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각] 내 인생 길에서 만난 죽음의 사건들 -이인선

by admin posted Aug 2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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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어느날 밤, 꾸지 큰 집에 다녀오신 아버지께서 그날 임종하신 큰 아버지의 죽으시던 모습을 자세히 전하셨다. "왜 이렇게 캄캄하냐? 불 좀 밝혀라! 제발  불 좀 밝히란 말이다!"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시며 운명 하셨단다. 40년이 지난 뒤에 여쭤보니 아버지께서는 그 이야기를 잊어버리고 계셨다. 그러나 팔을 내휘두르시며 비명을 질렀다는 그 말은 이상하게도 어린 내 영혼에 비수같이 꽃혔고 평생 잊지 못할 한마디로 내 뇌리 속에 남게 되어 가끔 생각이 난다. 그 무서움, 그 외로움이 고스라니 느껴지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혼자서만 죽는다는 것은 얼마나 두려운 일일까...

그 해 큰 댁에는 삼대의 죽음이 있었다. 월남 파병 갔던 20살 사촌 오빠가 월남에서 지뢰를 밟고 먼저 죽고, 할아버지께서 잇달아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는 연로해서 돌아가셨겠지만 큰 아버지는 두번의 초상 후에 많이 괴로워했을 것이 틀림없다. 술안주로 뱀을 드셨는데 식중독이셨다니, 집안의 불운을 술로 삭이려 했었던게 틀림없을 터. 큰 댁의 연달은 초상은 내 인생에서 제일 처음 접했던 죽음의 그림자였다.  

나의 여동생은 서울대학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한 적이 있는데 그때 사람 죽는것을 많이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죽을 때 어찌 죽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천국에 가는지, 지옥에 가는지를 한 눈에 알수 있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죽을 때 몸의 경직이 심하지 않고 부드럽고 얼굴이 편안하며, 어떤 사람은 두려움과 고통 속에 경직되어 죽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시체만 봐도 아주 시커멓고 무섭다고 한다. 편안한 모양새로 죽는 사람은 천국에, 무섭게 변하며 죽는 사람은 지옥에 가는 것일 것이라고 내게 말해 주었다.

