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각] 아버지의 배반 2 -이인선

by admin posted May 1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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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노인들에겐 소망이 없다고 하는가? 

30년 전에 늦게 난 막둥이를 박사 만들 꿈을 안고 58세, 53세에 이민 오신 부모님은 미국에 도착한 첫날부터 영어 모른다고 뒤쳐져 있지 않으려 하셨다. 도착 그날로 둘째 아들 식품점 사업을 도우신다고 배달도 다니시고 픽업도 다니셨다. 아, 지금도 생각이 난다. 시카고 우리 집에 도착하시던 날, 영어로 원 투 쓰리를 백까지 써 달라고 하시더니 부지런히 쓰고 또 쓰며 연습하시던 것을. 그래서 국민학교 4학년 학력이 전부인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혼자 개인수표를 쓰실 수 있다.

뉴저지로 이사 가셨을 때 아버지는 천직을 다시 찾으셨다. 그 이름,, 농부! 김포에서 인삼포를 경작하셨고 평생 밭농사를 조금 지으시던 기본 실력으로 농사일을 시작하셨다. 나이나 언어문제로 일 안 해도 정정당당한 노인사회에서 우리 아버지는 3년전, 87세까지, 엄마 82세 돌아가시기 석주전까지, 손수 채소밭을 가꾸어 돈을 벌어 쓰시던 일 부자이셨다. 그 부지런함으로 손녀들 시집갈 때마다 2천, 3천 불 씩이나 부조돈을 챙겨 오신 분들. 그렇게 평생 일을 하신 그분들 눈에는 돈벌이 할 일들이 항상 눈에 뜨인다고 하셨다. 한국 가면 한국에서, 미국 오면 미국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낼 수 있다고 하셨다. 돈 버는 일에 순발력이 없는 게으른 우리 부부를 많이 답답해하셨을 것이다. ㅎㅎ 평생동지 엄마가 돌아가신 후 어쩔 수 없이 걷어 버리셨지만 두 분이 맨땅에서 시작한 채소밭을 장장 15년이나 보물단지처럼 가꾸실 때 말이 하기 쉽게 채소밭이지, 얼마나 두 분이 수고를 많이 하신 지 우리는 안다. 인건비도 물값도 안 나오는 그런 일! 사시던 아파트에서 단지내 빈터를 매니저에게 공짜로 얻으신 것은 기발한 발상이었지만 묵은 잔디 뿌리를 다 걷어내는 것만 해도, 자갈들을 골라내고 흙을 엎고 거름을 주어 옥토를 만드는 것도 노인네들 맨손으로 얼마나 힘든 싸움이었을까? 매년 더 커지는 그 채소밭은 손자 손녀들의 순례 장소였다. 한국의 농촌 일부분이 미국의 도심으로 이사 온 곳. 일년에 한번씩 그곳에 가보면 오이, 호박, 부추 파, 마늘, 상추, 쑥갓, 아욱, 고추, 배추, 무우, 가지 등등 얼마나 하수분으로 잘 자라던지! 콧노래를 흥얼대며 일하시던 아버지를 따라서 절로 행복해지는 특별한 쉼터였다. 한약 찌꺼기를 얻어 다가 거름으로 쓰셨는데 그렇게 정성으로 잘 키운 채소들은 시장에서 파는 채소들과는 싱싱함과 맛에서 그 차원이 달랐다. 노인 아파트에서는 두 분이 밭에 나갔다 오실 시간에 맞춰 사람들이 줄지어 서서 기다렸다가 빼앗다시피 돈 내고 사갔다. 그 때 팔고 남은 것은 친지들에게 공으로 나눠 주기도 하고 밤 늦도록 허리 쪼그리고 다듬어서 시장보다 세 곱절 많게, 값은 반값에 파셨다. 어떤 사람은 맛있다고 타 주의 자식들에게 소포로 부치기까지 했다. 그 동네분들은 지금도 그때가 그립다고 하신다. 

