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공간을 함께 하기. 활동을 같이 하기 - 함께 하는 첫 단추

by admin posted Feb 18,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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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좀처럼 시청하지 않는 실시간 미국 공중파 방송을 보았다. 한국 영화가 어쩌면 오스카 상을 몇 개 받을지도 모른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과연 소문대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여러 분야에서 상을 받는 감격을 선사했다.  

많은 사람들은 멋진 배우들과 후보에 오른 굉장한 영화들에 감탄을 하며 시상식 중계를 보았겠지만, 나는 Zack Gottsagen가 시상자로 무대에 등장한 것에 더 큰 감명을 받았다. 

Zack Gottsagen은 무대에서 아카데미 단편 영화상 수상작을 발표하였다. Zack은 다운증후군을 가진 청년이다. 말끔한 턱시도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동료 배우와 함께 비록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수상작을 발표하였지만 이 청년의 등장을 통해 아카데미 시상 위원회가 어떤 방향을 추구하고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영어로는 "Inclusion"이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사회적 가치가 있다. 

Inclusion이 우리말로는 "포함, 포함된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단순히 포함을 넘어서서 배척하지 않고 함께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도움을 준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미국의 특수교육, 복지 정책의 거대한 흐름은 "Inclusion"이다. 장애 학생들과 성인 장애인들을 사회나 가족으로부터 격리시키거나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와 지역 공동체 속에 녹아 들 수 있도록 최대한 교육과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Inclusion의 첫번째 단계는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다.  

요즘 같은 유비쿼터스 시대에 공간이 별로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공간은 사실 우리들의 생각과 신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봉준호 감독은 일찌감치 이 사실을 인지하고는 그의 영화 속에 윗동네 사람들과 아랫 동네 사람들이 서로 공간을 공유하지 못하고 분리되는 현실을 웃프게 그려내지 않았는가! 

특수교육에서는 장애 학생을 일반 교실에서 수업을 받게 하느냐, 아니면 특수 학급에 배치하느냐 하는 결정을 매우 심각하고 중요하게 다룬다.  

개별화 교육지도안을 짤 때, 특수 교육을 받는 학생이 특수 교육을 받기 위해 일반 수업에서 몇 시간이나 빠져 나와야 하는지 계산하도록 되어 있고, 특수 교육을 받기 위해 일반 반의 수업을 빠지는 것으로 인한 손해나 피해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일일이 기술하도록 되어 있다.  

뇌전증(간질)이 아주 심해도,  배에 튜브를 연결하여 유동식만 먹는 학생도, 양팔의 뼈를 절단하여 다시 이어 붙이는 수술을 받은 학생도 모두 왠만하면 일반반에서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받는다.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보조 선생님을 곁에 붙여 준다. 

비록 이 학생들이 중학교, 고등학교에 가서는 결국 특수반이나 특수 학교에 갈 수 밖에 없으리라는 것을 경험 많은 선생님들은 예상하지만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있을 때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 아이들의 초등학교 시절을 조금이라도 "포함되는" "함께하는" 추억들로 채워 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공간을 함께 하게 되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들이 벌어진다.  

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내가 다니는 교회는 오랫동안 미국 교회의 식당에서 예배를 드려왔다. 

식당이 본당과 좀 떨어져 있어서 미국 교회의 스케줄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고 독립적이고 오붓하게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그런데 4년전부터 예배 시간을 옮겨 본당에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미국교회가 예배를 드리고 나면 한국 교회가 그 공간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교인들끼리 서로 얼굴을 자주 보게 되고, 서로 어떤 식으로 예배를 드리는지, 그 주에는 어떤 행사를 했는지 자동적으로 알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청년들끼리 교류가 오고 가게 되었고, 급기야는 성경공부, 수련회 등을 함께 하게 되었다. 

이러한 연합은 특별한 프로그램이나 성경공부, 차별방지 교육 등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9년동안 없었던 일이 공간을 공유하면서 벌어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장애인들을 돕기 위해 그들을 위한 시설을 따로 만들고, 행사를 개최하고 예배나 성경공부를 특화하여 만들기도 한다.  

이러한 노력들도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사랑과 해결책은 장애인과 그 가족들을 우리들 속으로 초대하는 것이다.  

백화점에 장애인이 왔을 때, 백화점 지점장이 뛰어나와 한가할 때 오라고 한다거나 눈살을 찌푸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들로 인해 행동거지를 좀 조심하고 양보를 해야 할지라도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것이다.  

장애인을 위한 음악의 밤이나 연주회도 좋지만, 일반 음악회나 연주회에 장애인이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장애인 예배도 좋고, 치료 사역도 좋지만 주일예배, 구역모임이나 성경공부에 선뜻 참여할 수 있도록 누군가 초대해주고 따뜻하게 맞아 주는 것이다.  

설사 행사나 예배가 좀 소란해지고, 엄숙미가 떨어지더라도 장애인 친구들이 제자리를 찾고 분위기에 익숙해 질때까지 기다려주는 여유가 필요한 것이다. 

장애인이나 그 가족이 우리 속에 왔을 때,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는 것이다.       

차별하지 않는 것은 단순히 다르게 대접하지 않는 것에서 더 나아가 "환대" 한다는 것이다.

환대 한다는 것은 장소를 공유한다는 것이 포함된다.  

무엇인가를 함께 한다는 뜻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2000년전에 예수님께서 차별 받던 사람들 집에 가서 함께 밥을 드셨나 보다! 

 

이메일 namenosh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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