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조각] 빨리 나으세요...라니? -이인선

by admin posted Jul 0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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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수술을 받고 병원에 누워 있는 동안 교회 식구들이 많이 방문하여 주었다. 나는 늘 바쁘다는 핑게로 환자들에게 가보지 못하고 지나치곤 했는데 막상 받고 보니 참 미안하고 감사하기 짝이 없다. 여러 화분과 함께 "빨리 나으세요"라고 쓴 풍선이 둘이나 들어왔는데 오늘 아침 그 문구를 보자 다 잊어버렸던 15년쯤 지나간 옛일이 하나 생각난다.

류명화 였던가... 야례 엄마... 

우리가 빨래를 해다 주던 드랍 오프 세탁소 주인의 부인이었다. 젊고 상냥하고 웃음이 가득했던 그녀… 공손하고 후덕해 보였던 그녀는 나의 올캐의 어릴적 부터의 친구일 뿐 아니라 그 남편은 내 동생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여서 동생이나 다름없이 지내게 되었었다. 이민 오는 길이 수월치 않아서 한국에서 남편의 수속이 끝나도록 딸과 마냥 기다렸었고, 남편은 위장 결혼했다가 이혼을 하는 케이스로 와서 세월을 보냈었다. 드디어 5년인가 지나서 부인이 정식 비자로 미국에 들어와서 온 가족이 합세했고, 이듬해 아들까지 낳았으니 너무나 깨가 쏟아지게 행복해 하며 살고 있었던 즈음이었다.

우리가 믿는 세상 행복이란 신기루 같은 것인가? 한 순간에 그녀의 꿈과 사랑이 산산 조각이 나버린 것이다!

청천 벽력같은 소식--일터에서 괴한에게 습격을 받아 피를 흘리고 있다는 연락을 그녀의 남편이 우리에게 제일 먼저 전화로 알렸다. 너무나 엄청난 일에 기가 질려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흑인 동네에서 한인들이 강도를 맞거나 살인을 당하는 일을 가끔 들은 적이 있는 시카고 지역이지만, 그곳은 백인들이 많이 사는 조용한 교외였는데 더구나 내가 가까이 아는 사람이 그렇게 당하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머리를 쇠파이프로 때려서 그렇게 했다는 것이었다. 카운터에 붙은 옷걸이를 억지로 떼어다가 무지막지 패버렸던 것이다. 세상에 얼마나 아팠을까? 그녀의 고통하는 모습이 오래도록 머리 속에서 정지되어 사라지지 않았다. 그 동네에서는 총에 맞아 죽었다는 소문이 대번에 돌았다.

그날 일을 부랴사랴 마치고 떨리는 가슴을 안고 병원에 가보니 간신히 숨은 붙어 있는데 얼굴이 퉁퉁 붓고 상해서 보여주지도 않는 것이었다. 놀라 뛰어온 교회식구들과 밖에서 서성대면서 기도를 하고 또 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나 자주 보던 사람이 당한 일에 놀라서 잠도 제대로 못잔 그 다음날 아침이었다. 가게 문을 열자마자 어떤 백인 남자가 들어오더니 고개를 잘 들지 못하면서 왠 카드를 내미는 것이었다.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사고 당한 여자의 친구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녀의 이름을 묻는 것이었다. 이름을 몇 번이나 물어서 겨우겨우 겉장에 쓰고 난 후 이것을 가져다 주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용태를 몇마디 묻더니 금방 가버렸다. 나는 이름도 모르는 친구도 있나? 이상하다, 영어가 안 통해서 그럴수도 있지 하며 일을 했는데 그날 오후에 그녀의 소천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을 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떤 미국 남자가 전화를 하였다. 들어보니 아침에 카드를 갖다 준 사람이었다.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것이었다. 또한 그 동네 사람들이 화가 나서 소동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경찰이 그 범인을 잡을 것이다. 꼭 잡아내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 남자의 반응이 아주 이상했다. "경찰이 절대로 못 잡는다"고 정색을 한 목소리로 그러는 것이 아닌가! 나는 너무도 기분이 나빴다. 전화를 끊고  그가 남기고 간 카드가 생각이 나서 열어보았다. "빨리 나으세요"였다. "빨리 나으세요" 라니, 그당시 온 동네가 총격을 당해 죽은 것으로 소문이 났었는데, 총 맞은 사람이 어찌 죽지 않고 살 수 있는가 말이다. 그렇지만 그만은 아직 안 죽은 것과 죽기가 쉽지 않을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죽었다니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모양이었다. 나는 벌벌 떨면서 경찰에 신고를 하였다. 그 남자가 범인임에 틀림없다!

며칠 후 그녀의 장례식에서 그 남자를 또 보게 되었다. 목사님이 말씀 중에 그 사건을 묘사하면서 누군가 머리를 때려서 죽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대목에 (미국사람이 많이 와서 영어로도 이야기 했음) 뒤쪽에 앉았던 그가 일어나 나가버리는 것이었다. 아마 양심에 걸려 듣기 힘들었을까? 이놈이 범인일텐데 경찰은 무얼하는가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여러 사람, 특히나 정신과 의사인 교우에게 그 말을 하니 범인은 반드시 죽음을 확인하려는 심리가 있다며 그 남자가 틀림없다며 같이 흥분을 하는 것이었다.

경찰의 태도는 모호하기만했다. 우리는 그녀가 한국인이라 그런가 하며 분개만했다. 중국 사람들은 이런 일을 당하면 경찰한테 맡기지 않고 직접 찾아내서 보복을 한다나 그래서 그들을 무서워해서 함부로 안 건드린다나 우리 한국 사람도 그리해야 한다나 하는 소리만 하다가 세월이 지나고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경찰은 그녀의 남편에게까지 혐의를 가지고 수사를 했는데 한사람의 죽음 뒤에는 의례 소문과 이상한 말들이 도는 것이어서 남편과 술 때문에 그전날 싸움을 했었다느니, 그녀가 손에 꽉쥐고 있던 것이 남자의 음모였다니, 아마 강간하고 죽인 모양이라느니 여러가지 말이 있었지만 아무 것도 확실하지 않았고 그냥 그렇게 지나가 버렸다.

한 일년여 지나서 우리 가게에 그 남자가 또 왔었던 것은 정말 경악 질색할 일이었다. 나에게 한다는 소리가 앞으로는 우리가게에 옷을 가져와야 겠다며 그 여자의 죽인 범인은 잡혔냐고 물었다. 자기도 경찰에게 끌려가 온갖 심문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겉으로야 멀쩡하려고 애썼겠지만 속으로 내가 얼마나 기가 질려서 혼이 났겠는가? 내가 경찰에 고발한 것을 아는 그가 나에게 보복을 한다면? 끔찍한 상상으로 잠을 설치며 또 경찰에 전화를 하였다. 그들은 다시 말하지만 그 남자는 알리바이가 완전하다며 아직도 범인을 찾고 있다고만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미궁에 빠진 사건 속의 "빨리 나으세요" 귀절... 정말 그가 범인이 아니었을까, 기였을까? 다행히 그 후로는 그 남자가 다시 오지 않았다. 돈을 떼로 가져다 준대도 그 사람은 다시 보기 싫었다. 

억울히 죽은 그녀의 따뜻한 미소가 떠오른다. 아픈 것은 잠깐이어도 영원히 행복하게 지내리라 믿는다. 또한 언젠가 범인이 잡혀 그녀의 억울한 피를 위로할수 있기를 빈다.

(2007년 5월)

후기: 그녀의 딸 야례는 박사학위를 딴 후 시카고의 엄마 묘지에 찾아왔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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