생각하기도 싫고 남의 이야기 같던 죽음이 더 한층 가까와 온것은 우리 집안에도 너무 이른 죽음의 사건들이 어김없이 찾아 왔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미국와서 십년 쯤 되었을 때였다. 내 바로 밑의 남동생이 한국에서 자동차 사고로 죽었다는 소식이 온 것이. 30대에 어린 두 아들을 남기고 갑자기 죽은 우리 가족 큰 아들 때문에 급히 한국에 나갔었다. 한국에 도착해 보니 이미 장례는 끝이 났는데, 엄마도 동생댁도 아무도 더 이상 울지 않았다. 그런데 보여주는 엄마의 넙적다리가 완전히 까맣게 멍들어 있었다. 사정없이 때리며 울었기 때문이었다. "춘수는 좋은 데 갔으니 걱정 말아요." 사촌이 꿈을 꾸니 내 동생이 기쁜 모습으로 올라 가더라며 말해 주었다. 그 꿈이 아니더라도 진실한 크리스챤인 동생이 천국에 갔으리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에 많이 울지 않았다. 그로부터 십 여년 후에 두째 남동생이 또 간암으로 죽어갔다. 시카고에서 살던 친 동기간은 그뿐이라 가장 가까왔던 동생이었다. 어릴적부터 싹싹하고 다정하게 "누나, 누나," 따르던 동생... 그의 나이 46 살이었다. 미국와서 온갖 고생 끝에 어메리칸 드림을 거의 이루어가고 있었던 활기찬 나이였다. 남다르게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이들을 위해 꼭 살아야겠다는 의지로 많은 돈과 시간을 바치며 시카고에서 동부까지 비행기로 왕래하며 치료를 받고 거의 일년을 버텼지만... 누구나 목숨은 자기 것이 아니다.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을 보면 그걸 인정하지 않을수 없다. 동생이 죽던 날, 그날이 그날인지도 모르고 나는 병원에 찾아가서 하루 밤을 함께 지내려고 했었다. 그날 동생은 배가 불러서 병원에 갔던 것이었는데 복수라고 빼보니 물 대신 피가 나왔고 아파서 어쩔줄을 몰라하며 참고 있었다. 그 밤에 올라온 간호원이 혈압을 재는데 잘 잡히지 않았다. 우습게도 나는 "병원에도 고장난 혈압기가 있네..."라고 생각을 했었다. 혈압이 너무 떨어져 안 잡히는 수가 있다는 것을 몰랐으니 얼마나 무식한 노릇일까? 올캐가 아주 다정하게 남편 손을 붙들고 쉴새없이 뭔가 이야기 하며 위로해 주니 나는 할일도 없고 너무나 피곤해서 침대에 기대 엎드려 잠을 자다가 깨다가 했다. 자다가 깨보니 그 마지막 순간에 무슨 스캔인가 검사를 한다고 간호원들이 끌고 나가고 있었다.  그때 동생은 우리 둘에게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다녀 올께" 예감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오래도록 팔을 흔들며 의미심장한 인사를 열심히 하였으니까.. 그리고 얼마 후 침대로 돌아왔는데 많이 힘든 얼굴이었다. 그렇게 아프다니 오래 살아달라고 더 이상은 부탁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성경을 읽어 주려고 했더니 "누나, 수고하지 말아. 하나도 안 들려."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정말 얼마 안되어 얼굴을 잠간 들어 누구를 바라보는 듯하더니 고개를 떨어뜨리고 조용히 숨을 거두는 것이었다. 누구를 쳐다 보았을까? 우리 눈에는 안보이는 누가 와서 그를 불러갔을까? 나중 들으니 사람이 죽을 때 천사가 데리러 나오던지 저승사자가 오던지 둘중에 하나라고 한다. 그래서 마지막 시간에는 찬송을 불러주고 잘 지켜야 한다던데 나는 임종 지키는 것이 처음이었고 그렇게 쉽게 갈 줄은 정말 몰라서 잘 돕지를 못했다. 다행히 고통의 몸을 벗은 동생의 얼굴을 보니 천사같이 깨끗하고 평화로웠다. 분명 좋은 곳으로 갔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어 올캐와 나는 서로 안심을 시켰다. 

내 동생의 죽음과 함께 생각나는 죽음이 하나 더 있다. 세탁소를 하고 있을 때 단골 손님 한 사람이 갑자기 잠을 자다가 돌아가셨다. 일주일에 한번씩 똑 같은 빨간 넥타이, 흰 와이셔츠, 다 낡은 싸구려 신사복 한 벌을 꼬박꼬박 세탁해 가는 분이었다. 큰 교회 주일학교 교사라했는데 그렇게 몇년을 토요일마다 왔던 단벌 신사였다. 아주 건장한 50대 후반의 중년 남자였는데 그렇게 갑자기 가다니 나는 영 믿기지 않았다. 항상 웃고 농담 잘하던 그를 떠올리며 그의 장례식에 찾아갔다. 그랬더니 세상에, 그가 관에 누워 있는데 여전히 웃고 있지 않은가? 입가에 가득 웃음을 웃으며 죽은 사람은 그때 처음 보았다. 곤한 세상의 짐을 내려놓고 떠나가는 것이 좋았던 모양이었다.

위의 사건들 말고도 수도 없는 여럿의 친지들의 죽음을 지나왔다. 수 많은 사람을 먼저 보냈다면 내 차례도 많이 가까왔다는 뜻이겠다. 나는 죽으면 어디로 갈까? 내 믿음이 헛되지 않아서 천국으로 갈것인가? 혹시라도 아니면? 하고 걱정되는 날이 있다. '구구 팔팔 이삼사' 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99세까지 88 하게 살다가 2-3일 앓다가 죽는 것이 제일 좋다고. 그러나 아무리 오래 건강하게 산다고 해도 천국으로 못 간다면 그건 얼마나 끔찍한 일일까?나는 다른 사람은 다 몰라도 내 두 동생과 그 미국사람이 틀림없이 천국에 갔을 줄로 믿는다. 좋은 곳에 가는지만 확실하다면 우리 큰 아버지처럼, 미세스 S 처럼, 혹은 누구처럼 눈을 감기 무서워할 필요는 정말 없을 것이다.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는 죽음은 실제로는 가장 큰 승리요, 행복일테이니까...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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