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분노왕

by admin posted Sep 2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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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분노왕"을 만나고 있다. 학교에서 말이다. 

각 반마다 분노왕이 떡 하니 앉아있다. 이 "분노왕"은 여러가지 이유로 분노를 표출한다. 아침에 너무 졸려서,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어서, 수학이 너무 어려워서, 친구가 가지고 놀고 있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싶어서, 선생님이 이래라 저래라 하는 말이 듣기 싫어서 등등 뭔가 비위에 맞지 않을 때 각양 각색의 모습으로 분노를 분출한다. 

바닥에 나동그라져서 뒹굴기, 큰 소리로 울기, 교실 구석에 처박혀 있기, 책, 걸상 뒤집어 엎고 던지기, 눈에 보이는 것 아무거나 던지기 등등 한 번 분이 나기 시작하면 주변을 한순간에 아수라장으로 만드는 비법을 소유하고 있다. 

나는 며칠 전에 이러한 "분노왕"을 어떻게 잘 대처는지 가르쳐 주는 강습회를 다녀왔다. 

분노왕들은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다양하게 분포하고 있다고 한다.  

강습회에서 전문 강사는 강조하기를 먼저 "분노왕" 개개인을 잘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분노왕이 언제 분노 게이지가 상승하는지, 분노 게이지가 상승 중일 때 어떤 행동 양상을 보이는지를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예를 들면, 분노왕 '갑'은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하면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돌돌 감아 올리기 시작한다. 또 다른 분노왕 '을'은 연필로 책상을 탁탁 치기 시작한다. 

이런 모습이 나타나면 담임 교사나 특수 교사는 센스 있게 분노가 가라앉을 수 있을만한 기분전환 활동들을 제시한다든지 아니면 우선 교실 밖으로 나가게 한다든지 하는 기지를 발휘해야 한다고 한다.  

이도 저도 불가능한 상황이라면 "분노왕님, 지금 매우 불안하시군요. 잠깐 교실 뒷쪽으로 가셔서 쉼이 어떠하온지요?" 하고 말로써 달래기라도 해야 한다.     

한국에서라면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옵션이다. 

분노왕에게 교사는 한층 더 큰 메가톤급 분노를 보여 줌으로서 '이열치열'의 원리를 구현해 보이는 것이 통용되는 방법이다. 

한국에서 교사로 일할 때 수업 중에 가끔 분노왕들을 마주치기는 했었다. 

그러나  학생 분노왕들은 나름대로 분노를 쏟아 놓았을 이유가 있었던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교실 안에서 분노를 표출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오히려 선생님 분노왕을 몇 명 만난 적은 있지만 학생 분노왕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만약 미국에서 한국식으로 메가톤급 분노로 분노왕을 제압하고자 한다면 학부모 및 인권 단체들로부터 소송 당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이 방법은 절대 금지이다.  

더군다나 지금 내가 만나는 분노왕들은 "마음이 아픈 학생들" 즉 정서 장애가 의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일반 학생들에게 통용되는 방법은 효과가 없다고 본다.   

기분전환 활동이나 말로 달래기 등으로 분노 초기 단계가 진압되지 않는다면 담임 교사나 특수교사는 그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한다. 

교장 선생님이나 교감선생님에게 인력 충원 요청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분노왕을 교실 밖으로 데리고 나와야 한다. 

만약 분노왕이 나오려고 하지 않거나 너무 위험한 행동을 해서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 역으로 교실안에 있는 학생들을 모두 내보낸다. 

그리고 분노왕이 따라 나가지 못하게 출입문을 교장 선생님과 특수교사 그리고 그 밖의 선생님들이 막는다.  

미국 교실에는 문이 많이 있어 문을 막는데 여러 사람이 필요하다.  

분노왕의 분노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계속해서 교실을 초토화시킨다면 두 세 사람이 합세해서 분노왕을 "고립의 방" 영어로는 "Seclusion Room"으로 데리고 간다.   

분노왕을 "고립의 방"으로 데리고 갈 때에는 꼭 "비폭력 위기 관리(Nonviolence Crisis Intervention)"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받은 사람만이 분노왕을 데리고 갈 수 있다. 

만약 덩치가 크다, 힘이 쎄다는 이유 등으로 이 교육을 받지 않은 교사가 분노왕을 "고립의 방"으로 끌고 갔다 가는 나중에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나는 자랑스럽게도 이 자격증을 강습회에서 취득하게 되었다. 

자격증을 받기 위해 분노왕에게 얻어 맞지 않는 법, 머리채를 잡혔을 때 또는 목을 졸렸을 때 쉽게 빠져 나오는 방법 등을 강습회에서 배웠다. 

책상머리에서 이론만 배운 것이 아니라 둘씩 짝을 지어 실습도 해 보았다. 

집에 와서 따로 연습도 해 보았다. 

이제 나는 분노왕에게 머리채를 잡히거나 돌려차기 공격을 받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다!

학교에 왜 이렇게 분노왕이 많은가 곰곰히 생각해본다. 

사회가 복잡해서 인가, 깨진 가정이 많아져서 인가, 환경오염 및 약물중독이 만연해서인가 이런저런 이유를 헤아려 본다. 미국의 공립학교가 너무 엄격해서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수업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그런가 생각 해 본다. 

그런데 엄격하고 어려운 것은 한국의 학교도 마찬가지 아닌가 하는 반박도 든다.  

어쩌면 내가 한국의 교단을 떠나 있는 5년새에 한국에서도 분노왕들이 늘어나고 있는지 모르겠다.    

ADHD, 강박증, 불안장애, 자폐증, 품행장애, 투렛 증후군 등 여러가지 이름표를 달고 나타난 분노왕들이 바로 나의 사랑스런 제자들이다. 

이 분노왕들을 잘 다독이고 보살필 수 있는 지혜와 기술을 연구해야겠다. 

이제 자격증도 있으니 본격적으로 분노왕과의 한판 승부는 나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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