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한인문인협회 회원작품] 죽음을 알아가는 시간 -김률

by admin posted Aug 2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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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는 좋은 것이다. 사소하고 아주 가끔씩 일어나는 변화라면. 지난 달 문인회 모임에서도 그런 작은 변화가 있었다. 사소하지만 아주 오래된 틀을 깨는 변화였다.

꽤나 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홍당무처럼 얼굴이 붉어진 나를 마주친다. 성당 모임 자리였고 저녁을 먹은 후였고 술 기운이 서서히 얼굴에 번지고 있던 때였다. 길게 이어진 식탁에서 대화가 오고 가던 중 내 앞에 앉은 누군가가 내게 무엇을 물었는데 그 물음은 기억에 없고 단지 내가 대답을 하지 못했다는 기억만 있을 뿐.  

"작가는 모든 거 다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운 좋게 문학상 몇 개 탔다고 갑자기 작가로 불리게 된 상태를 나는 전혀 즐기지 못하던 때라 작가를 서두에 동반한 그의 말에 약간의 거부감이 일어날 법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대신 얼굴이 화끈거렸다. 다행히 얼굴에 술 기운이 붉게 있던 터라 홍당무가 된 내 얼굴을 누군가 알아보는 수모는 덜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의 말은 참으로 고마운 것이었다. 한 쪽으로 치우친 내 지식을 사방팔방으로 펼치게 해 준 계기가 되었으니까. 작가라고 물론 모든 걸 다 알 리는 없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을 거역할 수 없는 불문율처럼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역사책을 뒤적거리기 시작한 게 그 다음날부터였다. 이공계 출신이라 인문학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고 관심도 크지 않던 때라 한 줄 한 줄 읽는 역사가 쉽게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작가란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는,  아무도 공감하지 않을 그 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니까 포기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었던 것이다. 머리에 한 번 들어온 인간 역사의 한 단면이 빠져 나가지 않도록 안간힘을 썼다. 4만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 이래 인간 역사는 곳곳에 있었다. 인간이 지나간 모든 길이 역사였고 그 길은 한 곳으로만 길게 뻗어 있지 않았다. 실타래처럼 얽혀 있어 역사를 알면 철학, 종교, 예술 등을 두루 알게되는 것은 자연스런 수순이었다. 시간은 흐르는 강물처럼 어딘가에 침전물을 남긴다. 읽은 책들이 한 두 권 쌓여가는 동안 나를 통해 흘러간 몇 년의 시간도 내 머릿속에 침전물을 남겼다. 어느 때부턴가 내가 쓰는 글에 그 침전물의 흔적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문인회 모임에서 5분 발표를 제안하게 된 것도 나의 이런 경험 때문이었다. 회원들의 발표에서 수확한 지식들로 회원 모두의 지식 창고가 빵빵해지길 원했다. 빵빵해진 지식 창고에서 글들이 떡가래처럼 술술 빠져나오길 원했다. 5분 발표는 아무 조건이 따르지 않았다. 기분이 내키지 않으면 안할래요, 하면 그만이었고 무엇을 발표하든 상관없었다. 모든 것을 알아야 함에는 모든 주제가 다 포함되는 것이니까. 한 회원의 발표가 5분이 넘을 때도, 5분 전에 끝날 때도 있지만 모든 회원의 발표가 끝나는 시간은 거의 비슷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에 나는 내 머릿속에 또 다른 침전물이 쌓였음을 느낀다. 무엇보다 회원들과 한 걸음 더 가까워졌음에 내 가슴 한 켠이 따스해졌다. 5분 발표는 단지 지식 전달 창구만이 아니라 인간 소통 창구 역할도 했던 것이다. 상대방의 이해는 상대방과 내 생각의 공유가 첫 걸음이다. 5분 발표 때마다 나는 회원들 각자의 일상사를 문틈으로 빼꼼히 들여다 보는 느낌이었다. 3년 이상 지속된 그 빼꼼 시간들은 이제 내게 문틈이 아닌 문을 열고 들어와도 좋다 한다. 활짝 열린 문으로 들어가기 전 내 문도 활짝 여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언제나 그랬듯이 지난 달 모임에서도 5분 발표는 변함이 없었다. 회원마다 풀어내는 주제는 다양했다. 변화는 발표가 끝난 뒤에 왔다. 각자의 맛대로가 아닌 주제를 정해놓고 발표를 한 번 해보자는 제안을 한 사람은 총무였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지만 회원들의 공감을 얻는 데는 전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그럼 무엇으로 주제를 삼지요?" 누군가 물었고, "총무가 제안했으니 총무가 정하면 좋겠지요." 누군가 대답했다. 아주 오랫동안 품어온 화두처럼 총무가 주저없이 꺼낸 주제는 '죽음'이었다. 인간 누구에게나 묵직하게 다가오는 바로 그 죽음이었다.

죽음을 비켜갈 사람은 없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은 사람 또한 없다. 회원들 입에서 흘러나오는 죽음은 각기 다채로운 형상을 띨 것이다. 죽음을 생각하는 횟수가 늘어가면 그게 늙어간다는 증거다. 마치 몇 십 년이 훌쩍 흘러 곧 죽음을 맞이할 사람처럼 죽음에 대한 생각은 지난 두 주 동안 내 곁에 있었다.

8월 모임이 몹시 기다려짐은 회원들이 들려주는 죽음을 통해 내가 좀 더 죽음에 대해 잘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일 것이다. 죽음을 알아가는 시간 앞에서 나는 신을 부러워 하지 않는다. 죽음은 신이 유일하게 가지지 않은, 인간 고유의 전유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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