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글의 애독자라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올 가을, 학기가 시작하자 마자 나는 "참 잘했어요" 스티커 대신에 수업때마다 "미국 동전"을 학생들에게 뿌렸다.
나름대로 동전을 주는 규칙이 있다.
4가지 항목에서 좋은 태도를 보이면 컴퓨터 상에서 동전 사진을 "붙여 넣기" 기능을 이용하여 개인별로 표에 일수도장 찍듯이 붙여 주는 것이었다.
시간 맞추어 온라인 수업 들어오기, 친절한 태도 지니기, 과제 끝내기, 집중하기의 4가지 규칙을 잘 지키면 1센트에서 25센트 범위 내에서 동전 사진을 아이들 표에 붙여주었다.
스티커나 포인트를 주지 않고 돈에 환장한 사람처럼 동전을 주었던 이유는 학생들에게 동전의 종류와 액수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였다.
지난 가을에는 캘리포니아에 있는 "다#소"에 가서 예쁘고 값싼 학용품들을 대량 구매하였다. 내가 만든 온라인 쇼핑몰인 "Mrs. Shin's Well Mart"에 물건을 채워 넣기 위해서였다.
학기말에 학생들이 그동안 모아 놓은 동전을 가지고 나의 온라인 쇼핑몰에서 쇼핑을 할 수 있게 하려는 나의 야심찬 계획에서 였다.
드디어 이번주에 그동안 학생들이 모아 놓았던 동전들의 합계를 내고 "Mrs. Shin의 Well Mart"에서 학생들이 모아 놓은 동전으로 쇼핑을 하게 하였다.
첫 학기에 학생들에게 동전을 너무 남발한 탓에 학생들이 모아 놓은 돈의 액수가 너무 커져 버렸다.
어떤 학생의 경우, $50이 넘는 돈을 모았다.
쇼핑몰에 있는 물건의 개수와 종류는 한정적인데 학생들이 가진 금액은 너무 커서 꼼수를 쓸 수 밖에 없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얘들아, 선생님의 쇼핑몰에서는 미국돈은 사용하지 못하고 원화(W)만 사용할 수 있단다. 그런데 미국돈 $10은 W1이란다."
이런 말도 안돼는 꼼수를 썼다.
물건값은 원화로 표기하니 지우개, 수첩, 연필등이 모두 1원, 2원 정도의 가격이 되었다.
만일 "환전"의 꼼수를 쓰지 않았다면 지우개 하나가 $10, 과자 1봉지가 $20이라는 가격이 매겨져서 학생들의 원성이 자자했을 것이다.
그러나 환전의 꼼수로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아져서 학생들의 입에서 전혀 불만이 터져 나오지 않았다.
여기에 더하여 환전을 하는 과정에서 $10 이하의 돈은 모두 버림을 하게 되니 학생들이 모아 놓은 돈의 액수는 또 한차례 적어지게 되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환전과 버림의 과정을 겪는 통에 모두 정신이 혼미해 져서 불평을 하는 이가 없었다.
심지어 모니터 뒤에서 도끼눈을 뜨고 관찰하고 있는 엄마들 조차도 별 말이 없었다.
딱 한사람 딴지를 건 이가 있었다.
다행이 이름만 거창하고 물건은 형편없는 "미스신의 웰 마트"에 대한 "소비자 고발"은 아니었다.
자폐증을 지닌 갑돌이가 가을방학 전에 모아 놓은 동전을 "컴퓨터 게임 10분"에 그만 다 써버려서 이번 학기에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모아놓은 동전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학생들과 수학시간에 두 학기동안 각자 모은 동전을 계산하던 중에 그만 갑돌이가 지난 학기에 동전을 다 써 버렸다는 사실을 깜박하고 지난 학기와 이번 학기 동전 액수를 합산해 버렸다.
계산왕 갑돌이는 모아 놓은 돈이 $22이 넘는다고 신이 났었다.
그런데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갑돌이가 지난 학기에 컴퓨터 게임에 돈을 써 버린 생각이 났다.
다음날 수업시간에 이 사실을 말해 주니 갑돌이는 분노하고 말았다.
갑돌이가 분노를 표현하는 방법은 같은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이다.
최소 5번 이상 여차 저차 해서 너의 돈은 $22이 아니라 $10이다라고 말해 주고 선생님이 이 사실을 까먹고 있어서 정말 미안하다라고 사과도 반복해서 했건만 갑돌이는 20번 넘게 "내가 모은 동전은 $22이다"라고 외쳤다.
고장난 녹음기처럼 계속 반복되는 소리에 수업을 이어갈 수 없을 정도였다.
줌(zoom) 화면에 화난 아이들이 "선생님, 음소거를 하세요. 갑돌이 음소거를 하세요."라고 말했지만 갑돌이는 특수교육 대상자여서 집에 있지 않고 학교에서 바로 내 옆에서 수업을 받고 있다.
대면 수업을 할 때에는 음소거는 할 수 없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미국 동전 주기도 마무리를 하였다.
이제 2020년이 저물어 가고 벌써 학년의 반이 지났다.
뭣도 모르고 시작한 특수교사의 일.
이러다가 쫓겨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수십번도 했지만 벌써 2년 반이라는 세월을 써바이벌 하고 있다.
날마다 생각한다.
이것은 나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이고 가족들의 보살핌 덕이라고.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다.
어느 해 보다도 고독하고 걱정이 많은 겨울이지만 언젠가는 "세상에 이런일이 있었구나!"하며 추억하는 날이 올 것이라 기대하며 모두가 써바이벌 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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