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홍 목사의 삶과 신앙] 집착

by 코리아포스트 posted May 1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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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재수생 아들을 둔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내내 학교에서 상위권에 들었던 아이였는데 수능 시험 결과는 예상을 빗나간 훨씬 낮은 점수였습니다. 풀이 죽어 돌아오는 아이에게 아버지는 실수는 누구나 있는 법이라고, 기회는 다시 만들면 된다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고는 있지만 아버지는 속으로 그런 말은 그저 형식적인 말일 뿐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한동안 패닉 상태에 빠져 지냈습니다. 아버지도 속이 상하긴 마찬가지였지만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시험 결과보다 자폐아처럼 방에 처박혀 시간을 죽이는 아이의 모습이 더 못마땅해졌습니다. 그렇다고 상심해 있는 아이에게 맞대놓고 감정을 드러낼 수는 없었고 그저 속으로 끓고 있는 열불을 참아내야만 했습니다. 속에서 타오르기 시작한 열불은 점점 집요하게 기회를 엿보며 바깥으로 바깥으로 그 불길을 드러내려 하였습니다. 

그러다 기어코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어느 모임에 갔다가 과하게 마신 술로 인해 아버지는 아이와 아내에게 무지막지한 폭언을 쏟아내고 말았습니다.

사건이 터진 다음 날 아버지는 무작정 집을 나섰습니다. 상심한 마음을 다독이기 위해서였지요. 목적지도 없이 어찌어찌 가다 보니 밤늦게 땅끝마을 바닷가에 당도하게 되었습니다. 한 민박집에 들어 잠을 청하였는데 이런저런 생각들로 인해 한 잠도 들 수 없었습니다. 감은 눈의 망막 속으로 살아온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습니다.

가난에 시달리며 살았던 지난 시절 신분상승의 유일한 통로는 교육이었습니다. 모든 부모들이 그러하였듯, 그의 부모 역시 자식에게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누구보다 열성으로 자식을 몰아부쳤습니다. 어머니가 십분 이해되고 고맙기는 했지만 그러나 그것은 어머니의 지나친 욕심이라 여겼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결코 자식에게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 원하는 대로 마음껏 누리며 살아가게 하리라 결심하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고 아이가 자라면서 그를 향한 자신의 행태 역시 어머님이 하던 식 그대로였습니다. 삼류대학 나온 나처럼 괄시받지 않고 살려면 넌 반드시 좋은 대학 가야 한다, 그러면서 자식을 닦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행태의 결과가 아들과 아내에게 쏟아부은 폭언이었습니다.

시인 이재무 씨의 수필집에 나온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인데, 이렇게 끝을 맺고 있습니다. 

"아직 나는 자신이 없다. 내가 아이에 대한 집착을 완전히 버렸는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다. 다만 내 과도한 집착이 오히려 아이의 성적에 누가 될까 봐 참고 있다고 하는 편이 솔직한 내 심정일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여태도 아이를 소유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얼마나 무섭고 집요한 병인가. 사흘 후 나올 아이 성적표에 나는 과연 태연할 수 있을 것인가. 다시 울컥이라는 짐승이 몸 밖으로 뛰쳐나오는 것은 아닐까. 작년 일을 떠올리며 나는 그 어떤 결과가 나오든지 간에 아이에게 더 이상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고 있을 따름이다."

시인은 수필에서 인간 내면에 들어 있는 '집착'이라는 것에 대해 말합니다. 


누군가를 또는 무엇인가를 소유하려는 강한 소유욕이 집착을 만듭니다. 철저한 자기중심적 죄악이지요. 자식에 대한 강한 소유욕이 집착으로 발전합니다. 아내나 남편에게 대하여도 마찬가지고요. 어떤 사회적인 위치, 명예, 성취욕, 그런 것들 역시 과하게 되면 집착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런 집착으로 자기 자신을 망치는 것은 말할 것 없고, 가족이나 주변 사람의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합니다.

이런 집착이라는 자기중심적 욕구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아무리 내려놓으려 해도 마치 여름날 먹다 버린 뼈다귀에 파리 떼 달라붙듯 집요하게 우리 주위를 맴도는 집착, 자기중심. 아무리 손으로 휘젓는다 하여도 소용없습니다. 날아간 파리가 다시 달라붙듯이, 일시적일 뿐입니다. 오히려 그러면 그럴수록 더 많은 파리 떼가 몰려들 뿐입니다.


어떻게 합니까? 어떻게 집착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크리스천들이 좋아하는 성경 구절 중에 빌립보서 4장 11절부터 13절이 있습니다. 표준새번역입니다. 

"내가 궁핍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궁핍하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나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빌립보 교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감옥에 있으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무슨 범법 행위 때문이 아니라 복음 전한다고 옥에 갇힌 것입니다. 춥고 배고프고 육신의 고통 가운데 있을 것임은 두 말할 나위 없습니다. 그러나 사도는 감옥 안에서 궁핍하지만 '나는 어떤 처지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감옥이 오히려 그에게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자족과 감사의 교실이었습니다.

'나에게 능력 주시는 분' 때문에. 능력 주시는 분 예수 때문에 그 어떤 환경 어떤 상황에서도 만족하고 자유하고 적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집착과 자기중심적 죄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와 기쁨, 감사와 만족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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