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신경아 사모] 미국 동전 이야기

by admin posted Sep 1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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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맞추어 수업에 들어왔네. 아이구 착해라. 자, 여기 쿼터 (25센트)가 있다!"

"아니, 수업 중에 왜 혀를 내밀지? 이거 너무 예의 없는 것 아니야? 선생님이 갑자기 이야기 하다가 혀를 불쑥 내밀면 넌 좋겠냐?  안되겠다. 넌 오늘 패니(1센트)에 만족하거라."

"구구단 3단까지 20분 안에 외우면 보너스로 다임(10센트) 주마. 어서 열심히 외워."

물질만능주의 사회에 아이들을 동전으로 현혹시키는 교사가 여기에 있다.  

요즘 온라인 수업을 시작할 때 아이들에게 신나게 동전을 뿌리고 있다.  

파워포인트에 표를 만들어 마치 일수도장 찍어 주듯이 시간 맞추어 온라인 수업 들어오기, 친절한 태도 지니기, 과제 끝내기, 집중하기의 4가지 규칙을 잘 지키면 1센트에서 25센트 범위 내에서 동전 사진을 아이들 표에 붙여주고 있다.  

어떻게 보면 치사하고, 지나치게 행동주의 색채가 강한 방법이지만 이러한 방법을 쓰는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작년에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칠 때 나를 무척 당황스럽게 한 내용이 바로 "미국 동전"이다. 

미국 사람들은 왜 동전 하나하나에 이름을 지었을까? 그리고 동전의 종류는 왜 이렇게 많은 것인가? 자랑스런 대한민국처럼 1원, 10원 50원 100원 500원이라고 간단하게 이름을 지으면 얼마나 귀에 확 들어오고 좋겠는가 말이다. 

내 눈에는 5센트짜리 니켈이나 25센트짜리 쿼터가 비슷비슷해 보이고 발음하기조차  힘이 든다. 그러니 학습장애나 ADHD를 지닌 나의 학생들은 얼마나 힘들겠는가 말이다. 

그런데 각종 수학시험이나 진단평가를 볼 때 동전과 관련된 문제들이 10% 이상을 차지하니 동전을 아예 안 가르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덧셈, 뺄셈도 아직 헤매고 있는 아이들을 앉혀 놓고 한달 이상의 금쪽같은 시간을 이 쓸데없이 복잡하다고 느껴지는 동전 암기에 허비할 수는 없었다. 

이 문제를 놓고 고민하던 중에 문뜩 섬광처럼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착한 일이나 집중을 잘할 때마다 매번 스티커를 주는 대신에 아예 모형 동전을 주어야 겠다는 생각이였다. 

매주 학생들이 모은 동전을 합산하여 금액에 따라 2주에 한번씩 금요일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색칠공부, 컴퓨터 게임, 레고, 보드게임 등을 선택해서 할 수 있게 해주어야겠고 계획을 세웠다. 

이렇게 멋지고 찬란한 계획을 세웠는데, 그만 코로나 사태가 터져서 모든 수업이 온라인 공간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모형 동전을 아이들에게 줄 수 없으니 궁여지책으로 구글 이미지에서 패니, 니컬, 다임, 쿼터, 1달러 사진을 구해서 잔뜩 복사, 붙여넣기를 반복하여 학생 개개인의 일수통장을 만들게 되었다. 

처음에는 약간의 혼란과 어려움이 있었다. 

무슨 일이든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면 약간의 저항과 어려움이 생기는 법이다.  

다임은 코딱지만하고 니켈은 커서 아이들이 니켈이 더 가치가 높다고 착각하는 일이 벌어졌다. 센트와 달러를 헷갈려하기도 하고, 110센트 대신에 1.1달러라고 표기하면 고개를 갸우뚱하며 몹시 억울해 하기도 하였다. 어떤 학생은 구리빛 패니가 마음에 들었는지 받고 싶은 동전을 고르라고 하면 1센트짜리 패니를 골랐다. 

그러나 요즘은 아이들이 조금씩 "돈의 맛"을 알기 시작하였다.   

5학년짜리 학생 한 명이 이 동전을 모아서 어떻게 할 것이냐는 아주 핵심적인 질문을 던졌다. 

아무 계획이 없었던 나는 순간 번뜩이는 꾀를 발휘하여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이 받은 동전은 모두 미세스신 은행에 저축해 두었다가 정상 등교 하게 되면 미세스 신 교실에서 열리는 시장에서 쇼핑할 때 쓸 수 있단다."

선생님이 달러샵에 가서 너희들이 좋아할만한 물건들을 잔뜩 사 놓고 너희들이 벌어 놓은 돈으로 쇼핑을 할 수 있게 하겠다고 장미빛 꿈을 심어 주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한 두명씩 자기가 갖고 싶은 물건들이 무엇인지를 말해 주었다.   

요즘은 아이들이 동전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자기들 동전 관리에 열심이다. 

아이들의 동전이 쌓일 때마다 걱정이 되었다. 

도대체 달러샆에서 얼마나 많은 물건을 사야 이 아이들의  쇼핑 욕구를 총족시킬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그래서 마련한 또 하나의 대책이 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정상 등교하여 "시장놀이"를 하게 되는 날, 나는 나의 교실을 "인플레이션 제국"이라고 이름 짓고, 교실 입구에 "환전소"를 마련할 계획이다.  

미세스 신의 환전소에서는 당연히 미국 동전을 헐값에 인플레이션 제국 화폐로 바꿔 줄 것이고, 아이들은 새로운 화폐를 가지고 쇼핑을 하게 될 것이다.  

워낙 환율 높고 물건값의 인플레이션이 심해서 학생들이 구매할 수 있는 물건은 몇 개 되지 않을 것이다.  

만일 나의 학생들 중에 "깨어있는 지성"을 가지고 불공정한 상황에 대해 항의를 한다면 나는 단호하게 "인플레이션"이 무엇인지 그리고 "제국"이란 무엇인지를 설명 해 줄 것이다.   

계획은 이렇게 찬란하지만 학생들이 실제로 인플레이션 제국의 쓴 맛을 경험하게 되면 어떤 분노 폭발사태가 발생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어쩌면 교육청 행동수정 전문가, 아니 행동 제압 전문가 선생님을 모시고 이것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조금 무섭기도 하다. 

 

네이버 블로그 "심기운 곳에서 꽃피우기" 운영중.  이메일 namenoshi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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