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한인문인협회 회원작품] 봄 -소머즈

by admin posted May 0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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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세상이 시끌시끌하다. 

온통 바이러스 이야기뿐 다른 뉴스는 기대할 수가 없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쪼그만 게 전쟁보다 더 위협적이고 경제를 곤두박질치게 만들었다. 보이지도 않는 그 놈을 잡을 수도 없다니 인간인 내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실감할 뿐이다. 

멍하니 창밖을 보는데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다행히도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마음을 조아리며 다녔던 여행이 불과 두달 전이었건만 아주 오래된 과거처럼 주마등 스치듯 지나간다.

모처럼 기분 좋게 여행 계획을 세우며 올해는 상반기 하반기 어딜 다녀올까 고심하다가 남미 쪽으로 가기로 결정한 것이 지난 1월이었다. 

들뜬 기분을 한껏 부풀리며 남미 지도를 들여다보고 있었는데 중국으로부터 시작한 코로나가 조금씩 발목을 잡고 늘어졌다. 

아침에 일어나면 만사제치고 티브이 앞에 앉았다. 

하루가 멀다하고 상황이 바뀌고 있었다. 내 눈과 귀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유럽에서 중국인들을 바이러스 보듯 한다는 뉴스를 접할 때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난 한국계 미국 시민이니 다행이야,라는 생각은 잠시 뿐이었다. 

내 얼굴에 국적이 표시되어 있지 않으니 자칫하면 화를 당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소름까지 돋았다. 

기관지가 약한 것도 두려움을 더했다. 

조금만 날씨가 변덕스러워도 기침과 재채기를 동반하는데 그것이 코로나에게는 좋은 먹잇감이라니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것 같았다.

뭐가 그리 급한 지 일사천리로 여행비 값을 지불했다. 그러나 가슴 한 켠에 남은 미련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멀리 가는데 가는 김에 2주 동안 쿠르즈도 타고 오자는 내 말에 종수아빠는 고개를 저었다. 

집을 너무 오랫동안 비워둔다는 것이 이유였다. 

두 번에 걸쳐 구경하면 어떻겠냐는 말에 아쉬웠지만 수긍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종수아빠의 선견지명 같은 것이었다.

보통 내가 계획한 여행에는 아무런 토를 달지 않고 짐을 꾸리던 종수아빠였는데 뜻밖의 반대에 사실 난 서운함과 원망의 감정이 교차했었다.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평지의 도시이고 한 400년을 스페인에 의해 지배를 받았던 나라인지라 유럽풍으로 오래된 건물들이 조각처럼 아름답다.

부강했던 예전과는 달리 지금은 경제가 좋지않아 빈부의 격차가 심하고 소상공인들의 데모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나라다. 

도착한지 3일째 되던 날 뜻하지 않게 데모를 구경할 수 있었다. 

자유시간에 도시를 걸어다니며 구경을 하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플랜카드를 들고 행진하고 있었다. 

주로 남루한 옷차림에 남녀노소 할 것없이 모두 나와 구호를 외쳤다. 

데모의 행렬을 따라가는 동안 힘차게 내려치는 북소리가 내 가슴의 명치끝에 얹혀 쉽게 내려가지 않는 아픔으로 남았다. 

정부의 부정부패로 인한, 서민들을 괴롭히는 불평등이 아르헨티나에도 만연하고 있었다.

이과수폭포는 웅장하면서도 수려한 아름다움을 품고 있었다. 빅토리아폭포, 나이아가라폭포와 함께 세계 3대 푹포인 이과수폭포도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반대편인 브라질 쪽에서 바라보는 폭포의 아름다움이 더 웅장하다.

자연의 아름다움에 경외스러움과 숙연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파타고니아(Patagonia)의 빙하는 신의 태초의 작품을 보는듯 황홀했다.

그러나 그곳도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협을 비켜갈 수는 없었다. 

사진을 찍어 주겠다고 내가 다가가면 손을 내저으며 피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는 괜시리 무안해지고 서글퍼졌다.

그러나 그네들의 잘못이 아니라 죽음의 두려움이 그들과 나를 갈라놓는 것임을 알기에 조금은 위안 받을 수 있었다.

마주치는 사람들 속에서 누군가가 어디서 왔나고 물었을 때, 나는 유럽 사람들이 중국인을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본다는 TV 뉴스가 떠올랐다.

"피닉스 애리조나에서 왔습니다. 오리지날은 사우스 코리아입니다."

짧고 명료한 종수아빠의 대답에 그들은 안도의 숨을 쉬듯 표정이 달라지며 한마디했다.

"중국과 가까이 있어 사우스 코리아가 피해가 큽니다."

그들 입에서 나오는 사우스 코리아가 너무 매혹적으로 들려서인지 그들이 왠지 친근하게 느껴졌다. 

남미 여행은 기침과 재채기가 나올까 노심초사하며 보낸 나날이었다. 

기침사탕과 에드빌은 한 시도 내 주머니를 떠나지 않았다. 콩 주어먹듯 내 입안을 들락거렸다. 

무사히 엘에이 공항을 빠져나오는 순간 나를 죄고 있던 긴장이 풀리며 온몸이 풀솜이 되어버렸다.

두 달이 지난 지금, 여전히 코로나가 저승 사자처럼 주위를 맴돈다. 코로나라는 소낙비는 언제나 멈출 것인가. 이웃들과 함께하는 평범한 일상의 하루가 먼 미래의 일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하늘 아래 살고 있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 굴복할 수는 없지 않는가. 

다 잃어버렸을 때의 두려움과 공포, 뭔가를 빼앗겼을 때의 공허로움이 흙빛의 새싹을 튀우고 배고픔의 쓰린 기억들이 타인의 배고픔을 먼저 헤아리게 하는 계기가 되길. 

만지지도 볼 수도 없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이 세상의 이상한 전설이 되어가는 상황에서 나는 그렇게 손을 모아 빌어본다. 봄은 그림처럼 왔고 꽃들은 저마다 활짝 웃는다. 창밖을 바라보며 손을 모은 내 입가에도 비로소 미소가 번진다. 내 시야에 들어오는 세상도 나를 향해 환히 미소짓는다. 봄,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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