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철 목사 신앙칼럼] 구름 위의 태양

by 코리아포스트 posted May 01,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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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 안의 개구리에게 문제가 있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개구리는 우물 속에서 올려다 보이는 손바닥만한 하늘을 하늘의 전부로, 딛고 있는 우물 속의 바닥을 땅의 모두로 착각하며 살게 됩니다. 이 착각 속에 빠져 있는 한, 하늘과 땅에 대한 개구리의 생각과 의식은 바르고 건강할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비록 우물 속에 있다 할지라도, 이런 착각과는 무관한 개구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하늘과 땅을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한 개구리의 경우입니다. 이 천지가 얼마나 광활한지를 직접 목격한 개구리는 설령 우물 속으로 되돌아간다 해도, 그 안에서 올려다 보이는 손바닥만한 하늘을 하늘의 전부라 착각하는 우를 더 이상 범치 않습니다. 자신이 딛고 있는 바닥을 땅의 모두라 말하는 경솔함도 다시는 범치 않습니다. 우물 속에서 손바닥만한 하늘을 보면서도 끝없이 펼쳐진 하늘을 생각하고, 협소한 바닥을 통해서는 광활한 대지를 연상할 것입니다. 이 경우 개구리의 몸은 비록 우물 속에 있을지라도, 하늘과 땅에 대한 개구리의 의식은 바르고 건강하게 유지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에 대한 개구리의 의식에 관한 한, 개구리의 현재 위치가 아니라 개구리의 목격 여부가 더 중요합니다. 그에 따라 천지에 대한 개구리의 의식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22년 전(실제 44년 전), 난생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할 때의 일입니다. 그 때는 지금처럼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당시의 외무부는 여권을 발급하는 기관이라기보다는 가능한 한 여권 발급을 규제하던 기관이었습니다. 그만큼 해외여행이 어려웠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일단 여권을 발급받은 자는 출국하기까지 계속 마음이 설레게 마련이었습니다. 저라고 해서 예외일 수가 없었습니다. 신비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여권을 손에 쥔 날부터 계속 들떠 있다가, 출국 전날은 얼마나 흥분되었던지 뜬눈으로 꼬박 밤을 새웠습니다. 마침내 아침이 되어 창문을 열어젖힌 저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밤사이에 내린 폭설로 온 세상이 하얀 설국(雪國)으로 변해 있었고, 하늘은 짙은 구름으로 온통 뒤덮여 있었습니다. 빙판 길을 기다시피 하여 자동차로 김포공항에 도착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비행기가 뜰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항공사 측은 승객들의 전화번호를 일일이 확인한 뒤, 오후에라도 제설 작업이 끝나 비행기 이륙이 가능하면 개별적으로 연락해 줄 터이니 집에서 대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트렁크를 들고 집으로 되돌아오는 심정이 얼마나 허탈했었는지 모릅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자 항공사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오후 4시에 비행기가 출발할 예정이니 3시까지 공항에 나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에 맞춰 다시 공항으로 향하면서도 마음속의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짙은 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구름이 가시지 않는 한 비행기 이륙은 불가능할 것 같아 보였습니다. 수속을 끝내고 비행기에 탑승하여 좌석에 앉았지만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금방이라도, "비행기가 뜰 수 없으니 다시 돌아가십시오"라는 안내방송이 나올 것만 같았습니다. 드디어 비행기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전속력으로 활주로를 질주하던 비행기가 마침내 이륙하여 하늘 위로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기체가 짙은 구름층을 뚫고 올라가지 그 곳은 구름 아래쪽보다 훨씬 밝았습니다. 위로는 아래쪽의 짙은 구름과는 달리 하얀 구름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잠시 후 비행기는 그 구름층을 통과하였습니다. 그 곳은 훨씬 더 밝았습니다. 그 위쪽에는 홑이불처럼 얇은 구름이 마치 손에 잡힐 듯 깔려 있었습니다. 비행기는 그 세 번째 구름층마저 뚫고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온 세상이 갑자기 환해졌습니다. 위로는 티 한 점 없는 파아란 하늘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고, 그 한가운데 태양이 눈부시도록 빛나고 있었습니다. 눈에 뒤덮인 지상에 비한다면 하늘 위의 광경은 경탄 그 자체였습니다. 그 때 갑자기 제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그 때엔 믿음이 깊지 않았음에도, 언제나 나와 함께 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그 하늘 위에서 너무나도 강하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무서운 비바람이 이 땅을 휩쓸 때, 가공스러운 눈보라가 휘몰아칠 때, 그 순간에도 구름 위에서 변함없이 빛나고 있는 태양을 절실하게 경험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자와 태양에 대한 생각이 같을 수 없습니다. 그의 눈에는 휘몰아치는 비바람이나 눈보라가 아무리 무섭고, 하늘을 뒤덮은 먹구름이 검은 휘장처럼 짙고 두텁다 할지라도, 바로 그 위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는 아름다운 태양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태양을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자는 비바람은 일시적이나 태양은 영원함을 아는 자요, 영원한 태양이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처럼, 일시적인 비바람이나 눈보라 역시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하나님의 유익한 선물임을 깨닫고 그 양자를 모두 감사하는 자입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순간조차도 실은 태양이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 것처럼, 나의 목자 되시며 양의 문 되시는 주님께서는 언제나 나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단지 죄라는 구름, 불신이라는 구름, 욕망이란 구름에 눈이 가려 주님을 뵙지 못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그분은 변함없는 사랑으로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이 사랑, 그 사랑의 주님을 단 한 번만이라도 절실하게 보고 느끼고 확인한 자는 그렇지 못한 자와 생각이나 의식이 같을 수 없습니다. 그는 인생의 어떤 혹한이나 질곡 속에서도 주님께서 나의 목자로, 나의 양의 문으로, 나와 함께하고 계심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인생에 때로 몰아닥치는 비바람이나 눈보라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심에도 비바람이 몰아친다면, 그것은 나를 파멸시키려 하심이 아니라 나를 더 바르게, 더 굳세게, 더 강하게 세우시려는 주님의 은총임을 아는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변함없이 빛을 발하는 구름 위의 태양을 본적이 없는 자, 항상 나와 함께하시고 동행하시는 주님을 뵌 적이 없는 자, 그래서 땅 위의 비바람과 인생의 눈보라에만 연연하는 자는 설령 이 땅 위에서 크고 많은 인간적 업적을 남겼다 할지라도, 그는 우물 안의 개구리일 수밖에 없습니다. 나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보지 않고서는 결코 바른 삶, 참된 삶, 진리의 삶, 영원한 삶을 영위할 수가 없습니다. -김찬홍 목사(주찬양교회)가 이재철 목사의 허락을 받아 이재철 목사의 책 『요한과 더불어 - 네 번째 산책』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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