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한국인의 미국 이민사 -이인선

by admin posted May 2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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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한국남자 한 사람이 36년 전에 홀홀단신으로 미국행 비행기를 탔답니다. 취업 이민, ...즉  의사의 직장을 얻어 희망에 부풀어서 떠났었지요. 그런데 아무 기약이 없이 혼자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시골 모친께서는 32살 노총각 아들을 떠나 보내면서 엉엉 울으셨지요. 눈물의 제목은 "혼자 가서 어쩔꺼나~"였었습니다. 그는 "어머니 울지 마세요. 어머니 환갑에 아들 둘, 딸 둘을 낳아서 데리고 올께요!"라고 어머니를 달래 드렸답니다. 약속한 사람이 있었냐구요? 아니요, 그 당시 연애하는 사람도, 아무 대책도 없었대요...

그런데 그 말이 씨가 됐나 봐요. 그 말 그대로, 꼭 그대로 되었답니다! 자기는 해놓고도 잊어버린 말이었다는데 그대로 이루어진 것은 얼마나 신기한 일입니까? 그러니까 말 한마디라도 잘 해야 되나 봐요. 소망있고 꿈이 있는 말을요...

떠날 당시 약속이 없던 8살이나 어린 아가씨가, 그 남자의 표현에 의하면 '평생에 바라던 이상형이요, 세상에서 최고로 이쁜 색시'가 되어 시집을 곱게 와 준 것만 해도 황홀한데요, 오자마자 아이를 가져 딸 둘, 아들 둘, 연거퍼 쑥쑥 낳아 주었대요. 그것도 딱 만 4년만에 아이 넷을요! 그 사람 복도 참 많지요?... 그 사람이 제 남편이랍니다. 그리하여 혼자 몸으로 온 것이 6년이 못되어 6명으로 불어 났더래요..

저는 5년이 되기 전에 시민권을 탔고요... 그 당시는 세월이 참 좋았거든요...타자 마자 친정 부모님을 모셔 왔지요. 지금도 아버지께서는 가끔 우리들에게 "이렇게 좋은 나라에 와서 살아보게 초청해줘서 고맙다." 말씀하시지만 여기서 사시는 동안 한국에 있던 시골의 제법 많던 재산이 사기로 다 없어져서 진짜 잘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한국이 저렇게나 잘 살게 되다니, 우리 모두 이민 온 것이 잘한 것인지 못한 것인지... 아무튼 그 뒤로 줄줄이 친정 동생들이 4명이 왔구요. 둘째 남동생은 오는 날 부터 날마다 온 식구를 졸라대어 두 달만에 도로 나가서 바다 건너는 편지를 날마다 써 보내던 싹싹한 아가씨를 기세 좋게 데리고 왔답니다. 식구들이 다들 반대하고 우리 부부만 열성적 찬성을 해줘서 꿈을 이룬 것인데 은혜를 아직도 기억하나 모르겠어요! 한편 시집 식구들도 시동생이며 두 명의 시누이들 가족이 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0년 만에 친정쪽 7명, 시댁쪽 9명, 더하니 22명이 되었지요. 점점 더 늘어날 일만 있었어요. 사이좋은 동생네는 아이 둘이 금방 생겼고, 세째 남동생도 한국 나가서 결혼하여 데리고 온, 명세빈 닮은 예쁜 부인과 우리를 흉내를 낸다고 아이들 넷을 줄줄이 낳았답니다. 딸 둘, 아들 둘을 순서도 틀리지 않게요. 장장 다섯 명을 보탠 것이죠. 막둥이 동생도 결혼하여 두 아이를 낳았어요. 일찍 죽은 남동생 식구 셋도 미련을 접고 한국을 떠나 이곳에 합세했구요. 시동생도 한국 가서 결혼하여 금방 아이 셋을 낳았구요. 낳고 낳고 낳고... 어디 1장 비슷 하죠? ㅎㅎㅎ. 둘째 올캐는 한국에서 자기 친정 어머니를 모셔왔고 그 후로 올캐의 친정 동기들 가족 12명이 또 줄줄이... 여기까지 계산하면 30명이 더해져서 잠깐 사이에 52명이 됩니다. 한편 세째 남동생의 부인도 자기 친정 가족을 데리고 들어와서 대 여섯명이 추가되었구요. 내 여동생도 결혼하여 두 명의 아이를 낳았어요. 아무튼 '아이낳기 경쟁시대'였다니까요. 이제 세월이 가고 세대가 바뀌어 2세가 3세를 출산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드디어 우리 큰 딸이 시집 가서 손자를 낳아 두 살이 되어가지요. 아직 2세가 모두 어려서 손자대에는 그 뿐입니다만  장차 많이 늘어날 것은 불을 보듯 빤하지요. 시시한 한 사람이 와서 번지고 얽힌 사람들... 이제 총 몇명이 되었을까요? 그건 저도 몰라요. 숫자를 세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그런데 누가 계산하면 60명이 훨씬 넘었다네요. 덕분에 미국 구경이라도 하고 돌아간 사돈의 팔촌까지 이야기 하려면 그 수혜자가 좀 더 늘겠는데 생략하구요.  

우리들이 그동안 뭐 해먹고 살았냐고요? 남편은 의사로 왔지만 능력이 모자라서 14년 만에 본 직업을 버렸어요. 너무나 아깝죠? 장사하면 쉽게 무조건 돈버는 줄 알았다가 고생만 죽도록 했구요. 별별 실수와 시행 착오의 터널을 지나면서 예쁜 마누라만 고생시켜 팍팍 늙어 버리게 만들고야 말았지요! 세월이 간거지, 늙는 책임이 왜 남편에게만 있냐고요? 그렇지만 그렇게 말해야 평생 꼼짝 못 하잖아요! ㅎㅎㅎ. 이민 1세들은 대부분 자영업을 하고 있어요. 말 모자라는 사람도 많은데 손짓, 발짓, 별짓 다 하면서 살았지요. 지금은 세탁소를 하던 단계를 거쳐서 호텔, 주유소, 국제적인 사업들로 진출한 동생들도 있지요. 물론 늦게 온 사람들은 아직도  세탁소를 하기도 하고 저처럼 하는 일마다 잘 안 풀려 고생 바가지를 쓴 사람도 물론 있습니다. 그래도 죽지 않고 살아 여기까지 왔으니 우리 이민 1세들 다 장하지 않습니까? 1.5세에는 박사와 목사가 한 명씩, 경찰관이 1명, 회계사가 1명, 컴 기술자 1명, 사업가 1명, 2세 중에는 의사가 2명 변호사가 1명, 목사가 1명, 배우자로 얽힌 사람 중에 변호사와 교사와 미술가가 한 명씩 있어요. 그리고 아직 자라고 있는 꿈나무 대학생이 수를 셀 수 없이 많지요. 그러나 간암으로 40대에 죽은 사랑하는 동생의 사건이나 또 다른 병이 들어 자기 몫을 못하는 조카가 하나 있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에요. 아직 사춘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부모 속썩이는 조카도 또 하나 있구요. 영적으로 보면 목사가 2명, 장로가 1명, 권사가 3명, 그리고 집사는 아주 많고요. 중고등부 대학부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조카들도 있답니다. 우리 집에 얽혀있는 사람 거의 모두 95% 이상 교회를 다니며 예수를 믿고 있음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축복이랍니다.    

자, 이만하면 그 남자의 이민이 성공적일까요? 그 사람 따라 들어와 아직도 고생을 못 벗은 제가 헛세월만 보내는 것은 아니겠지요? 아직도 가끔 내가 여기서 도대체 무얼하고 있는 걸까 생각하는 제가요...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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