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홍 목사의 삶과 신앙] 친구 (2)

by admin posted Sep 0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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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친구(1)에 이어 계속됩니다. 

중풍병에 걸린 친구를 침상에 들고 예수님이 계신 곳에 도착했습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단 한 걸음도 집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친구들 사이에 잠시 침묵이 흐르는데 한 친구가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지붕을 뚫자. 구멍을 내서 얘(중풍병 친구)를 내려 보내는 거야. 어때?"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았습니다.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으니까요.

침상을 내릴 밧줄을 구해놓고 친구들이 지붕 위로 오릅니다. 

당시 지붕은 주로 테라스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외부 계단이 있었고 평평했습니다. 

지붕을 뜯어내기 시작합니다. 지붕은 나무 들보 위에 갈대와 나뭇가지 그리고 약간의 진흙을 얹어 만들었기 때문에 쉽게 뜯고 붙일 수 있었습니다. 아주 단순한 구조였죠.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집안에서 말씀을 전하고 계시는 예수님, 놀라운 가르침에 푹 빠져 있는 사람들. 

그런데 돌발상황이 벌어집니다. 고요한 호수에 돌이 떨어지듯 지붕에서 무언가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먼지와 마른 갈대 같은 지저분한 것들, 쌓였던 먼지 덩어리들, 처음에는 몇 조각 떨어지더니 점점 그 양이 많아지고 아예 흙덩이가 우박처럼 쏟아집니다. 사람들은 어수선해졌고 예수님도 말씀을 멈추십니다. 

온 시선이 일제히 구멍 난 천장으로 쏠립니다. 여덟 개의 손이 부산하게 천장의 구멍 크기를 늘리고 있습니다!!

네 명 친구들의 관심은 오직 중풍병 친구뿐입니다. 완전 이성을 잃은 채 친구를 위한 섬김과 사랑, 오직 그것뿐이었습니다. 비이성적인 섬김, 열정적인 헌신, 계산하지 않는 희생, 저들은 진정한 '친구' 그 자체였습니다.

저들을 바라보시는 주님은 어땠겠습니까? 

뚫린 지붕 구멍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 그 햇살 속에 자욱한 흙먼지, 자신을 내려다보는 네 친구들의 영롱한 눈동자. 햇빛과 흙먼지 때문에 눈이 시려 선명히 볼 수는 없지만, '친구를 예수님께 데려갈 수만 있다면' 하는 순수한 열정이 쏟아져 내려오는 것을 주님은 느끼셨을 것입니다. 

그들이 주님께 무슨 말을 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주님도 그들에게 아무 말씀 없으셨습니다. 단지 자욱한 흙먼지와 강렬한 햇살을 뚫고 전해져 오는 그들의 열정, 사랑, 섬김, 희생, 비이성적 우정, 그것이 주님의 마음을 찡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침상에 매인 채 달려 내려온 그 병자를 보시며 주님이 부드럽게 말씀하십니다.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그 순간 침상 위에 누워 있던 병자의 마음은 어땠겠습니까? 

풍을 맞은 뒤 누구로부터도 죄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실 그는 누워 있으면서 분노, 교만, 미움, 무관심, 그런 것들이 내면 가득 들끓었음을 인정합니다. 

예수님의 "죄사함" 말씀에 일어날 힘이 생겨났고 걷게 되었습니다.

방 안에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무리 사람들이 많아도 자기들만의 자리가 언제나 마련되는 사람들입니다. 종교적으로 가장 충만한 영성을 지녔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래 믿었고 성경도 많이 알고 자기들끼리 연대의식도 강고한 기득권층입니다.

그런데 저들을 보십시오. 저들은 데려올 친구가 없습니다. 영적으로 충만하고, 랍비라고 인정받지만 예수님에게 데려올 친구는 없습니다. 

굉장히 이성적인 사람들입니다. 성경 실력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선생 노릇하지만, 정작 중요한 비이성적인 열정, 사랑, 우정, 섬김, 희생 같은 것은 저들에게 없습니다.

세월이 흘러 중풍병자가, 아니 이제 나았죠. 

나아서 예순 살쯤 되었다고 상상해 봅시다. 

비이성적 헌신으로 자기를 사랑했던 친구들이 하나 둘 보행기를 의지하고 지팡이를 의지하게 됩니다. 

자기는 오히려 완벽한 건강으로 두 발로 걷고 뛰는데, 친구들은 하나 둘 그렇게 늙어가고 세상을 떠납니다.

예순 살이 된 중풍병자는 벽에 걸어놓은 침상을 보면서 자기를 위해 지붕을 뚫었던 친구들을 떠올립니다. 

돌아보니 그가 얻은 최고의 선물은 중풍병에서 나음을 얻은 것이 아니라 친구들이었습니다.

3주 전 여름 휴가 때 캐나다 밴쿠버를 들렀습니다. 

초등학교 친구를 만나 2박 3일 함께 있으며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먹고, 보고, 떠들고, 같이 다녔습니다. 

하루에 네 끼를 먹었는데, 네 번째로 먹은 자장면 맛은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피닉스로 돌아와 보니 친구와 같이 먹어서 그런 맛이 났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인 박용재의 '사람은 사랑한 만큼 산다' 중 한 부분입니다. 

 

사람은 사람을 사랑한 만큼 산다 

홀로 저문 길을 아스라이 걸어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나그네를 사랑한 만큼 산다

예기치 않은 운명에 몸부림치는 생애를 사랑한 만큼 산다

사람은 그 무언가를 사랑한 부피와 넓이와 깊이만큼 산다

그 만큼이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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