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두 돐이 안된 어린 딸과 갓난 아기 딸, 둘을 데리고 시카고 교외에 집을 사서 막 이사하는 날이었다. 어떻게 한국인이 이사 온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뒷집 슈미트 부인이 쏜살같이 뛰어왔다. 오자마자 우리 딸들을 보더니 귀엽고 사랑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것이었다. 우리 큰 딸은 두 돐 가까이 되도록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었다. 어떤 친구가 와서 우리 딸을 보고 아무리해도 예쁘다는 소리가 안 나오는지"너는 장차 예쁠 것이다"했던, 별로 안 예쁜 아이였을 뿐이었다. 그런 우리 딸을 무슨 굉장한 보물단지처럼 어여삐 봐 주니 기분이 많이 좋았다. 알고보니 한국 여자 아이를 입양하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어서 같은 또래일 것 같은 우리 딸을 보고 그런 반색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 딸들을 보러 아주 자주 놀러왔다. 한국에 대한 모든 것이 궁금하고, 한국 여자아이만 보면 신기하고 재미있었던 모양이었다. 우리 딸들이 한참 자라도록 슈미트부인은 마냥 기다리고 있었다. 죠일린이란 예쁜 이름을 지어놓고…그때는 수속이 왜 그리도 길었는지 모른다. 수속 기간동안 목마른 그녀에게 사진이 먼저 왔다. 하도 조그만해서 어떻게 생겼는지 모를 지경인 그런 콩만한 사진을 부엌에 붙여놓고 보고 또 보며 그녀는 첫사랑 애인 기다리듯 애타했다.
그러던 어느날 드디어 그 아이가 왔다는 것이다. 나는 하도 궁금해서 뛰어가서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당혹과 실망.... 그 아이는 까맣고 조그맣고 어색했다. 우리 두 딸의 중간 나이쯤 되는지 걸음을 간신히 걷는 정도의 작은 아이였다. 입고 온 드레스는! 나는 그렇게 더러운 아기 옷은 처음 보았다. 새 옷은 새 옷인데 안 빨은지 두어달은 되어보이는 옷! 더럽다 못해 흰옷이 아니라 까만 옷이 된 드레스... 내가 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라고, 얼마나 챙피하고 미안하던지…. 슈미트 부인은 당장 그 아이 목욕을 시키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깔깔대면서 하는 말이 "꼭 일주일간 날마다 브러쉬로 때를 박박 긁어 내었다"고 하는 것이었다. 입양기관에서 왜 좀 깨끗이 씻어서 보내지 않을까 도무지 모를 일이었다. 죠일린은 얼굴이 내가 흔히 보던 한국 아이들처럼 생기지를 않았다. 이상한 나라에서 온 아이 같이, ET 같이, 머리 통이 몸에 비해 크고 네모로 생겼다. 또 이마까지 온통 머리카락이 덮어나서 그러지 않아도 까만 얼굴이 아주 까맣게 보였다. 아마도 영양실조의 현상일 것 같았다. 겁먹은 얼굴에 키까지 발육이 안되어 다리가 몽뚝몽뚝 이상하게 짧아 보이는 불쌍한 고아가 바로 그 애였다! 아무리 잘 봐주려고 해도 '예쁘다'는 말이 전혀 나오지 않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장차 예쁠 아이"라고 말해줄 만큼도 입이 안 떨어 질 지경이었다. 장차 예쁠, 보통은 되는 우리 딸들만 바라보고 기다리던 슈미트 부인에게 괜히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그런데 그렇게 못 생긴 슬픈 아이의 운명이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바뀔 수가 있을까? 큰 가구점을 두 개나 운영하는 그 집에는 아들만 넷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여동생 죠일린을 예뻐해주고 공주처럼 키웠다. 엄마가 길에다 버린 생일도 이름도 모르는 아이가 미국의 중상층 집에 양녀가 되어 그런 대우를 받고 살 수 있다니! 양 엄마는 방 하나에 화려한 침대와 장난감, 그리고 예쁜 드레스를 가득 채워 놓고 날마다 두 세번씩 갈아 입히고 자랑하며 돌아다녔다. 얼마 되지 않은 후에 보니 온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아서 어리광이 가득한 아이가 되어 있었다. 날이 갈수록 반짝반짝 공주처럼 예쁘게 변해가는 죠일린을 보고 얼마나 많이 감동을 했던지!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의 가문에 양녀된 나의 신분이 그런 것이라는 좋은 예를 눈으로 보며 실감하기도 한 사건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의 모든 구질스러움과 더러움과 죄를 벗어버리고 하늘 나라의 공주가 되었다는 것… 비록 지금 나는 별볼일 없이 지내지만 언젠가 하늘나라에 가면 맑은 황금 길을 거닌다는 것… 예수 믿는다는 것은 그보다 더 굉장한 드라마틱한 신분 상승이요, 운명이 바뀌는 일이라고 나는 믿는다. 옛날에는 죠일린처럼 미국에 입양되어 거지에서 왕자와 공주로 변한 인생이 한둘이 아니었다. 한국 아이들은 머리가 좋고 똑똑해서 제일 인기있었고... 죠일린은 자라면서 우리 딸들과 같은 학교를 다니고 친하게 지냈다. 헤어질 일이 생겨서 관계가 끊어져 버릴 때까지... 욕심이 많았고 그래서 공부도 열심히 했던 죠일린... 좋은 대학에 입학했다는 것 까지만 알지만 분명 어딘가에서 한몫을 단단히 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2009년 월간 징검다리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