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일 예배 때 장로님께서 광고하시기를 상처하신지 1년 3개월 되신 우리 목사님이 새 장가를 드신다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예상했지만, 또한 예상하지 못한 일이기도 해서 모두가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그동안 목사님은 재혼이라는 말을 누가 꺼낼까봐 지레 알러지 반응을 보였고 매 월요일 쉬는 날마다 사모님의 무덤을 찾아가시는 등, 옛 부인을 도저히 잊지 못해 하시는 애처가의 남다른 이미지를 보여 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꼭 혼자 사시려고만 하는 줄로 알아서 많은 사람들이 은근히 걱정까지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돌아가신 사모님같이 절대 순종하는 여자가 어디 또 있을까?
그런 사람을 혹 다시 원하시고 찾으신다면 아예 불가능한 일이라고 까지 생각되었다.
그렇지만 사모님 없는 목회란 한 날개 없는 비행이랑 비슷하지 않던가?
공연히 도와드리지도 못하면서 혼자 사시는 목사님이 무얼 잡숫는가도 가끔은 신경이 쓰이기도 한다.
아무튼 그 광고로 갑자기 여러가지 호기심과 관심을 불러 일으켰는데 광고에 의하면 3월 31일에 C시에 가서 결혼하신다는 것이었다.
아, 두 달 전쯤 거기 가신 일이 그것 때문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로님은 광고 끝에 "당회에서 우리 사모님을 청빙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라고 익살을 부렸는데 교인들은 와~웃었지만 목사님은 하나도 웃지 않으시고 딴청만 하셨다.
계면 쩍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한마디 하셨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동안 관심 보여주신 것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부탁합니다..."정도 말이다.
오늘 삼일 저녁 예배에 그 분이 참석 하셨다.
"C시에서 오신 분을 소개 합니다." 하셔서 우리는 대번에 누구인지 짐작하고 또 와~ 하고 뒤를 돌아다 보았다.
예전 사모님이 앉으시던 뒷자리에 아주 건강하고 인상이 좋은 한 사람이 일어나서 웃고 계셨다.
사모님은 너무 미인이어도 안되고 너무 못 생겨도 안된다고들 하는데 그 분은 사모님으로서 딱 좋은 얼굴을 하고 계셨다.
옛날에 같은 교회를 섬겨서 일찍부터 아시던 분이요, 목사님의 아이들 주일학교 반사를 하시기도 하셨던 전도사 출신이라 일사천리로 잘 연결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후덕해 보이는 웃음 때문인지 모두가 단번에 안심이 된 모습이었다.
상처 후 꼭 일년을 채우자 옆에서들 아우성 쳐 드렸겠지...
그래서...
얼마나 다행하고 다행한 일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어떤이는 정말 잘되었다고 환영하였지만 어떤이는 너무 빠른 것이 아니냐고 비난 비슷하였다.
그 이야기 끝에 나는 내 옆에 앉으신 권사님께 "뭐가 빨라요? 나는 남편에게 나 죽으면 석달만 참았다가 새 장가 들라고 했는데..."
그랬더니 그 권사님도 나와 똑같은 의견이라고 하시며 웃어 주셨다.
그런데 그동안 내 의견에 그대로 동의해 준 사람은 그 권사님 빼놓고 별로 못 봤었다.
여자는 혼자 살 수 있어도 남자는 옆에 아내가 없으면 당장에 구질스러워지니까 재혼을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해야한다는 뜻인데 어떤 사람은 자기는 남편에게 자기 죽으면 절대로 재혼하지 말란다고 유언하고 죽는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사랑하니까 혼자만 차지하고 남에게 주기 아까운 마음일까만 그런 말은 좀 치기 어린 이기적인 발상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재혼을 하는게 좋다는 사람들도 대체로 석달은 너무 짧고, 육개월도 짧고, 일년은 기다려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나랑 우리 권사님은 "이왕 할 것 뭘 기다리는가? 한살이라도 나이 더 들기 전에 재혼해야 한다"로 "석달이면 충분하다"에 완전 의견 일치이다.
남자는 자기 아내가 죽으면 화장실에 가서 가만히 웃는다고 한다.
새 마누라 얻을 일이 좋아서...
옛날에 그 이야기를 듣고 정말 그럴 수도 있는 것이구나 확 정신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적어도 내 남편은 새 장가 가고 싶어 나 죽을 것 기다리는 그런 남편은 아닐 것으로 믿는다.
아니, 내가 8살이나 어리고, 할머니 말씀대로 내 손금에 명줄이 길어서 남편보다 일찍 죽을 것 같지는 않다.
남자가 여자보다 8년쯤 더 일찍들 죽는다고 하니 아마도 내가 혼자 사는 세월이 8년에 8년, 16년은 될지 모른다.
그러나 누가 아는가?
사모님도 목사님보다 5살이나 어렸다고 하지 않았던가?
올 때는 순서가 있어도 갈 때는 순서가 없다니까...
언제든지 부르시면 툭툭 털고 일어나 가야 하니까...
내 착각인지는 모르나 내 남편은 나 죽으면 석달 열흘 울다가 따라 죽을 것 같다.
내가 허락하고, 도장 찍고, 다짐을 받고 죽는다고 해도 두 번 장가 들 일은 없을 것만 같다.
그러나 만약 덜 울어서 나 따라 죽을 정도가 안되면 부디 새장가를 들어야 할텐데 누가 못난 내 남편에게 시집 오겠는가 말이다.
가난하고 늙은 남자에게....
별 볼 것 하나 없이 팍팍 늙어가는 남자에게...
그것이 문제로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가 불쌍해진다.
그러니 악착같이 남편보다는 더 오래 살아야 겠다.
한 두달이라도.
어릿한 늙은 남편 혼자 놔두고는 차마 눈을 감을 수 없을 것 같으니까.
하나님이 우리 부부 비슷히 살도록 해로하는 은혜를 주실 것을 바라는 바이다.
"그런데 석달은 왜 참아야 하는데?"라고 친구가 물었다.
나는 대답했다.
"얘, 몰라서 묻냐? 마누라 체면이라는 것도 있는거야" 라고.
ㅎㅎㅎ
(2008년 3월)
- 자작시 '하나뿐이 없는 남편' 중에서
"나 죽으면 이 남자는 석달 열흘 울다가 따라 죽을걸
이 세상에서 나 없이 못사는 오직 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