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아무것도 안 하기

by admin posted Apr 0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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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휴가다!  

학교가 휴교를 하는 바람에 봄방학이 연장되었고, 언제 다시 학교로 돌아 갈 수 있을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상태다.  

T.V를 켜도, 인터넷을 열어도 온통 가장 최선의 길은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 들어앉아 있는 것이라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심지어 소모임도 되도록이면 하지 말 것을 권하고 있다.      

그동안 너무나 바쁘게 살아왔던 나는 갑자기 주어진 휴가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그러나 할 일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딸의 훈련 퇴소식에 가려고 예매하였던 비행기표와 호텔 숙박예약 그리고 렌터카를 모두 취소해야 했다.  

그런데 취소하는 데에는 엄청난 시간과 인내심이 필요했다.  

서비스 센터에 전화를 걸면 여러 단계를 거쳐 비로서 인간 안내원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이 단계는 마치 '인내심 지옥 훈련'과도 같다.  

수화기를 귀에 대고 있다가 귀가 너무 아파 스피커 폰 기능으로 바꾸고는 허드렛 일을 하면서 인간 안내원과 연결되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해야 한다. 

보통 이 과정이 짧게는 40분, 길게는 1시간도 넘게 걸린다. 

인간 안내원과 연결이 되면, 안내원이 뭔가를 체크한다고 또 기다리라고 한다. 

여기서부터 또 20분 이상이 걸린다. 

운이 나쁘면 갑자기 전화가 뚝 끊어지기도 한다.  

이럴 때 밀려오는 허무감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아무튼 이렇게 예매 취소를 하는데 한나절 이상이 걸렸고, 이 과정을 겪고 나면, 엄청난 스트레스가 쌓여서 그 다음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른다.  

그나마 호텔과 비행기표는 취소가 되어 환불의 희망이 있지만 렌터카는 취소가 아예 되지 않는 상황이다.    

또 한가지 할 일은 학교로부터 주기적으로 오는 이메일과 문자에 짧은 영어로 답변을 하는 것이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에, 학교 교장 선생님과 주임 선생님이, 그리고 교육청으로부터 수십통의 이메일이 날라온다.  

또 학교는 문을 닫았지만 IEP 회의나 각종 성적처리 등은 온라인 시스템을 통해 하라는 업무 지시도 떨어졌다.  

성적처리는 늘 해 오던 것이라 잘 할 수 있지만  스카이프(Skype)를 사용한 학부모 회의는 정말 걱정이 된다.  

만지는 모든 것을 고장내는 '마이너스의 손' 이기에 과연 문명의 이기를 사용한 IEP 회의를 잘 할 수 있을지 한숨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전염병이 돌 때마다 첨단 기기를 활용한 화상 회의를 하게 될 운명이므로 어떻게든 이번에 잘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군부대에 갇혀서 너무나 심심해 하는 딸의 전화를 받는 것도 중요한 일 중의 하나이다. 

딸은 원래 이번주에 신병 훈련을 마치고 졸업식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졸업식에는 가족들이 참석하여 축하해 주고 사진도 찍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 다음 목적지인 직업 훈련장으로 데려다 주는 것이 관례였다. 

그러나 COVID-19, 즉 코로나 바이러스로 5월 11일까지 군부대에 있는 군인들의 이동이 금지되었고, 가족들의 면회도 차단되어 딸의 졸업식은 인터넷 동영상으로나 볼 수 있게 되었고, 딸은 꼼짝 없이 5월 11일까지 할 일도 없이 부대에 머무르게 되었다.  

이렇게 심심해 하는 어린 군인들을 위해 부대에서 약간의 자비를 베풀어 매일 오후에 약 30분 정도씩 전화를 사용할 수 있게 해 준 모양이다. 

그래서 매일 딸에게 전화가 온다. 

이 30분동안 나는 딸을 즐겁게 해 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딸이 집에서 지낼 때 보다 멀리 군대에 있는 요즘에 훨씬 더 많이 이야기를 나눈다.

주변을 살펴보니, 엄마들이 몹시 힘들어 한다.  

아이들 삼시 세끼 밥을 해 주랴, 공부하라고 잔소리 하랴 그야말로 엄마의  악몽이 펼쳐진 것이다.  

아침밥을 차려주고 돌아서면 아이들은 "엄마, 오늘 점심 뭐야?"라는 멘트를 날린다. 

더 짜증이 나는 것은 도대체 언제까지 아이들이 집에만 있어야 할지 기약이 없다는 것이다.  

"불확실성" 이것이 바로 사람들을 화나고 지치게 하는 것이다.  

집에서 모처럼의 휴가를 푹 즐기지 못하고 안절 부절 못하는 나도, 집에서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노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고등학생 아들도, 교회 모임을 해야 하는 것인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 고민 중인 남편도, 부대에서 나가지도 못하고 민간인 음식도 못 먹는 딸도, 모두 이 불확실성에 지쳐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이야말로 강한 멘탈 즉 '회복탄력성' 이 필요한 시기이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마음을 맞추고 하루 하루 살아가야 겠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즐겁게!  

우울한 마음을 내려놓고 힘을 내야겠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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