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참으로 많이 변했다.
요새는 한국에서 돈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유학이나 이민을 와서 오자마자 화려한 집을 일시불로 산단다.
렉서스, 벤츠 등 고급차까지 현금 일시불로 사고, 일도 안하고 명품 샤핑만 다닌다나.
여행부터 하고 미국 정착을 시작한다나...
요즈음 사람들에겐 우스운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1974년 미국에 도착하니 넉달 전에 한국 나가서 결혼을 하고 돌아온 새 신랑인 남편은 스투디오 방에 침대 하나만 달랑 사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 침대보드를 아직도 내 방에 쓰고 있다만 화려한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그 당시 종이 상자곽을 뒤집어 놓은 것을 가지고 식탁대용으로 거의 반년이나 썼을 것이다.
(왜 그때는 거라지 쎄일도 몰랐을까?)
숟가락 두개, 밥그릇 두세개, 냄비 한두개..
그것이 살림의 레퍼터리가 다 였던것으로 기억난다.
허술한 준비때문에 나에게서 된통 꾸지람을 각오했던 남편은 오히려 그만하면 되었다며 좋아한 나를 기억할 때마다 혼자 웃는단다.
첫 딸을 낳았을 때 까지도 그리 경제적으로 나아진 것이 없었다.
아기 옷가지도 열개 손가락도 넘지 않는 것을 가지고 꾸려나가고 간신히 그네 하나, 아기 앉는 씨트 하나, 걸음마 워커 하나, 그게 전부로 첫아이를 키웠다.
나는 그렇게 일이년을 지내면서 하나도 궁색하게 느끼지 못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처음에 와 보니 남편 레지던트 월급은 720 불이 채 안 되었다.
거기에서 백 불은 한국 시댁에 송금을 하고 100 불은 헌금을 하고 나머지로 살았으니 살림살이 마련에 아주 오래 걸렸을 밖에.
물론 스투디오 방세라야 135 불이 고작이었고 쉐비 말리부, 자동차 새 것이 3600 불 밖에 안되었으니 월부 90 불씩 삼년만 갚아 나가면 되었고, 아껴쓰면 생활비가 모자라지는 않았다.
하지만 궁색한 것으로 못 느낀 것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중학교 때부터 오랫동안 시골에서 돈을 타서 도시에 나가 자취하면서 극단적인 내핍생활에 도가 텄었던 몸.
어떤 상황에서도 견디어 나갈 수 있는 훈련이 너무나 잘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에 들어오는 나에게 이모는 그런 소리를 하셨다.
"다시는 니 인생에 고생은 없을 것이다" 라고.
그 당시는 미국에 오면 무조건 안정되고 화려한 생활을 하게 되는 것으로 믿어진 때였으니까 그런 말을 했을까만 내 생각에도 그럴 것 같아 빙긋 웃어 주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지만 미국와서도 궁상퇴치는 한참 걸렸던 것이다.
아니, 한국에 남아 살던 내 친구들보다 훨씬 더 오래도록 고생을 첩첩히 하였던 것이다.
그래도 시골에서 유지 소리를 듣던 성실한 아버지 덕분에 밥 굶은 적은 없었지만 칠남매 학비랑 서울 유학비를 조달하시느라 늘 쪼달리시니까 차마 알아서 기는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우리 집은 딸들까지 대학을 다니게 해 주었으니 다른 시골 사람들과는 비교가 안되게 잘 산 편이라 할수도 있었는데, 남편의 이야기를 듣고보니 우리집 형편은 시갓집보다 하늘과 땅만큼 나은 것이었다.
그 집 사정이 뻔한 줄은 대강 짐작했지만 김장김치 하나 마음놓고 못 먹어보았다나, 한달이면 떨어진다나, 고추가루가 없어서 그렇게나 빨간 김치 좋아하는 전라도 사람들이 소금에만 절여 먹었다나...
어디까지 진실인지 과장인지 모르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느 나라 이야기 일까...하며 신기했었다.
아무튼 한국에서 우리 시대 사람들 중에 가난을 맛보지 않은 사람은 아주 특별한 사람들이었다.
잘먹어서 살이 통통히 찐 사람들이 부자로 보여서, 요즈음엔 측은지심을 일으키는 비만 아가씨들이 부자집 맏며느리감 일순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가난에 얽힌 옛날 이야기는 차라리 재미있기까지 한다.
...가난했던 때를 기억하며 살기로
그런데 오늘 이야기의 포인트는 도토리 키재기식 가난과 부자 타령은 아니다.
우리들은 실제로 가난했지만 가난한지 몰랐다는 것이다.
불평도, 부끄러워 할줄도 몰랐다.
그저 받아들이고 살았다.
지금 더 잘 살수록 가난을 경험하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수 없다.
비교의식은 우리를 비참하게 만들기도, 쓸데없는 우월감을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갑질을 할수 있는 처지가 되고 싶어서 몸살치는 사람들이 가득한 나라 한국.
그래서 잘 살기로는 세계 10등 안에 드는 한국 사람들이 행복지수는 100등 밑으로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나오며
날이면 날마다 40명 이상씩 자기 목숨을 스스로 버리는 자들이 나온단다.
그 작은 나라가 자살율 세계 최고를 기록하다니!
끔찍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창대하리라."
욥기의 한 귀절이 생각난다.
밑바닥을 경험한 사람은 위로 올라갈 일 밖에 없고
미약했던 사람은 창대해 질 수밖에 없다.
지금 어렵다고 하는 분들이 어려울수록 나중을 기약하는 꿈을 잃지 않기를 빌어본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잘 사는 이야기만 부러워 하지말고 가끔 못 살때적 이야기도 잊지말자는 것.
왜냐하면 지금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50 년전 만큼은 못사는 것이 아니며,
어떠한 궁색함도 사실상 지나가고, 또 이겨낼 수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기 때문이다.
힘 하나도 안들이고 잘먹고 잘사는 사람은 공허감을 벗어나기가 오히려 어렵다.
그래서 갑질을 하며 자기 확인을 해대다가 만인의 지탄을 자초하는 것이다.
주어진 환경을 묵묵히 받아들이며 감사정신을 기본으로 하면서
겸손히 살자는 것을 스스로에게 늘 다짐한다.
어쨎든 우리 모두는 옛날 왕들보다 더 잘 먹고, 더 자유를 맛보며 더 잘 사는 것이려니.
(20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