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철 목사 신앙칼럼] “오직 진리를 위해서만”(2)

by 코리아포스트 posted Feb 1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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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이어 계속)

79년에 일어났던 12 . 12 사태는 결코 의로울 수 없는, 쿠테타적 사건이었음은 이미 법정에서 판가름 난 바입니다. 그럼에도 12 . 12 사태의 장본인들은 그 같은 역사의 심판에 대해 억울하다고 항변합니다. 그들은 그것만이 나라를 구하는 길이라 진심으로 믿었고, 뜬눈으로 밤을 세워가며 진지하게 열심을 다해 거사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그들의 진지성, 진심, 열심이야말로, 국헌을 짓밟고 하극상을 일으킬 수 있는 정당한 사유라 착각했고, 또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찌 이처럼 극단적인 예뿐이겠습니까? 얼마나 많은 자들이 오직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얼마나 진지하게 불법을 저지르며, 얼마나 진심으로 불의와 타협하고, 얼마나 열심히 탈법을 자행하고 있습니까? 그래서 '진심으로' 살아가는 것보다, '진리대로' 사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진리대로 살아갈 때에만 우리는 옳고 바른 길, 영원한 길 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탁명환 씨를 살해한 범인이 진리를 푯대로 삼을 때에만, 진리 없는 진심과 열심은 사람을 죽이는 폭력에 불과함을 비로소 알게 될 것입니다. 아직도 억울함을 항변하는 12 . 12의 주역들이 진리를 향할 때에만, 진리를 벗어난 진지성과 열성이란 수치스런 경거망동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목전의 작은 이득을 위해 진지하게 불법을 자행하고 있는 자들이 진리를 따라 나설 때에만, 진리와 무관한 진심과 진지성이란 실은 인생을 덧없이 갉아먹는 흉기임을 자각케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진리를 절대적 푯대로 삼아 진리대로 살 수 있습니까? 누구든지 태어날 때부터 진리를 알고, 진리를 분별하며, 진리를 따라갈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불행히도 죄인으로 태어난 인간은 그 스스로 진리를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어떻게 진리를 따라 진리대로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죄인 된 우리와 주님의 관계를 목자와 양에 비유하신 예수그리스도께서는, 오늘 본문을 통해 이렇게 대답해주고 계십니다.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허물에도 불구하고 먼저 우리를 지명하시고, 우리의 이름을 각각 개별적으로 불러 인도해 주시기에, 우리는 진리를 바라보고, 진리를 따르며, 진리대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직 자신의 진심과 열심만을 믿고서 그리스도인들을 주저 없이 핍박하던 사도 바울에게 주님께서 직접 찾아오시어, 그의 이름을 친히 불러 주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이란 바울의 옛 이름이었습니다. 

깜짝 놀란 바울이 물었습니다. "도대체 당신은 누구십니까?" 

주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이처럼 진리이신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바울에게 엄청난 변화가 생겼습니다. 진지성과 열심은 옛날 그대로였지만, 그러나 그 방향이 전혀 달라졌습니다. 자기 중심으로부터 주님 중심으로 일대 방향전환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신념이 아니라 진심으로, 그리고 열심히,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자가 되었습니다. 부르심을 받기 전에는 진심으로 그릇된 길을 달려갔으나, 부르심에 응답한 이후의 그는 진심으로 바른 길을 걷는 바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신의 진지성과 열성만을 의지한 결과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주님을 배신했던 베드로에게도 주님께서 찾아오시어, 역시 그의 이름을 친히 불러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시몬이란 베드로의 옛 이름이었습니다. 네가 너 자신의 진지성이나 열심보다도 진리인 나를 더 의지하느냐는 물음이었습니다. 그 부르심 속에서 베드로의 방향 또한 바뀌었습니다. 진심으로, 그리고 열성을 다해, 진리를 따라가는 진리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중략)

대학 졸업과 함께, 뜻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근무해 보기 원하는 언론기관에 입사하여 25년 동안 일하면서, 오래 전부터 그 기관의 고급간부로 활동하던 한 가톨릭 신자가 얼마 전 느닷없이 사표를 던져 주위를 놀라게 했습니다. 그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저는 직장을 위해, 주어진 업무를 위해, 정말 열심히 살았습니다. 직장을 위해서라면, 윗사람의 뜻이라면, 옳고 그름을 떠나 무조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과정에, 가톨릭 신자로서 신앙의 양심과 상충되는 일이 많았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 결과 오늘의 직책과 기득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전부턴가 불현듯, 신자인 내가 그 동안 나의 인생을 덧없이 소모시켜 왔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신자로서의 내 인생을 탕진하지 않기 위해 사표를 던졌습니다."

누가 지혜로운 자입니까? 영원한 진리에 기대지 않는 인생이란 모두 소모품에 불과함을 터득하는 자입니다. 그 동안 자신의 생각과 판단에 의존하여 얼마나 진지하게 열심히 일해 왔습니까? 그 대가로 혹 부를 누리고 권력을 얻었습니까? 그러나 진리를 푯대로 삼지 않았다면, 부와 권력을 얻은 만큼 자신의 인생이 소모되었음을 잊지 마십시오. 소모되어버린 인생은, 그 대가로 얻은 세상의 것으로는 결코 회복되지 않습니다. 소모된 인생은 진리 안에서만 회복되고 부활됩니다. 오직 진리만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김찬홍 목사(주찬양교회)가 이재철 목사의 허락을 받아 이재철 목사의 책 『요한과 더불어, 네 번째 산책』 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