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홍 목사의 삶과 신앙] 희망

by admin posted Aug 0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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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군생활을 경기도 포천의 보병 부대에서 했습니다.

매달 60킬로미터 이상 행군을 했고, 매년 2월 초 가장 추운 때가 되면 200 킬로미터 행군도 했습니다. 

2년 반 군생활을 마치고 제대할 때 행군했던 총 거리가 거의 4천 킬로미터라고 훈련 기록 카드에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 보병 훈련 중 가장 힘들었던 훈련이 미군과 함께 하는 팀스피리트(Team Spirit) 연합 훈련이었습니다. 

2주 동안 거의 실제 상황에서 전투를 하듯 벌이는 훈련이었는데, 한 번은 야간 행군 중 너무 힘들어 부대원들이 울면서 길을 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기 저기서 터져 나오는 울음 소리에 저도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리며 걸었습니다. 

그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순간이었습니다.

지난 주 플래그스태프(Flagstaff)에 있는 험프리산 봉우리 Humphrey Peaks를 다녀왔습니다. 

12,633 피트 높이로 3,851 미터입니다. 

백두산이 2,744 미터이니 훨씬 높은 산이지요. 

산 중턱 정도까지는 차로 올라가고 등산은 약 4.8 마일 올라가 정상에 도달합니다. 

왕복 거의 10마일을 걷는 것이죠.

그런데 몬순 시즌이기 때문에 기상 변동이 심합니다. 

아들과 교우 두 분, 모두 넷이서 올라갔는데 정상을 바로 코 앞에 두고 돌아서야 했습니다. 

천둥과 번개가 내려치면서 폭우가 쏟아지더니 곧바로 굵은 우박으로 바뀌며 위험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내려가는데 우리는 조금만 더 가면 정상이라는 생각과, 또 '괜찮아, 군대에서는 더 했는데' 하는 이상한 자만심이 겹쳐서 계속 올라갔습니다. 

그러다 도저히 발을 옮길 수 없는 상황에서 결국 돌아섰습니다.

저는 돌아서 내려오는 초반 왼쪽 정강이 근육에 경련이 일어났습니다. 

우박을 흠뻑 맞으며 근육을 풀고 절룩거리며 내려오는데 군대에서 울며 행군했던 기억이 되살아났습니다. 

우박이 너무 세져서 걷기가 힘들어 작은 바위 뒤에 아들과 쪼그려 앉아 잠시 우박을 피하는데 아들이 너무 추워했습니다. 

비옷은 입었지만 그 속에 입은 옷이 얇은 여름 옷이어서 온 몸을 떨고 있었습니다. 

저는 비옷은 입지 않았고 1회용 비닐 덮개를 덮고 있었는데, 그 안에 아들을 들어오라고 해서 함께 체온으로 몸을 녹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내려갔고 우리가 맨 마지막이었는데, 좀 위험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도가 절로 나왔습니다. 

"아버지, 주여"

외마디 기도를 계속 반복했습니다. 

"아버지, 주여, 아버지, 주여 ……."

가만히 앉아 있으니 더 추워져서 그냥 내려가자고 했습니다. 

우박과 폭우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면 물이 불어나 오히려 더 위험할 것 같았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1시간 반 정도 내려오니 비가 그치고 따스한 햇볕에 젖은 옷들이 말랐습니다. 

내려오는 내내 아들이 제 뒤에서 저를 보호해주었습니다. 

비닐 덮개 속에서 우박을 피하며 체온과 정을 나누었고, 한 쪽 다리를 절룩거리는 아버지가 걱정스러웠는지 뒤에서 함께 걸어왔습니다. 

우리가 마지막이었는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함께 내려온 백인 부부가 있었습니다. 

뉴멕시코에서 오신 6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부부였습니다. 

남편이신 분이 끝까지 부인을 보호하고 위하는 모습이 감동스러웠습니다. 

춥고 힘들고 위험한 중에도 그분들 때문에 위로가 되었고 힘을 얻었습니다. 

마크 트웨인이 "인간에 대해 알면 알수록 우리 집 개가 더 좋아진다"고 하며 인간에 대한 비관론을 말했는데, 백인 부부 그리고 제 아들을 보며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소망이 있고 가능성이 더 크다는 믿음이 일어났습니다. 

주일 설교 제목이 사도행전 18장 10절의 "나의 백성"이었는데,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절망하고 있던 사도 바울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시어, '이방인들 중에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복음을 받아들이는 나의 백성이 많다' 고 하시며 바울을 위로하시고 힘주셨다는 내용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소망이 있습니다. 

절망하기 보다는 희망을 얘기하고 힘있게 일어서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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