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안수를 받고 담임 목회를 시작한 지 6년 여 되었을 시점 한 책을 만났습니다. 보통 목회를 시작하여 6년 여 되면 슬럼프가 찾아오고 교우들과의 밀월(허니문) 기간이 끝나면서 권태기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언제나 예외는 있지요.
저에게도 그런 시점이었는데,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아내가 인천 공항에서 샀다고 하며 신영복의 『강의』를 내밀었습니다. 성공회 대학교의 신영복 교수가 학교에서 동양 고전에 대하여 강의한 것을 정리하여 출판한 책이었습니다. 공자, 맹자, 노자, 장자 등의 중국 대표적 고전들을 관계론의 입장에서 풀어 쓴 것이었습니다. 교실에서 강의한 것을 정리한 책이어서 그랬는지 읽기가 쉬웠고, 동양 고전에 거의 문외한이었던 저에게 새로운 흥미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공자가 중국의 고대 민요와 시를 묶어 편찬한 『시경』(詩經)을 풀이한 부분에서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한자는 생략하고 풀어 쓴 것만 소개하겠습니다.
"풀 위에 바람이 불면 풀은 반드시 눕는다. 누가 알랴, 바람 속에서도 풀은 다시 일어서고 있다는 것을."
삶의 고난 앞에서 거친 바람에 누울 수밖에 없는 연약한 풀이지만 그러나 그 바람 속에서 풀은 다시 일어선다는 의미이지요. 성경이 말하는 고난과 거의 같은 의미였는데, 나 자신 동양 사람이어서 그랬는지 『시경』이 건네는 고난의 시구(詩句)가 가슴에 더 부딪쳐왔습니다.
그리고 『주역』(周易)을 관계론으로 풀이했는데, "띠풀을 뽑듯이 함께 가야 길하다"라는 구절을 풀이하면서는 이렇게 썼습니다. 『강의』 111 페이지입니다.
"띠풀은 잔디나 고구마처럼 뿌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풀입니다. 한 포기를 뽑으려 하면 연결되어 있는 줄기가 함께 뽑힙니다. 모든 시작은 '여럿이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국가의 창건이든, 회사 설립이든, 또는 전위 조직의 건설이든 많은 사람들의 중의(衆議)를 결집해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목회 6년 여 지나며 약간의 슬럼프에 빠져 있던 저에게 '함께 해야 한다'는 소중한 뜻을 알게 했습니다. 특히 교우들과 함께 하는 목회로 다시 시작하라는 하늘의 음성 같았습니다.
그 책을 사무실에서 밤 늦게까지 줄 치고 메모리 카드에 적으면서 마음으로 깊이 읽었던 기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강의』를 다 읽은 후 신영복 교수의 다른 책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오래 전 신학을 하기 전에 읽었던 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입니다. 박정희 군사 정권 시절 간첩으로 몰려 감옥에서 20년 20일을 보내면서 가족들에게 보낸 엽서들을 모아 엮은 책입니다.
죄수들에게 배급되는 누런 휴지 한 장, 그 한 장에 잘 못 썼다고, 아닌 것 같다고 지우면서 다시 쓴다는 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 단어 한 문장이라도 단번에 완결시키기 위해 먼저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엽서 한 장 분량의 글을 미리 머리로 쓰고 지우고 또 쓰고 지우며 완성해낸 후에 비로소 누런 종이에 펜으로 꾹꾹 눌러 적습니다.
그 책에는 정말 주옥과 같은 글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래서 한국 서간문학의 백미라 하는 것 같습니다. 그 중 몇 개만 소개한다면, 174페이지에 노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한 말입니다.
"흙을 이겨서 그릇을 만드는 경우, 그릇으로서의 쓰임새는 그릇 가운데를 비움으로써 생긴다"라고 하며 "없음(無)이 곧 쓰임(用)"이라 합니다. 그릇으로서의 쓰임새는 비움에서 시작된다는 의미, 없음이 쓰임이라는 말,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그 당시 바로 저를 위한 말이었습니다. 슬럼프라는 것은 마음의 욕망과 야망에서 빚어지는 것, 아직 저의 내면이 비워지지 않고 욕심으로 가득 차 있기에 슬럼프임을 깨닫게 했습니다. 하나님께 쓰이려면 비워야 한다는 것이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질 때 진정 예수를 따를 수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또 256페이지에 "그러므로 우리는 증오의 안 받침이 없는 사랑의 이야기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당시 목사로서 저를 가장 괴롭혔던 것이 증오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목사이기에 인내하고 참지만 그것은 고스란히 저의 내면에 증오로 응어리지고 있었습니다. 사랑한다고 하지만 증오를 품은 상태로는 그저 '직업적 사랑' 또는 형식적인 사랑일 뿐이었습니다. 결국에는 교우들에게 들통나고 말 거짓 사랑이었습니다. 목회를 그만둘 생각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신영복 교수가, 그렇게 존경스럽고 스승으로 모시고 싶어했던 그 분이 '증오의 안 받침' 없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고 말했다니! 쇼킹이었고 또 한 편 위로였습니다. '아, 이 분도 이렇구나. 내가 잘 못 된 게 아니구나' 하며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그 분이 쓴 책은 거의 다 읽었습니다. 최근에 나온 『담론-신영복의 마지막 강의』를 제외하고 그 분이 직접 쓴 책, 번역한 책, 그 분에 관해 다른 사람들이 쓴 책, 인터넷에 올려진 컬럼, 인터뷰 등 모두 읽었습니다. 인문학을 넘어서지 않고는 바른 신학 바른 설교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으로 신영복을 읽고 또 읽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2 주 전 75세로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셨을 때 많이 울었었는데, 이번 신영복 선생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가슴 먹먹하고 속으로 눈물이 흘러 내렸습니다. 몸의 한 부분이 떨어져나간 느낌이었고 '이제 어떻하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어떤 교수는 신영복 선생을 "자신을 바라보는 고요한 언어만으로 세상을 긴장시키는 사람"이라 평하였습니다. 오늘 목사로서 나 자신을 더 고요히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