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한인문인협회 회원작품] 게르니카 -김률

by admin posted Apr 14,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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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정의 갈림길에 서게 되면 나도 모르게 손을 비비는 습관은 전화벨이 울리는 순간에도 나타났다. 그러나 손을 비비는 시간은 잠시였다. 발신자가 마치 내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나는 발신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역시 아버지였다. 다소 힘이 빠진 듯한 목소리는 수화기 너머에서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수화기를 귀에 댄 채 침묵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리디아, 리디아. 수화기에서 나의 이름은 계속 들려오고 있었다.   

아버지의 삶의 무대에는 많은 여인들이 등장했다. 아버지와 몸을 섞은 여인들의 이름은 한 두 페이지로 끝나지 않겠지만 그 사실이 내 신경을 건드리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는 시도 때도 없이 여인을 달리하며 여인의 몸을 더듬었을 테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좋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임종 시 모습을 나타냈더라면 말이다. 어머니의 숨이 딱 멎는 순간 나는 아버지의 존재를 내 머릿속에서 말끔히 지웠다. 손가락이 유난히 긴 내 손을 보며 아빠 손 닮았네, 하던 그 아버지를.

아버지는 돈이 많은 사람이었다. 걸어도 걸어도 아버지의 땅은 끝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걷던 여섯 살의 소녀에겐 게르니카가 전부 아버지의 땅 같았다. 이혼을 먼저 들먹인 사람은 어머니였다. 돈을 쫓아 끊임없이 아버지 주위를 맴도는 여자들 속에서 어머니는 불행의 씨앗을 삼킨 여자같았다.

아버지는 돈에 인색하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죽자 할아버지가 소유하던 모든 것이 고스란히 외동 아들의 몫이 되었다. 게르니카의 최고 갑부가 된 아버지는 이혼을 요구하는 어머니에게 땅을 한 움큼 떼 주었는데 그 땅도 어린 내가 걷기엔 발이 아플 정도의 넓은 땅이었다. 어머니에게 두말없이 양도된 목록에는 땅 외에도 나와 오빠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땅을 떼어내 듯 우리와 연결된 끈도 간단하게 떼어내버렸다. 아버지가 뿌린 씨가 곳곳으로 흩어져 또 다른 나와 오빠가 여기저기서 쑥쑥 자라고 있었던 것일까. 그러니까 어쩌면 나와 아버지의 관계는 혈연 관계가 아니라 돈이나 땅의 관계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20년의 세월에 내 이름을 불러오는 일이 단 한 번도 없었을까. 늘 부재중이던 아버지였다. 이혼 전에도 아버지를 볼 수 있는 날은 한 달에 한 번 꼴이었다. 어머니가 구입한 새 집에서 나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것은 솔직히 없었다. 아, 과연 그랬던 것일까. 일주일 전, 20년만에 아버지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단호하게 끊고 나서 한참을 넋 나간 사람처럼 서 있었다. 그리고 지금, 아버지는 다시 내 이름을 계속해서 부르고 있는 것이다.

"내 널 금방 알아볼 거라 확신했었지. 날 닮은 사람을 찾으면 되니까."

나와 아버지와의 줄달리기 싸움에서 승자는 아버지였다. 나는 수화기를 귀에 댄채 손을 비비다말고 그럼 어디서 만나요? 했던 것이다. 내 앞에서 잔잔히 미소짓는 아버지의 모습은 내가 매일 들여다보는 거울 속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라파엘은 잘 있니?"

나는 대답 대신 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림같이 고요한 산에서는 요즘 들어 자주 총소리가 들려오곤했다. 파죽지세로 밀고 올라오는 프랑코 반란군에 대항하는 자유 연합 공화파가 펼치는 게릴라전이라고 이곳 게르니카 사람들은 말했지만 나는 공화파건 프랑코 반란군이건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세상은 달랐다. 작년, 그러니까 1936년 7월에 프랑코가 일으킨 쿠테타로 시작된 스페인 내전은 세상의 관심거리가 됐다. 히틀러가 이끄는 독일군과 무솔리니를 수장으로 하는 이탈리아가 적극적으로 프랑코 반란군을 도우는 반면 공화파를 도우려는 영국과 프랑스를 주측으로하는 민주 세력의 국가들은 국제연합의 불간섭 조항을 빌미로 미적거렸다.

미적거리는 국가 대신 들고 일어선 것은 세계 각국의 지성인들이었다. 헤밍웨이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오빠가 공화파 일원으로 바르셀로나로 떠난 것은 순전히 헤밍웨이 때문이었다. 헤밍웨이의 스페인 사랑은 오빠를 통해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헤밍웨이가 공화파를 도우기 위해 통신원 자격으로 스페인 내전에 참여한다는 소식에 오빠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짐을 꾸렸다.

"어쩌면 바르셀로나가 이곳보다 안전할 지 모르지. 프랑코가 이곳을 가만두지 않을 거라는 소문이 들리니까."

아버지의 말이 사실이라면 적어도 나는 오빠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내가 더 불안에 떨 판이었다. 아버지와 마주한 식당 앞 넓은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매주 일요 시장이 서는 곳이었다. 실내에서 식사를 하기에는 날씨가 지나치게 청명해 아버지와 나는 야외에 설치된 식탁에 앉아 사람들로 북적대는 광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바스크 민족이 대부분인 이곳은 프랑코를 싫어했다. 바스크 민족의 독립을 위해선 자유 연합 공화파가 승리하는 것이 유리했다. 그것이 공화파에 환호를 보내는 이유였다.

"프랑코의 총 공세가 펼쳐지기 전에 이곳을 잠시 떠나있는 것이 어떻겠니?"

"그것이 절 만나자고 한 이유인가요?"

"네가 여길 떠나지 않아도 할 수 없지만 난 그러길 바래."

아버지의 목소리는 하늘에서 웅웅거리는 소리에 묻혔다. 내가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번쩍이는 불빛이 보였다. 공군기에서 무자비하게 쏘아대는 총알에 사람들이 낙엽처럼 쓰러지고 있었다.

"저건 독일기야. 빌어먹을 프랑코. 빨리 여길 피하는 게 좋겠어."

아버지의 목소리는 다급했지만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총알에 어디로 숨는다는 것은 헛일이였다. 뛰어가는 사람들이 광장을 채 벗어나기도 전에 쓰러지고 있었다. 또 한 무리의 독일 공군기가 시야에 들어오자 아버지가 나를 향해 소리쳤다.

"식탁 밑으로 엎드려."

식탁이 견고한 방패막이 될 수 없겠지만 달리 뾰족한 수도 없었다. 식탁 밑으로 엎드렸을 때 나는 머리 위를 지나가는 공군기의 굉음을 들을 수 있었다.

눈을 뜬다는 것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살아있음이 죽음보다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느낀 것은 눈 뜬 바로 그 다음 순간이었다. 등에서 무게가 느껴져 몸을 꿈틀거렸을 때 내 몸을 타고 팔 하나가 땅으로 툭 떨어졌다. 손가락이 긴 손을 보는 순간 나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다시 눈을 뜬 순간에 하늘이 내려앉고  땅이 꺼지고 있었다. 천천히 몸을 돌렸다. 내 몸을 담요처럼 감싸고 있던 몸이 비스듬히 땅으로 내려앉았다. 몸에서 흘러내린 피가 조금씩 바닥을 적시기 시작했다. 내 몸에도 흐르고 있는 피였다.  마침내 나를 찾아온 피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아버지의 상체를 일으켜 내 가슴으로 힘껏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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