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조나 한인문인협회 회원작품] 알 나크바 -김률

by admin posted Sep 1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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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지는 강둑에서 하산은 16세기의 로미오가 되는 것을 거부했다. 

"줄리엣을 따라 죽는 로미오가 아닌 줄리엣을 살려내는 로미오가 될 거야.."

너를 떠나느니 차라리 죽겠어, 라는 말을 내가 한 뒤였다. 그것은 나의 진심이었다. 하산의 말 역시 진심임을 나는 안다. 죽음도 우리를 떼어낼 수 없을 만큼 우리는 사랑하는 것이다. 전쟁의 여파는 강둑에도 미치고 있었다. 사람들로 붐비던 가을의 강둑은 파리 날리는 시장통 거리와 다를 바 없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전쟁에 떨던 두려움은 물러가지 않고 여전히 사람들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결혼 밖에 해결책이 없어."

"그게 불가능하니까 내가 죽고 싶은 거지."

우리 사이에는, 로미오의 몬테규가와 줄리엣의 캐플릿가 사이에 벌어지는 반목질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큰 장애가 가로막혀 있었다. 유대교와 이슬람교, 넘지 못 할 태산같은 장애였다.

"내가 유대교로 개종할 거야. 야훼는 개종한 나를 기꺼이 품어줄거야."

개종. 하산의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이었고 나도 전혀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이었다. 종교를 초월하고 인종을 초월하고 죽음을 초월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었다. 나 역시 하산과 결혼 할 수 있다면 나에게 이슬람교로의 개종 따윈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산과 함께라면 지옥도 천국이었다. 그의 곁을 떠나는 것이 지옥이고 불행이었다. 하지만 나는 곧 내게 닥칠 불행을 예감한다. 

유대인 추방 명령이 내려진 것은 2주 전이었다. 아버지가 경영하는 빵공장에서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아버지는 침통한 표정이었다. 침통한 표정의 이유는 바깥에서 들려오는 고성이 말해주고 있었다. 집 안의 모든 창문을 닫아도 유대인은 물러가라,는 목소리는 집안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차라리 끝나지 않는 전쟁이 되어야 했다. 이기적인 생각일지라도 그것이 요르단에 살고 있는 우리 유대인에겐 나은 편이였다. 아랍 연방국에서 유대인 추방은 이스라엘을 향한 보복 행위였다. 이스라엘과 아랍 연방군과의 전쟁(1947년 제 1차 중동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승리했고 이스라엘은 독립국가라고 선포한 팔레스타인 땅에서 몇 십만명에 이르는 아랍인들을 추방했다. 그것에 대한 보복 행위가  아랍 연방국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요르단이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요르단 정부는 유대인의 추방 명령을 2주 전 공식적으로 선포한 것이다. 요르단 정부가 허용한 이주 준비 기간은 한 달이었다. 그 기간이 지나면 군인들의  강제 추방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는 섬뜩한 공표가 뒤를 이었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곳을 떠나라면 도대체 우리가 갈 곳이 어디란 말인가?"

아버지의 한숨은 길게 이어졌다. 아랍 연합군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아버지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 바로 '알 나크바'(재앙의 시작)였다. 알 나크바는 결국 우리 가족을 추방하는 데까지 이르렀지만 할아버지 때부터 시작한 빵공장을 포기하는 것은 아버지로선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하산의 가족은 우리에게 특별했다. 두 가족 간의 특별한 관계의 중심에 하산이 있었다. 내가 열 세살이 되던 때였다. 유유히 흐르는 요르단 강은 생각보다 깊지 않은 듯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오였다.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던 발이 허둥거렸고 내 주위를 덮친 물속의 어둠은 순식간이었다. 내 작은 몸이 허우적거릴 따마다 어둠은 점점 더 짙어질 뿐이었다. 어둠이 끝나는 순간에 나는 나를 쳐다보는 까만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함께 내 눈에 들어오는 푸른 하늘보다 더 눈부신 것이어서 나는 그 눈동자를 제대로 쳐다볼 수 없었다. 

내가 강에서 살아 돌아온 후 아버지는 한 사람을 고용했다. 하산의 아버지가 무슬림인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빵공장에서 일하게 된 후부터 하산의 가족은 끼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고 그것이 아버지가 원한 것이었다. 하산 아버지는 제일 먼저 출근하고 제일 늦게 퇴근하는 것으로 보답했다. 하산이 열 여덟살이 되었을 때 하산을 고용할 만큼 공장은 커져 있었다. 아버지를 도와 공장에서 일하던 나는 하산과 더이상 다른 곳에서 만날 필요가 없었다. 점심 시간이 되면 하산은 구수하게 잘 구워진 빵을 접시에 담고 나를 찿았다.

낮의 고성이 사라진 밤은 조용했다.  나는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있었다. 추방, 결혼, 개종이란 단어가 떠도는 심란한 마음에는 책이 명약이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주위가 조용한 가운데 유난히 또렷하게 들렸다. 손님이 방문하기에는 늦은 밤 시간이라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었다. 아버지 역시 잠을 이루지 못한 모양이었다. 급히 문 따는 소리가 들리고 아버지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하산이었다. 나는 읽고 있던 책을 덮고 거실로 나가 하산 손을 잡았다.

"곧 추방될 사람하고 결혼이라니? 자네 지금 제 정신인가?"

밤에 문을 두드리게 할 만큼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았다. 

"제가 개종을 하겠습니다. 이슬라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 가겠습니다."

아버지는 아무 말이 없었다. 깊은 생각에 잠기는 듯  어버지는 눈을 감았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네. 일단 집으로 돌아가게."

아버지의 눈은 하산이 돌아간 후에도 오랫동안 감겨 있었다.

예루살렘이 우리가 사는 요르단에서 가장 가까운 이스라엘 도시였다. 얼마나 많은 유대인들이 그곳으로 몰려들지는 의문이었으나 일단 그것으로 이주지를 결정한 아버지는 집과 공장 사이를 오가며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공장의 소유를 하산의 아버지로 옮기는 작업은 다행히 순조롭게 진행됐다. 공장의 소유가 하산 아버지로 바뀌는 서류가 마무리 되던 날, 우리 가족은 하산의 집으로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았다. 아버지가 식탁에 앉자마자 하산이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저도 예루살렘으로 가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요."

아버지는 하산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하산 아버지는 전혀 놀라는 눈치가 아니었다.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인종도, 종교도 막지 못하는 사랑을 제가 어찌 막을 수 있겠습니까? 알라도 야훼도 둘에게 축복을 내리실 겁니다."

하산 아버지의 말이 끝나자 아버지는 식탁에 앉은 모든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하산 곁으로 다가갔다.

"내 딸을 여기 두고 떠나겠네. 내 딸의 개종도 허락하겠네."

 하산은 자리에서 일어나 아버지를 껴안고 있었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둘을 향해 걸음을 떼었다. 내 머릿속은 히잡을 쓴 내 모습이 몹시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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