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뭣이 중한디?

by admin posted Nov 2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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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선생님, 갑돌이 IEP 미팅이 곧 다가오지요? 각별히 신경 쓰셔야 해요. 쉽지 않은 만남이 될 겁니다. 베테랑 선생님들이 미팅에 함께 들어가서 도와 드릴테니 너무 염려 마세요." 나의 멘토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IEP 미팅이란 특수 교육을 받는 학생들이 일년에 한번씩 부모님을 모시고 앞으로 일년간 어떻게 특수교육 서비스를 학교에서 제공해야 할지 의논하는 만남을 말한다.  

나의 멘토 선생님이 이렇게 콕 집어 이야기 하시는 것을 보니 지난 번 갑돌이의  IEP 미팅이 어떠했는지 궁금해 졌다.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이러하였다.

갑돌이는 척 보기에는 아주 똘똘하고 예의 바르고 나무랄 것이 없는 학생이다. 그러나 한 일주일 정도 갑돌이를 가르쳐 보면, 웬만한 교사라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 할 수 있다. 수학 시험지를 열심히 풀고, 자신 있게 제출했지만 채점을 해 보면 거의 0점에 가까운 점수에 놀랄 것이다. 칠판에 있는 내용들은 아주 예쁜 글씨로 또박또박 옮겨 적을 수 있지만 막상, 간단한 문장을 적으라고 하면 아주 쉬운 맞춤법 조차도 틀리게 쓰고, 제대로 쓸 줄 아는 단어가 거의 없음에 또 한번 놀라게 된다. 갑돌이는 그야말로 열심히 하는 '척'의 도사인 것이다. 이러한 '척'하는 태도 때문에 갑돌이는 비교적 오랫동안 자신의 약점을 숨겨 올 수 있었다. 그러나 학년이 올라가고 교과 내용이 어려워지면서 갑돌이의 '척'은 한계에 다다르게 되었다. 

그래서 지난 1년간 '학습 부진아 반'에서 하루에 1시간씩 따로 공부를 하였다.    

미국의 공립 학교에서는 학업 성적이 지속적으로 부진 할 경우, intervention class, 쉽게 말해서 부진아 지도를 받게 된다. 주로 수학이나 영어 시간에 따로 부진아 지도 선생님께 가서 수준에 맞게 개별 또는 소그룹 지도를 받는 것이다. 우리말로는 '부진아 지도' 말고는 좀 더 기분 나쁘지 않는 적당한 단어가 딱히 없지만 영어로는 '보충 수업' 또는 '중재(仲裁) 수업' 정도의 뉘앙스이다. 

그런데 이 '부진아 지도' 반에서도 별 효과를 보지 못하게 되면, 혹시 학습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의심 해 보게 된다. '학습 장애'가 의심이 되면 부모님과 상의하여 학교의 심리 분석가(school psychologist)에게 지능, 적성 및 심리 검사를 의뢰하게 된다. 각종 검사를 통해 '학습장애' 또는 '정신지체' 나 'ADHD' 등으로 판별이 나게 되면 특수 교육을 받게 되는 것이다. 물론 모든 과정마다 학부모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

갑돌이는 이 모든 과정을 거쳐 작년에 비로서 특수교육 대상자로 결정이 되었던 것이었다. 

갑돌이의 엄마는 갑돌이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터라 갑돌이가 특수교육을 받게 되는 것에 대하여 수긍하고 인정을 하였다. 그러나 갑돌이의 아버지는 이를 받아 들이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어쨌든 작년에 특수 교육을 어떤 식으로 받게 될 것인지 의논하는 자리인 IEP 미팅에 갑돌이 엄마, 아빠가 함께 참석하였는데, 갑돌이 아빠는 이 모임의 성격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왔다. 선생님들의 추측에 따르면 갑돌이 엄마가 남편에게 제대로 설명을 하지 않은 채 그냥 데리고 나왔던 것이다. 모임이 무르익었을때, 갑돌이 아빠는 비로서 이 모임이 갑돌이가 받게 될 특수 교육 프로그램에 관한 것이라는 사실을 파악하고는 언성을 높였다.    

이러한 사례는 종종 발생한다. 

엄마들은 자녀의 장애를 학교에서 발견되기 전부터 짐작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고, 교사가 특수 교육을 위한 검사를 권했을 때 마음이 아프지만 받아들인다. 

그러나 아빠들의 경우, 아무래도 엄마 보다는 자녀에 대해 잘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 보니 자녀의 장애를 인정하지 않고 그러기에 특수 교육도 거부하는 사례들이 종종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부모가 다 자녀의 장애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러한 부모들이 대표적으로 드는 예가 아인슈타인과 에디슨이다. 

둘 다 어렸을 때 학교 생활이 순탄하지 못했고, 학교에서 인정받지 못했지만 성인이 되서는 큰 업적을 남겼다는 스토리가 전문가들의 진단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작년의 우여곡절 끝에 갑돌이는 지난 일년간 충실하게 특수반에 와서 수업을 받았다. 지금도 여전히 '척'을 하지만 많이 나아지고 있다.  

며칠 전, 갑돌이는 특수교사에게 '뭘 몰라도 괜찮다. 배우면 된다.'라는 것을 배웠다. 이제까지 갑돌이는 모르면 안되는 줄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토록 '알고 있는 척, 할 수 있는 척'을 해 왔던 것이었다.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만약 아빠의 고집으로 특수교육을 받지 못했다면 갑돌이는 계속해서 '꼭 모든 것을 알고 있어야만 한다'고 믿으며 자신을 위장하였을 것이다. 

특수교육을 받게 되면 장래에 큰 불이익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부모들이 특수교육을 거부하게 만드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특수교육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받게 될 불이익과 특수교육을 받지 않아서 발생 할 어려움을 저울질 하여 자녀에게 가장 득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을 해야 한다. 

그런데 이때 반드시 자녀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을 해야 한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부모의 체면이나 명예, 욕심은 접어 두어야 한다.  

깊은 우울감과 절망이 엄습할지도 모르지만 아이의 건강한 학교생활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 

특수교육을 '주홍글씨'로 생각하기 보다는 한 겨울 몸을 감싸 줄 '오리털 파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오리털 파카가 색이 너무 진해서 눈에 잘 띈다고 해도, 아이가 따뜻한 것이 먼저 아닌가? 

중요한 것은 아이의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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