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캐년을 가다 (7) 글: 금진희 사진: 오화승

by 코리아포스트 posted Apr 20, 201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new2.JPG

 

 

요즘 나른하고 무기력하고 입맛도 없고 의욕도 없고.. 혹시 봄 타시나요? 이럴 때 보약 한 재 드시면 도움이 될까요? 그렇다면 지친 삶의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한 시간만 운전해 나가보세요. 길가에 아름답게 피어난 갖가지 들꽃과 그 사이를 오가며 우아한 춤사위를 펼치는 나비들, 파아란 하늘아래 새파랗게 물오른 나뭇잎들, 졸졸 흐르는 시냇물과 새들의 노랫소리.. 가슴이 뻥 뚫리고 힘이 불끈 솟아날 것입니다. 자연과 함께 생동하는 풋풋한 봄의 에너지로 재충전하고 이 짧은 봄을 만끽해봄은 어떠실지요? 그야말로 영육간을 살 찌우는 최상의 보약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망의 새해를 운운하며 쓰기 시작했던 이 산행기.. 바쁜 삶 복잡한 세상을 살다보니 산행의 기억은 춘삼월 아지랑이처럼 가물가물, 흐르는 시간과 더불어 '새해 첫산행'이란 타이틀은 무색해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생에 한 점 빛으로 장식됐던 그날의 생생한 감동은 그저 회상만으로도 뿌듯하고 아련한 추억으로 여울져옵니다.

오늘은 오랫동안의 휴식시간을 끝내고 부지런히 걸어올라 지상에서 최고로 아름다운 대협곡, 그 나머지 오르막 길을 걸어 우리의 그랜드 캐년 대장정을 마무리 해볼까 합니다. 

그리고 잠깐요.. 지난 글에서 콜로라도 강 위의 두 다리 순서가 바뀌었음을 정정합니다. 우리가 건넜던 다리는 먼저 블랙 브릿지고 그 다음이 실버 브릿지였음을 말씀드립니다. 시간이 흐름에 기억의 해상도가 떨어짐이 이런데서 여실히 들어나네요. 죄송합니다. 더 정확한 정보를 원하시는 분들은 다음의 링크로 알아보시면 더 자세한 정보를 얻으실 수 있으실겁니다. http://grandcanyoncvb.org/links 그리고  https://www.nps.gov/grca/planyourvisit/trail-distances.htm

콜로라도 강변을 끼고 걸어가는 약 1.7마일의 River Trail. 심한 경사도없고, 볕은 따사롭고, 미풍은 기분좋게 얼굴을 쓰다듬고, 시원한 강물의 노래를 들으면서 걷는 이 길은 산행 통털어 제일 즐겁고도 달콤한 꿈결같은 환상의 구간이라 할 수 있지요. 물 한방울 구경 못하는 South Kaibab Trail과는 달리 이 Bright Angel Trail 은 산이 높음에 골짜기 또한 깊어 눈 녹은 시냇물이 쉼없이 산 계곡을 타고 흘러내립니다. 산 모퉁이를 돌면 시냇물이 흐르고, 물 위에 난 징검다리를 건느면 굽이굽이 작은 오솔길이 이어집니다. 경이롭도록 아름다운 풍광에 열린 입은 다물어지지 않고 룰루랄라 콧노래 흥얼거리며 걷는 이 길.. 지금 이 순간의 여유를 최대한 만끽하시길.. 왜냐하면 이 길 끝에 다가올 '악마의 비탈길', Devil's Corkscrew라고도 불리고, 소위 Death Zone(한여름엔 최고 130도 까지 오르기에)으로 일컬어지는 공포의 길로 곧 접어들기에 말입니다. 다행히 1월의 햇빛은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았고, 림 위의 그 매서웠던 칼바람도 없었기에, 간간 쉬어가며 수많은 산 모퉁이를 돌고 시냇물 건너 오르노라니 팀원 모두 무사히 이 구간을 통과할 수 있었지요. 강이 끝난 곳에서 인디안 가든까지의 그늘 한 점 없는 지리한 길, 80도에 육박하는 한낮의 태양, 그 아래 나와 동행하는 작은 나의 그림자를 밟으며 오르는 약 3마일의 길.. 가히 극기훈련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이 길을 오르면서 가장 깊숙한 내면의 자신을 만나고, 그 '참 나'와 마주하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오로지 "지금"으로만 존재하는 이 순간을 마주하며 한걸음 한걸음 걸어 올라갈 뿐입니다. 

아~ 드디어 인디안 가든! 콜로라도 강에서 4.7마일, 림으로부터 4.5마일 해발 3800ft인 이곳은 물이 넘쳐 흐르고, 아름드리 cottonwoods(포플러의 일종) 나무숲이 울창한 오아시스. 높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지고 안온하고 평평하게 난 작은 운동장 앞으로는 제법 큼직한 개울물이 신나게 흘러내립니다. 물이 퐁퐁 솟아오르고 초목으로 푸르른 이곳은 동물들에게도 단연 사막의 오아시스.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도 유유히 풀을 뜯는 사슴가족 그리고 나무 위를 부지런히 오르락거리는 다람쥐들.. 이렇게 그늘 아래 앉아 쉬면서 물을 마시고 간식과 과일을 먹으며 한껏 자연에 취해 휴식삼매에 들어봅니다.  여기서 화장실 용무도 보시고(3마일 Resthouse까진 화장실이 없음) 그리고 이곳에서 물맛 좋은 그랜드 캐년의 물을 넉넉하게 담아가는것 잊지마시구요.(참고로, 식수는 이 수도관을 통해 나오는 물만 드세요. 주변에 눈 녹아 흐르는 물은 깨끗해 마셔도 되겠지라고 생각하셨다면 잘못입니다. 광물질이 녹아든 물은 인체에 무척 해롭기 때문에 마시기 전에 반드시 정수를 해야 한답니다)

그리고 여기서 잠깐! 고산증이 있거나 위장이 약하신 분은 오르막 길을 오를 때엔 가능한 위장을 비워주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속이 헛헛하시다면 소량의 고단백 고칼로리의 음식을 조금만 드시길 추천합니다. 그리고 이쯤에서 근육통이나 고산증을 덜어주는 Advil이나 Ibuprofen 한알 드시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먹고 마시고 서로 격려하며 한동안 달콤한 휴식을 취한 우리 일행은 예정보다 좀 늦어진 4시가 다 되어 인디안 가든을 출발했지요. 해도 많이 기울고 고도가 높아졌기에 기온은 급격히 떨어져 갔지요. 이에 대비해서 우리는 단단히 챙겨입고 안전을 점검하고 휴식으로 재충전된 두 다리로 힘찬 걸음을 바쁘게 옮겼드랬지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