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각] 우리집에서 사는 그 사람의 이름은 홈레스 -이인선

by admin posted Dec 0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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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진짜 이름은 멀린이지만 사람들은 그를 그냥 홈레스라고도 부른다.

이제 사흘째 우리집에서 잤다. 

한달을 함께 지내기로 하고 시작해서 벌써 10분지 일을 한 셈이다.

아프리칸 어메리칸 홈레스와 살게 된 것을 안 우리 큰 딸은 엄마 아빠가 어리석고 경솔해서 그런 짓거리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날을 생각하여 문 단속을 잘하라고 신신 당부한다. 

우리들이 집을 안 잠그고 다니는 버릇이 있는 줄 안다면 나중에 어떤 일이 혹시 있을 지 아느냐고 기가막혀 죽겠단다.

누구에게 말해봐도 야단 맞기는 마찬가지 일것 같다.

신원이 확실하지 않은 사람을 어찌 집에 들이냐고...

그러나 홈레스인 그 사람들도 처음부터 길에서 살기 시작한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과거 언젠가는 확실한 신원, 확실한 집이 있었을 것이다. 

집까지는 몰라도 따뜻한 엄마 품... 아기의 무심한 미소 하나에도 세상을 얻은 듯 좋아 해주던 엄마의 품은 있었을 게다.

사랑하는 부모 밑에서 교육도 받고 한 때는 촉망받는 젊은 때도 있었을 것이다.

나보다 더 많은 지적, 혹은 물질적인 것들을 소유했던 사람도 개중에 있었을 것이다.

엄청난 부자였다가 하루아침 걸인이 되었다는 사람들 이야기도 간간히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인생살이가 누구에게듯 만만하지 않으므로 얼마든지 그럴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던가.

하루 악운이 십년 행운을 못 당한다는 말이 있듯이.

어느날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길바닥에 내던져진 자신을 발견하였던 그들...

아무도 내일 일을 자랑할 수 없는 우리들 모두 이렇게 머리 누일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해야 할 일인지!

멀린도 대학 졸업장까지 있는 사람이다. 

그것도 글쎄 그 유명한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미국 시민권자이며 최고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한때는 중학교 선생님이었다. 그러니 그를 어찌 함부로 무시할수 있는가?

그의 사연을 들어보면 어디서부터 삶이 발 밑에 엉기게 되었는가 금방 짐작할 수가 있는데 그것은 9년이나 같이 살았던 부인과 딸 아이를 이혼하며 떠나 보냄으로부터 였을 것이다.

혹은 선천성 장애자 딸을 키우며 너무 힘들어진 인생살이 문제 였는지 모른다. 

아니, 풋볼 선수를 더이상 못하게 척추를 다치는 불운을 겪으면서 부터 였는지도 모른다.  

엄마까지 갑상선 암을 앓는 등등...

자꾸만 예상에 없는 일들이 엉켜 찬란했던 젊은이가 망가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보나마나 혼자 살게 되면서 생활에 질서가 안 잡히고 비용은 두 세배로 불어났겠지.

더구나 딸 아이를 위하여 양육비를 떼어서 보내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 붓기였을 것이다. 

선생 자격증이 없어서 풀타임으로 일을 하지 못해 수입이 충분치 않았던 그에게는.... 이혼후부터 이리저리 흘러 다니면서 잡는 직장마다 별수 없는 것만 잡아가지고 점점 밑바닥으로 떨어지다가 친구와 함께 살던 아파트도 쫓겨 나는 지경이 된 것이다.

그래도 진짜 홈레스가 되어 길거리에서 잔 것은 넉주 밖에는 안된다고 한다. 

이제 그의 꿈은 다시 대학원에 진학하여 선생 자격증을 얻어 정식으로 연봉을 받아 보는 것이란다.

대학에 가서 사정 이야기를 했더니 장학금을 준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대학 다닐 때의 학자금 빚이 3천불이 남아 있는데 그것을 모르고 안 갚았었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에 장학금이 보류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목사님과 의논한 결과 아파트를 얻어서 살고 나면 시시하게 버는 돈, 다 없어지니 남의 신세를 당분간 지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시시한 파트타임 이나마 일을 하고 있으니 다행은 다행.  

잠시동안 교회 식구들에게 얹혀 살고 그동안 그 빚을 갚고 대학원을 간다는 꿈을 이룬다는 것이다. 

이번 주에는 학자금 빚 중 50불을 갚았다고 한다. 

그런식으로 어느 생전에 그 거금 3 천불을 다 갚을까 아득한 일이다.

첫날 아침 그를 태워 큰 길에 내려놓을 때 보니 바지가 앞문이 열려 있었다. 

올리라고 했더니 고장난 집퍼라고 한다. 

바지 3개를 갖고 입는데 좋은 것은 교회갈 때나 입는다나.

상당한 수준의 깔끔한 홈레스지만 홈레스 궁상은 어디서고 이렇게 삐져 나오게 마련이다.

하루에 한끼나 흡족히 먹으면 되는 것으로 생각을 하고 밥을 안 먹을 때도 많지만 먹게 되면 몹시 빨리 먹는다. 

교회에서 음식을 받아 다 먹지 않고 싸들고 온다. 

아껴 두었다가 먹으려고 그러는 모양이다. 

궁상은 못 말린다. 

나는 남편을 협박했다. 

"당신도 나랑 이혼하면 그 짝이 나는 거야!"

남편은 벌벌 떠는 시늉을 했다. 

그래도 마음 속으로는 확신을 하고 있을 것이다. 

"마누라가 이혼을 할려면 30대에 벌써 했지, 뭐 하러 다 늙은 마당에 이제 할꼬?"라고.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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