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홍 목사의 삶과 신앙] 어떤 삶

by admin posted May 2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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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쪄낸 찐빵』으로 유명한 카피라이터 이만재 씨의 글을 그대로 인용해 보려 합니다.

"그는 1937년에 일본 도쿄의 빈민가에서 태어나, 8.15 광복 직후 외가가 있던 경북 청송으로 왔습니다. 당시에 가진 게 없어서 끼니조차 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어린 몸으로 거리에 나가 땔감, 찐 고구마, 껌, 담배 장사를 하거나 가게 점원으로 일했습니다. 결국 영양실조에 전신 결핵이 겹쳐 난치병을 앓았습니다. 대구, 김천, 문경 등지로 병원을 찾아 떠돌다가 나이 서른에 그는 경북 안동 변두리에 있는 시골 교회 종지기로 들어가 사택 문간방에서 생활하며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홀몸이었지만 예수님이 항상 함께하셔서 외롭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십여 년을 보내면서 밤이면 산골 어린아이들에 관한 얘기와 농촌 생활의 땀, 눈물, 인정에 관한 얘기를 글로 남겼습니다.

그는 마흔넷이 되어 뒷산 언덕배기에 흙으로 작은 오두막을 지었습니다. 글쓰기에 적당한 자신만의 공간이 생긴 것입니다. 작업복 한 벌과 운동화 한 켤레에 세간으로는 손수 짠 궤짝이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만면에 웃음꽃이 떠나지 않았고 동네의 아이들, 산기슭의 민들레 꽃, 들판의 갈대와 강아지풀이 자식이자 친구였습니다. 조석으로 교회 종소리를 들으며 혼잣말로 하나님의 은혜를 찬미하고, 잡곡 한 줌과 산나물 한 접시로 최소한의 소비생활을 본분으로 삼았습니다.

그는 오두막에 엎드려 한 자 한 자 글을 썼습니다. 그의 글은 기독교적 믿음을 바탕으로 자연, 생명, 어린이 사랑, 이웃 간의 정, 북녘 동포에 대한 연민을 애틋하게 잘 그렸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는 말년까지 오두막을 떠난 적이 없었고 일흔이 되던 지난해 5월 17일에 천국으로 떠났습니다.

그를 추모하던 사람들이 모여 오두막에서 유품을 정리했습니다. 보름 전에 써 놓은 것으로 보이는 유서와 함께 은행 통장 하나가 발견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기도로 시작하는 유서에는 장례비를 뺀 나머지 전액을 굶주리는 아이들을 위해 사용해 달라는 내용이 써 있었고 통장에는 12억 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베스트셀러인 「강아지 똥」, 「몽실언니」 등으로 받은 인세를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은 것이었습니다.

아동문학가 고(故) 권정생 님에 관한 얘기입니다. 저는 권 선생님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합니다. 그럴싸한 그리스도인으로 치장한 세속의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 몸뚱이인지를 ….” 

(생명의 삶, 2008년 7월호, 52쪽)

 

주일 설교 시간에 권정생 선생님 얘기를 하면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분의 삶에 비추어진 저의 모습이 한없이 왜소하고 추하여서 울었습니다. 

차마 그분을 내 입술에 담을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그분의 얘기를 했었습니다.

젊은 시절 한창 가치관이 형성되던 때에 저에게 영향을 끼친 중요한 책을 들라 하면 저는 서슴없이 두 권을 듭니다. 

남미 교육학자인 파울로 프레이리(Paulo Freire)의 『페다고지』(Pedagogy of the oppressed)와, 그리고 권정생 선생님의 동화 「강아지 똥」입니다. 

80년대 초 혼돈의 때를 지나면서 두 권의 책은 저의 역사관, 가치관, 그리고 인생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권정생 선생님이 교회 종지기로 있을 때를 기억하며 쓴 글입니다. 

 

"교인들은 모두 가난하고 슬픈 사연들을 지니고 있어 가식 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그 중에 6.25 때 남편을 잃고 외딸 하나 데리고 살던 김 아무개 집사님의 찬송가 소리는 가슴이 미어지도록 애절했다. 새벽기도 시간이면 제일 늦게까지 남아서 부르던 <고요한 바다로> 찬송가는 그분의 전속곡이었다. 마지막 4절의 '이 세상 고락간 주 뜻을 본받고 / 내 몸이 의지 없을 때 큰 믿음 줍소서' 하면서 흐느끼던 모습은 보는 사람들을 숙연하게 했다. 가난한 사람의 행복은 이렇게 욕심 없는 기도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벽기도가 끝나 모두 돌아가고 아침 햇살이 창문으로 들어와 비출 때, 교회 안을 살펴보면 군데군데 마룻바닥에 눈물자국이 얼룩져 있고 그 눈물은 모두가 얼어 있었다"

(『우리들의 하느님』,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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