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있는 모습 그대로, 극복하지 않기!

by admin posted Nov 1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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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극복을 잘 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순응을 잘 하는 사람인가?   

왠지 극복을 잘 하는 사람은 똑똑하고 멋져 보이지만 순응을 잘 하는 사람은 바보 같고 열등한 느낌을 주기까지 한다. 

순응을 잘하는 사람은 극복을 못하는 사람인양 느껴진다. 

국어사전에서 '극복'의 뜻을 찾아보니 '악조건이나 고생 따위를 이겨냄' 또는 '적을 이기어 굴복시킴'이라고 나와 있다.  '극복'이라는 단어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게 된 계기는 며칠 전 유튜브에서 '나는 장애를 극복하지 않았다'라는 영상을 접하게 되면서이다.

얼마전 학교에서 회의 시간에 오고 갔던 대화가 문득 떠올랐다.  

교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 담임 선생님 그리고 몇몇 특수교사들이 모여서 한 학생에 대해 의논하고 있던 참이었다. 

여러 대화가 오고 가는 중에 한 선생님이 이런 말을 했다.      

"갑돌이의 엄마가 결국은 갑돌이가 가지고 있는 ADHD가 크면서 낫거나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텐데 걱정이예요. 나중에 가서 크게 실망할 것 같아요."

장애에 대해 일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오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대화였다. 

장애아를 자녀로 둔 부모들이나 일반인들은 장애가 고쳐지거나 없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학습 장애', 'ADHD', '튜렛 증후군', '품행장애', '정서장애'등은 본인이 열심히 노력하면 완치되거나 개선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아울러 우울증, 양극성 장애 등도 본인이 생각하기 나름이다라는 식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그리고 장애가 없어지지 않는 것은 본인 또는 부모의 의지 박약이나 게으름 때문이라고 편견을 가지기도 한다. 

그러나 특수교육 종사자들과 장애인들은 말하길 '장애'는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적응하고 받아 들이는 것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반드시 이겨내야 할 악조건을 지닌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각각 고유하고 독특한 사람들로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생각이다.  

즉 장애가 '고생'이나 '적'이 아니라는 관점이다. 

물론 이러한 관점이 다소 생소하고 억지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생각의 차이는 많은 장애인 가족과 특수교육 종사자들에게 자유와 삶의 여유를 가져 다 준다. 

이것은 순전히 나의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나는 교육 현장에서 아이러니한 일들을 경험하였다. 

 

우리는 흔히 다운 증후군, 시각 장애, 신체 장애를 지닌 학생들이 학습장애, ADHD, 자폐증, 정서 장애처럼 눈에 잘 띄지 않는 장애를 지난 학생들보다 훨씬 불편한 삶을 살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를 많이 보았다. 

다운 증후군, 시각 장애, 신체 장애를 지닌 학생들과 가족들은 장애를 평생 지니고 살아야 함을 인정하기에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준비를 일찍부터 시작한다. 

여러가지 보조 기구나 행동 규칙 등을 정하여 훈련하고 성인이 되었을 때의 삶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계획한다. 

그러나 학습장애, ADHD, 자폐증, 정서장애 처럼 겉으로 보면 비장애인과 전혀 차이가 없는 학생들과 그들의 부모님들은 장애 자체를 인정하지 않거나 회피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고, 이 장애가 낫거나 없어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온갖 노력과 에너지를 쏟아 붓기도 한다. 

값비싼 한약이나 비타민제를 복용하기도 하고, 이상한 종교단체를 찾기도 한다. 

장애가 완전히 나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찾아 다니기도 한다.  

장애 자체를 받아 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특수교육을 공부한 나도 실제로 ADHD, 학습장애, 정서장애를 지닌 학생들을 가르쳐 보기 전까지는 그들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들을 가르칠 때 좀더 많은 시간, 좀 더 엄하게 가르치면 아이들이 잘 배우겠거니 생각했다. 

은근히 '그동안 이 아이들의 실력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던 것은 못 가르치는 선생님과 게으른 너희들의 태도 때문이다'라는 교만한 생각을 품었던 것 같다.

 교만했던 생각의 결과는 하루 하루 깨어지고 있는 중이다. 

특별한 방법과 접근법이 필요함을 깨닫고 있는 중이다. 

이제서야 대학원 수업 때 배운 여러가지 이들에게 맞는 교육방법과 기술들을 접목하고 있는 중이다.

장애는 악(惡)이 아니다. 

적(敵)도 아니다. 

그러므로 극복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적응하고 순응해야 하는 것이다. 

잘 관리해야 하는 것이다. 

엄청난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장애는 낫거나 없어지지 않는다. 

지금까지 여러 학자들이 말한 바이다. 

그러나 장애를 가지고도 편리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모두가 힘을 합쳐 환경을 변화 시킬 수 있다. 

장애인이 살기 편리한 사회는 어린이, 노약자 그리고 모두가 살기 좋은 환경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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