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닉스의 자랑스러운 한인 장황남 박사 -이인선

by admin posted Jun 1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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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만나고 온 장황남 님을 그동안 의사, 뛰어난 화가, 신실한 장로님, 남편의 선배님으로만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점심을 함께 나누며 한국 이야기를 하던 중 아주 탁월한 분, 피닉스의 자랑스런 인물로 이제야 알아뵙고 여러분들께 소개를 해드리고 싶어서 이 글을 올립니다.

전남 광주의 조선대학교 내에 '장황남 정보통신 박물관'을 기증하신 분.

그분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그 일을 해내시느라 너무나 애쓰셨더군요.

오래도록 이름이 남아 그분의 업적을 기릴만큼 대단한 일, 많은 젊은이들에게 꿈을 제공해 줄수 있는 큰 일을 이루셨어요. 

문화재 589호로 등록되기까지 한 그 박물관에는 23개의 방이 있구요, 정보통신의 170년의 발자취를 자세히 밝히느라 4500 여개의 관계 물품들을 전시하였답니다.

예를 들면 세계 최초의 전신기, 최초의 모르스 키로부터의 발달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전시물들, 최초의 축음기, 라디오,  TV 영사기, 촬영기, 안테나, 에디슨의 축음기, 최초의 진공관, 뮤직박스, 스피커, 리모트 컨트롤, 세계 최초의 이동전화에서 핸드폰의 발전과정 등등이 전시되어 있지요.

유명한 벨 연구소도 본따 만들고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닌 체험도 할 수 있도록 20여군데 체험장도 만들었는데 인기 있는 것 중에 드론 체험관도 있다네요.

어린이들뿐 아니라 일반인들, 그리고 전문가들까지 와서 즐거운 시간을 가진다고 합니다.

한번은 스탠포드 대학을 졸업하고 실리콘 밸리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이 와보고 스탠포드 대학의 박물관보다 내용물이 더 많고 훌륭하다고 놀랐다고 말했답니다.

전시품 중에 17개는 세계 최초의 발명품이 있고 21개는 전 세계에 오직 이곳 한 곳에만 있다고 하는데요, 의사로 번 돈 거의 모두 그 물건들을 수집, 정리하는데 쓰셨다지요.

마침 사모님이 약사로 평생 일을 하셨기에 가능하였답니다.

장황남 박사는 의과대학 재학시절에 햄 아마추어 통신사 동아리로 활동하였었고 그 일을 계기로 이처럼 놀라운 일을 하게 된 것이지요.

아니, 중학교 때부터도 남달랐어요.

양철 도시락 통마다 구멍을 내고 라디오를 조립하여 맨날 어른들의 야단을 들을 정도로 열중하셨죠. 

헌 통신기구들을 수리하는 손재주와 흥미가 남달랐는데 그 연결선상에서 대학병원에서 의료기구가 고장나면 그 솜씨로 고쳐 쓰게 만드는 비상한 능력이 있으셨답니다.

뉴욕 로체스터에 사는 동안 한 클리닉에서만 내과 개업을 하고, 77년부터 한 집에서만 사셨는데 이사 못한 이유가 그 많은 물건들을 그 넓은 집 지하실과 지붕밑 방에 저장하느라 그랬대죠.

하도 골동품이야, 옛날 먼지 나는 물건들이야 집으로 끌여들여 사모님은 집도 헌집인데 헌물건으로 가득채운다고 불평을 하기도 하고 힘들어 하신 적도 많았다지요. 

2013년 은퇴하신 다음에 조선대학과 연결이 된 것은 우연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지방자치 단체와 서울의 대학들, 민속 박물관과도 연결이 되었지만 사모님의 아버지께서 제2대 총장을 하시기도 했고 동생이 공대 교수직을 하는 등 관련이 있기 때문에 조선대학으로 정해지게 되었답니다.

일사천리로 승인이 나고 컨테이너 두개의 분량을 한진회사가 실어 나르기 전 열흘이나 그 모든 물품을 일련의 번호를 메기고 일일이 방마다 청사진을 미리 만들어 지휘하셨다네요.

한국까지 수도 없이 왕래하고 또 직접 8개월간을 체류하시며 진두지휘를 하였답니다.

드디어 2014년 9월말에 개관할 때의 감격이란!

박사님도 눈물을 감출 수 없이 흥분하시며 그동안 사모님의 도움과 수고도 치하해 주셨다며 그날의 감동을 오늘도 생생히 느끼도록 전해주시더라구요. 

'허름한 옷을 입고 전시장 구석에서 몇날 며칠 기계들을 고치는 모습은 참으로 눈물겨운 겸손한 모습이었노라.'

함께 일하던 분의 증언도 있었답니다.

고생은 많이 하셨지만 생의 보람을 이룬 것이 얼마나 흡족하실까...부러웠습니다.

그런 엄청난 일을 이루기 위해 별별 에피소드가 많았는데 그 중 한가지만 소개하면 금성 라디오가 58년 처음으로 만들어 졌는데 그것을 구입하려고 하니 하필 그즈음 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2억을 훗가 하며 내놓치도 않더라는 것. 

그래서 할 수 없이 60년도에 만든 것을 구입하였는데 그것도 만 팔 천불이나 돈을 내고 사셨다는 이야기. 

그럼 그 안에 전시된 모든 것의 가치는? 상상도 못하겠지요?

광주와 한국의 명소가 된 장황남 정보통신 박물관!

그 분의 손때 묻은 하나하나 소중한 명품들...평생의 수고의 결정판...

한국에 가기 전에 알았으면 꼭 보고 왔을텐데 참 아쉽습니다.

여러분들 한국 가시면 꼭 가보고 오세요! (2018년 6월)

 

* 참고

http://news1.kr/articles/?1870341

http://changicmuseum.chosu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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