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적인 더위 속 96명 희생 딛고 완공된 '후버댐', 왜 미국의 랜드마크 중 하나로 손꼽히나?

by 코리아포스트 posted Mar 26,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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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조나 한인들이 라스베가스를 찾을 때면 한 번은 거쳐가게 되는 후버댐(Hoover Dam). 아리조나와 네바다 주 경계에 위치한 후버댐은 댐 크기를 측정하는 기준(댐의 높이나 길이·저수량·발전능력) 중 어느 기준으로도 세계 최고는 아니다. 물론 후버댐이 지어진 1930년대에는 가장 높은 댐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의 가슴에 남아 있고, 지금도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건설 과정에 깃든 프론티어 정신 때문일 것이다.

후버댐이 건설됐던 1930년대 미국인들은 대공황으로 많은 실업자들이 생기는 등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었다. 테네시강 유역 개발과 함께 뉴딜(New Deal) 정책의 일환으로 기획된 후버댐 건설을 위해 일자리가 필요한 노동자 2만 1000여명이 미 전역 47개 주에서 이 척박한 땅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의 가족은 전기도 없고, 물도 부족한 가운데 천막을 치고 살았다. 건설 도중 96명의 희생자가 생길 만큼 지형적인 악조건과 평균 기온 섭씨 48도의 살인적 더위를 극복하고 이 역사적인 구조물을 건설했다.

후버댐 건설은 당시 대공황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던 미국인들에게 수많은 고용 창출은 물론 연관 산업의 수익 구조를 개선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제공했다. 무엇보다도 어려운 때 악조건 하에서 거대 건설을 완공한 미국의 저력을 보여준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토목학회는 후버댐을 미국 내 7개의 경이로운 구조물(One of America's Seven Modern Civil Engineering Wonders)의 하나로 선정했다. 또 미국 건설 역사에 있어서 역사적인 건축물(Historic Civil Engineering Landmark)로 지정했다.

콜로라도강 주변 저지대는 매년 봄이면 로키산맥에서 녹은 눈으로 인해 범람하는 바람에 피해가 컸다. 이 피해를 줄이고, 나아가 자연의 거대한 힘을 동력화하기 위한 인간의 갈망이 미국 내에서 가장 덥고 건조한 지역에 댐을 건설하게끔 했다. 초기에 많은 지질학자와 측량학자들은 강력한 콜로라도 강물을 이용할 수 있는 댐 건설 최적의 장소로 볼더협곡(Boulder Canyon)을 골랐다. 그래서 초기에는 볼더댐으로 불렸다. 그러나 이후 댐 높이에 대한 고찰이 있은 후 블랙협곡(Black Canyon)에 건설하면 볼더협곡처럼 댐이 높을 필요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어 블랙협곡으로 대상지가 변경됐다. 미국 정부는 이 건설 사업에 대한 입찰을 실시했지만 너무 힘든 사업이어서 하나의 건설업체가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인 만큼 미국 내 6개 대형 건설사가 공동으로 사업을 수행하게 됐다. 1931년 공사가 시작돼 1935년 완공했다. 처음 책정한 공사비는 1억 6500만 달러였다. 비용  대부분은 댐 완공후 생산한 전력을 판매해 미국 국고에 이자까지 붙어 환수됐다. 물의 무게가 곡면으로 된 댐의 벽면으로 전달되고, 다시 그 하중이 협곡의 측면으로 전달되면서 벽에 압력을 가하는 방식인 콘크리트 아치 중력 형태의 댐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먼저 강의 물줄기를 우회시켜야 했다. 물줄기 우회를 위해 지름 56ft(약 1706㎝) 짜리 4개의 우회 터널(네바다쪽 2개, 아리조나쪽 2개)을 먼저 만들었다. 협곡으로 난 길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작업자와 장비는 배로 운반해야만 했다. 특히 그 해 여름은 섭씨 60도까지 올라갈 만큼 살인적 무더위가 기승을 부려 터널 굴착 작업은 유난히 힘들었다. 터널 안에서 암석을 뚫고 발파하는 작업은 일산화탄소 중독 등을 초래할 수 있는 상당히 위험한 작업이었다. 두 개의 터널이 굴착된 후 공사 현장을 물의 범람으로부터 막기 위해 두 개의 코퍼댐(cofferdam·가물막이댐)을 만들었다. 상부 코퍼댐은 강물의 우회가 시작되기 전인 1932년 9월에 시작됐다. 말발굽 형태 제방이 강의 네바다주쪽 코퍼댐을 방어했다. 아리조나주쪽의 터널이 굴착된 후에야 강물은 우회해 터널로 향하게 됐다. 이후 하부 코퍼댐이 완성됐다. 두 개의 코퍼댐과 암석 장벽, 우회 터널이 완공된 직후인 1933년 홍수가 났다. 기술자들은 혹시나 코퍼댐이 무너지지 않을까 무척 염려했지만, 우회 터널이 넘쳐나는 물을 잘 흐르게 하였고, 비로소 본 공사인 후버댐 건설 공사가 시작됐다.

오랜 세월 협곡의 암벽은 침식되고, 수많은 기후 변화로 인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했기 때문에 본격적인 댐 건설에 앞서 암벽의 느슨한 부분들이 제거되어야만 했고, 동시에 협곡 암벽의 접촉 면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했다. 이런 작업을 위해서는 특별한 작업자가 필요했다. 이 작업을 시행한 노동자들을 '하이스케일러(high scaler)'라고 불렀다. 하이스케일러는 로프에 의지한 채 암벽에 매달려 폭파 작업 등을 했다. 무척 위험하고 육체적으로 힘든 일이다. 그만큼 당시 일당 5.6달러를 지급받았는데, 이는 모든 종류의 작업자 중 최고였다.

다른 건설 공사와 마찬가지로 댐의 기초 부분은 영속적인 구조물을 만드는 데 제일 중요한 요소이다. 이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강 하부에 있는 진흙과 오물을 파내야 했다. 파워셔블(power shovel·굴착기의 일종)을 이용해 약 50만 큐빅 야드(약 38만2500㎥)의 진흙과 오물을 제거한 후에야 40ft(1219㎝) 아래에 있는 암반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이후 많은 작업을 거쳐 1933년 6월 댐의 기초(foundation) 부분에 첫 콘크리트가 타설됐다. 댐의 기저부를 만들기 위해 230개의 거대한 콘크리트 블록을 쏟아부었다. 1935년 5월 29일 마지막 콘크리트 블록이 만들어졌으며, 전체적으로 440만 큐빅 야드(336만㎥)의 콘크리트가 사용됐다.

댐이 완성되자 댐 공사로 생겨난 미국 최대의 인공 호수인 미드호(Lake Mead)에 물을 채우기 위해 우회 터널은 닫혔다. 미드호는 콜로라도, 버진, 마리 등 3개의 강줄기가 후버댐에 막혀 생긴 인공 호수다. 총 면적 640㎢, 길이 176㎞ 호수에 물을 채우는 데 꼬박 6.5년이 걸렸다. 급격한 압력 변화를 줄이고 물 채우기로 인한 작은 지진을 방지하기 위해 천천히 물을 채워야 했기 때문이다.

후버댐이 생기면서 미국 남서부와 멕시코의 황야였던 땅은 미국에서 가장 비옥한 곡창 지대로 바뀌었고 수력 발전소에서 생산되는 전기는 캘리포니아, 아리조나, 네바다에 공급되고 있다. 현재의 후버댐은 연간 900만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다녀갈 만큼 관광 명소 역할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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