한국 사람들 중에 우리 아버지만큼 훌륭한 이민 정신을 가진 분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한국인 특유의 친절, 근면, 열심의 기본 정신으로 사는 분들! 그런 자세로 사는 분들 때문에 지구 끝 어디에 가도 이민에 성공한 우리나라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맨몸으로 쫓겨난 우즈베키스탄에도, 차별대우가 극심한 일본에서도, 무더위 남미 사탕수수 밭에서도, 심지어 북극에서도 한국인은 살아 남는데 성공하는 것이다. 길이 없으면 만들어 가는 이민정신, 창조적인 개척정신은 누구라도 어디서라도 성공을 찾아주는 길잡이인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아버지의 부지런함이나 인품을 알고나서, 혹은 박사 아들과 쟁쟁한 손주들을 두신 것을 알고나서 그 아주머니가 접근한 것은 아니었다. 설사 그랬다고 해도 순전히 그 아주머니의 복이었다.  연세 많은 남자 노인네를 찾은 것은 본인 나이도 문제이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가 그 아주머니에게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즉 영주권이 없다는 것. 영주권이 없어 보지 못한 사람은 꿈에도 알 수 없는 일이겠지만 이것은 보통 서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쁜 사람들이 섞여 사는 이 세상에서는 다른 사람의 약점을 이용하는 치사한 사람들도 적지 않으니까. 돈을 빌려 가서 안 갚는 사람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달라고 하면 찌른다고 공갈 협박을 한다. 영주권 신청을 구실삼아 최소 임금으로 몇 년 씩 부려먹고도 영주권은 나 몰라라 한 악덕 업주들... 동족에게서 더 큰 설움을 당한 수많은 불체자들이 이 미국땅 음지에서 17만명이나 눈물로 빵을 삼키고 있는 것이다.  공식적인지는 잘 모르지만 한국 사람 너댓명 중 하나는 불체자라고 한다. 한인 18프로가 불체자이고 국가별로 6위에 속한다나. 그 아주머니도 많은 불이익을 당하며 불안하게 살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머리가 좋은가? 돌아가시기 직전의 할아버지와 결혼하여 영주권을 얻는 방법이라! 미국 이민법상으로 불체자라도 시민권자와 결혼하면 4개월 이내에 인터뷰가 잡히고 6개월이면 임시 영주권이 나온단다. 그러나 국경을 불법적으로 넘어온 사람은 그렇게 구제받을 수가 없고 정식 비자를 받아서 온 사람들 중에 불체자가 된 사람만 가능하다고 한다. 남자는 나이가 많으면 아무 쓸모가 없다고 했던가? 그러나 영주권이나 시민권이 있는 남자 노인네 신세는 완전 다르다. 우리 아버지도 그러니까 시민권자이기 때문에 엄마가 돌아가시자 마자 아우성들이었다. 돌아가시기 전에 한 사람이라도 구제해 주고 가야 되지 않느냐고 노골적으로 덤벼들었다. 그러나 그동안 남의 이야기로 돌리고 조용히 사셨는데 그 이유는 엄마만큼 좋은 분을 만날 수가 없기도 하셨지만 가짜 혼인 같아서 그리 내켜하지 않으시는 성품 때문이기도 했다. 똑똑하신 그 아주머니가 우리 아버지같이 언제 세상 떠날지 모르는 노인네에게 결혼을 해 달라고 비는 더 중요한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신분 문제 해결과 함께 노인 아파트 입주권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차지하고 사시는 노인 아파트는 뉴저지 한인촌의 중심가에 있는데 교회, 식품점, 상점에 걸어 나갈 수가 있는 위치이다. 모든 것이 편리해서 살고 싶은 사람은 줄줄이 많고 한번 들어가면 죽기 전에는 절대로 안 나간단다. 요즈음은 하나같이 다들 죽지 않고 오래 살기 때문에 도저히 웃 돈을 얹어 주고라도 차례가 오지 않는단다. 그런데 그녀는 이렇게 영주권과 노인 아파트, 두 토끼를 단번에 잡을 수가 있으니, 우리 아버지가 딱 그 사람인 것이다! 

아버지와 연결이 되자 마자 그녀는 온 힘을 다해 열심히 돌봐 드렸다. 틈틈이 찾아가서 부지런히 음식도 해드리고 이야기 동무도 해드리며 잠간 동안에 마음을 사로잡는 일에 완전 성공하셨다. 그리고 기다려서 아들들의 허락까지 받아낸 후에는 살림을 장만하기 시작하셨다.  비싼 흙돌 장수침대요, 침대보다 더 비싼 고급 소파 등, 아파트에 있던 낡아빠진 모든 것을 싹 버리고 헌 옷 가지들도 다 버리고 완전 새 신방을 꾸렸다. 우리 아버지 인생에 이렇게 화려한 변신은 처음이시다. 아버지께서 아주머니에게 마음 놓고 "여보~"라고 부르시는 소리를 전화로 듣고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90살 노인네의 결혼! 노인 아파트에서는 난리가 났다. 그동안 연세만큼 초라하던 아버지가 그렇게 변하다니! 아버지는 그 아주머니가 사다 드린 예쁜 색 새 잠바를 입으시고 반짝반짝하는 얼굴로 젊은 새 부인과 모든 사람들 앞에 짜안~하고 나타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셨단다. 우리 아버지보다 새 장가를 더 잘드신 분이 없다고 수근 수근 한단다. 하!  상상해 보라. 커플 핸드폰을 아주머니가 선물로 마련해서 가져왔올 때 어떤 얼굴이셨을까! 글짜가 댓자로 큰 노인용 핸드폰으로 올드 틴에이저 둘이 서로 전화를 해대며 소근 거릴 것을 상상할 수가 있지 않은가! 

아주머니가 늦도록 근무하는 날은 아버지는 잠도 안 주무시고 기다리시며 틈틈이 전화를 주고받으셨다든가..ㅎㅎㅎ단순히 남에게 좋은 일도 하고 말벗도 삼으시라고 아주머니를 소개해 드린 일이 이렇게 좋게 열매를 맺어 잠깐 사이에 진짜 연애 감정까지 생긴 것은 정말 기적이요,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아버지만 기쁜 것이 아니라 그 아주머니도 우리 아버지처럼 훌륭한 분과 연결된 것이 황송해서 마음껏 존경과 사랑을 드릴 수가 있는 점에서 너무나 좋다고 하신다. 이번에 깨달은 점은 이민 노인사회의 많은 문제를 이런 식으로 해결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것 같다는 것이다. 고령화 추세로 백세 가까이 사시는 분들이 많아졌는데 '외로운 노인들 짝지어 주기'라는 캠페인..어떨까 싶다. 

부디 오래도록 두 분이 알콩달콩 사랑을 나누며 사시면 참 좋겠다. 이런 마음이 엄마에게는 배반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버지에게는 행운이요, 말년 대박이 아닌가!

아버지의 배반? 아니다. 하늘에 계신 엄마도 아마 내려다 보시면서 빙긋이 웃으실 것이다.

"얘, 너네 아버지 대박 날 자격 있으셔~" 그러실 게다. 샘이야 많이 나시겠지만.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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