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정의와 자비의 충돌

by admin posted Dec 2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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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지구인들은 '얼마나 공정하게 학생들을 대우 할 것인가?' 와 '어느 선까지 자비와 사랑을 베풀어야 할 것인가?'의 문제로 충돌하고 다툰다. 

두 입장 다 일리가 있고 중요하다. 

특별히 특수교육에서는 이 문제가 더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얼마전 실습을 하고 있는 특수 교실에서 이러한 충돌이 일어났다. 

나의 바비 선생님은 눈물을 흘리며 속상해 하셨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하다.  

이 반에 마이클(가명)이라는 학생은 초등학교 3학년인데도 불구하고 아직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 

그래서 걸음마 하는 아기들이 차는 '풀업'이라는 기저귀를 차는데, 이제는 이 기저귀가 마이클의 왕성한 신진대사를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래서 조만간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하는 시점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  

마이클의 엄마는 지난 5년간 마이클을 데리고 이것저것 다양한 방법으로 배변훈련을 해보았지만 실패했다.  

겨울방학을 앞두고 엄마는 단단한 결심을 하고 중대 발표를 하였다.  

내용은 겨울방학 동안 집에서 고강도 배변훈련을 한 후, 개학날부터는 기저귀 대신 속옷을 입혀 학교에 보낸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 중대발표를 하는 날, 우리의 마이클은 속이 불편했던지, 풀업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수를 하게 되었다. 

그것도 학교 복도 한 복판에서 말이다. 

그것도 이 장난꾸러기 친구가 걸어가면서 말이다.  

보조 교사들은 힘겹게 복도를 청소하고 마이클을 씻기고 옷을 빨고 하느라 진이 다 빠지고 말았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바비 선생님을 통해 마이클 엄마의 발표를 듣게 되자, 보조 선생님들이 걱정과 공포에 이런 저런 불평을 쏟아 내었다.     

"아니, 학교가 집인가, 여기가 사립학교도 아닌데, 다른 학생들은 어떡하라고 기저귀를 안 찬다는 거야?"

"아니 시간당 **불을 받고 이런 일까지 해야 하는 거야?  우리 Job Description에 이런 것까지 있는 거야?"

"그 엄마가 너무하는 것 아니야?"

"아니, 그럼  실수할 것을 대비해서 의료용 패드, 위생 장갑, 위생 물티슈,  여벌의 옷 이런 것들을 다 들고 다녀야 한다는 거야?"

특히 한 보조 교사가 강하게 불만을 표현했다.  

그의 주장은 여러 사람이 달라붙어 마이클의 배변 훈련에만 에너지를 쏟는 것은 다른 학생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학교는 사립학교가 아니라 만인을 위한 공립학교인데 이러한 행위는 공평하지 못하다는 주장이다. 

마이클이 실수할 것이 눈에 보듯 뻔한데 이런 상황은 비위생적이고 공중위생에 반한다는 것이다.  

구구절절 옮은 말씀이시다.  

그 보조 교사가 강하게 불만을 표현하는 통에 나머지 보조 교사들은 입을 닫게 되었다. 

바비 선생님은 눈이 빨개지면서 말했다.     

"지난 5년간이나 배변 훈련을 했을 엄마를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지난 번 회의를 할 때 이 사람, 저 사람이 내 아이는 이렇게 기저귀를 떼었다, 저렇게 기저귀를 떼었다며 엄마에게 조언을 했지만, 마이클은 그런 방법이 잘 통하지 않는 학생이지 않습니까?"

바비 선생님의 말씀은 보조 교사의 말보다 훨씬 설득력이 떨어졌다.  

만약 바비 선생님의 말에 누군가가 "그래서, 어쩌라고?" 라고 툭 던졌다면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으리라.  

그렇지만 나머지 보조 교사들은 점점 마이클의 새로운 시도를 운명으로 받아 들이는 분위기였다.  

바비 선생님의 눈물의 호소가 비록 설득력은 떨어졌지만 나머지 보조 교사들의 마음을 얻은 듯 싶다. 

보조 선생님들의 불만은 일단 수면 아래로 잠잠해 졌다.  

하지만 교실안에는 정의와 사랑의 미묘한 충돌과 갈등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이번 겨울 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하면 또 분위기는 어떻게 바뀔 지 알 수 없다.

아쉽게도 겨울 방학이 끝나면 나의 실습도 끝이 나, 정의와 사랑의 충돌에서 누가 승리할 지를 확인할 수는 없다. 

나의 바램은 마이클의 엄마가 꼭 배변 훈련을 성공하여 이 모든 충돌과 눈물이 해프닝으로 끝나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바비 선생님의 교실에 '정의'를 외쳤던 선생님도 '사랑'을 호소했던 선생님도 모두 사이좋게 계속 일하길 소망한다.

 

이메일 namenosh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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