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홍 목사의 삶과 신앙] 노회찬...

by admin posted Apr 1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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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1부 예배는 주일에도 가게 문을 열어야 하는 분들, 부득이 2부 예배를 참석할 수 없는 분들, 교회학교 교사들 등이 참석합니다. 

1부 예배는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2부 예배와 설교 내용을 다르게 해오고 있습니다. 1부와 2부 모두 참석하는 분들이 있고, 교사 교육을 겸한다는 생각에서 2부 설교와는 전혀 다른 내용을 강의식으로 하고 있습니다.

교재를 택하여 참석자 모두에게 나눠주고 마치 성경 공부를 하듯 진행합니다. 

3년 정도 하면 마칠 수 있는 교재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주제는 '정직'에 관한 것으로 <정직한 생활>이라는 제목입니다.

보통 한 과를 5주 내지 6주 정도 하게 되는데, 이번 주제는 주제 자체가 '정직'이어서 그런지 준비 단계부터 힘이 듭니다. 

설교자로서 다루기 어려운 주제 중 하나가 정직이지요. 

설교자 자신이 스스로 정직하지 못함을 알고 있는데 입으로 '정직, 정직' 떠들어야 한다는 사실이 스스로를 주눅들게 합니다.

지난 주일에는 교우들에게 솔직하게 고백을 했습니다. 

1부 예배를 몇 개월 전부터 저희 집에서 큰 테이블에 둘러 앉아 모이고 있습니다.

인원도 많지 않기 때문에 고민을 털어놓기가 쉬웠죠. 

"정직이 참 어렵습니다. 지난 번 주제 '순결'도 어려웠는데 이번 주제는 더 어렵네요. 참 힘듭니다. 많은 부분 용서하시며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교재 중에 이런 문항이 있었습니다. 

"지금 당신의 삶 가운데 조금이라도 양심에 거리끼는 영역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질문은 "깨끗한 양심을 갖기 위해 당신은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까?"였습니다.  

예배를 준비할 때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양심에 거리끼는 것이 너무 많았고, 목사로서 너무나 창피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솔직하게 답을 쓰고 교우들과 나눈다면 도저히 목사 노릇을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답을 적을 수 없었고, '어떻게 되겠지'하는 막연한 마음으로 예배에 임했습니다. 

실제 그 문항들 차례가 왔을 때, 문제는 읽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리가 텅 비고 아무 생각이 나지를 않았습니다. 

잠시 침묵 후 각자 나눠보자고 했는데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할 말이 없었습니다. 

할 말이 있다 해도 할 수 없었고 해서는 안되는 말들이었습니다. 

예배를 망칠 수 있고 더 이상 목사 노릇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갈 수 있는 얘기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침묵 ...... , 긴 침묵이 흘렀습니다.

며칠 전 JTBC 손석희 씨가 고(故) 노회찬 의원을 회상하며 앵커브리핑을 했습니다. 

거의 20여초 말을 잇지 못하며 눈물을 삭이는 장면에서는 저도 아내도 함께 울었습니다. 

지금 컬럼을 쓰면서도 다시 눈물이 맺히는군요. 

역사와 시대 앞에 정직하게 살려고 애썼던 몇 안 되는 정치인 노회찬이었습니다.

몇 백억을 받아먹고도 '뭐가 어떠냐!'는 식으로 부끄러운 줄 모르는 정치꾼들이 수두룩한데 노회찬 의원은 아주 적은 액수로도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던졌습니다. 

시내가 없는데도 다리를 놓겠다고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정치인들입니다. 

러시아 혁명을 이끈 레닌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다. 오직 저 종려나무만이 푸르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만물보다 더 거짓되고 아주 썩은 것은 사람의 마음이니, 누가 그 속을 알 수 있습니까?"라고 일갈했습니다. 

오직 종려나무의 푸른 색만이 정직한 색깔,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는 이론은 회색일 뿐입니다. 

지식은 아무나 소유할 수 있지만 지식인은 아무나 될 수 없습니다. 

노회찬 의원의 죽음 앞에서 컬럼리스트 김선주 씨는 지식인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세계와 사물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 진실 때문에 박해당하고 스스로 고통을 느끼는 사람, 그가 지식인이다. 지식인은 예언자의 다른 이름이다."

아침마다 백야드를 나가면 자연스럽게 정직해집니다. 

밤새 저를 기다린 고양이가 다가와 숨김없이 애정 표현을 합니다. 꼬리로 툭툭 치면서 지나가고, 몸을 비비고, 벌렁 드러누워 쓰다듬어 달라고 합니다. 

거짓이나 계산 같은 것이 끼어들 수가 없지요.

씨감자들이 튼실한 감자줄기들을 땅 위로 밀어올리고 있습니다. 저들의 활기찬 힘에 그 에너지가 저에게도 전해져옴을 느낍니다. 

개중에 네다섯 싹이 올라오자마자 시들어버렸습니다. 땅 위로 올라오느라 힘들었을텐데 왜 그렇게 죽어버렸을까 불쌍하고 아쉬웠습니다. 바이러스에 약한 감자라서 아마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정말 숨김없고 정직한 자연의 모습입니다.

모든 이론은 회색일뿐 종려나무만이 푸르다는 말이 가슴에 사무치는 아침, 노회찬보다 못한 목사들이 수두룩한 세상에서 저 자신도 별반 다르지 않음에 부끄럽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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