

태양에게 외면당한 눈발이 사방으로 흩날린다 

달랑 걸친 홑겹의 옷에 가죽신을 여미고 영문도 모른 채 선잠을 깬 아이들의 칭얼거림을 마음으로 꼭 안는다  

눈물이 볼을 타고 씰룩거리는 입가로 줄줄 흐르는데 오천리 장도 돌아오지 못할 길 떠난다

따라오지 못한 영혼은 정지된 화면으로 남겨둔 채


*눈물의 길(Trail of Tears): 1830년 앤드루 잭슨 대통령의 이주법으로 집행된 아메리칸 인디언 강제 이주를 눈물의 길이라고 불렀다.

*호건(Hogan): 아메리칸 인디언들이 살던 집

*뉴에코타 협약(Treaty of New Echota): 미국 조지아 주의 뉴에타코에서 미국 정부관리와 체로키족 소수의 정치 지도자 간에 맺어진 협약이다. 이 조약은 1836년 개정되어 비준되었다. 조약은 전 체로키 국가가 인디언 준주가 있는 서부로 이주한다는 내용이 담긴 조약이다. 이 조약이 체로키 국가 위원회에 승인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미국 상원에서 비준되었고, 법적인 효력을 갖는 '눈물의 길'이라는 강제 이주를 집행하게 된다.


Articles

6 7 8 9 10 11 12 13 14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