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철 목사 신앙칼럼] 마가의 매듭(2)

by 코리아포스트 posted Jul 1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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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이어 계속)

그 이후 3차 선교여행이 시작되었을 때 그의 목적지는 당연히 유럽 대륙의 그리스 반도였다. 2차 선교여행 중에 그곳에 세운 교회들을 되돌아보기 위함이었다. 3차 선교여행 도중에 바울은 자신의 생을 마지막으로 던져야 할 곳이 로마제국의 심장인 로마임을 깨달았다. 두 번씩 유럽 대륙의 그리스 반도를 찾지 않았던들 꿈꾸지도 못했을 인생 최후의 목적지였다. 그리고 마침내 바울은 인생 말년에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에 입성, 로마제국의 복음화를 위한 한 알의 밀알이 되었다.

어느 날 바울은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던 중 그 옛날 마가가 자기 인생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음을 깨달았다. 만약 1차 선교여행 당시 마가가 무책임하게 중도하차하는 잘못을 범하지 않았던들,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1차 선교여행의 코스를 좇아 2차 여행을 계속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의 선교여행 역시 소아시아 반도에 국한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책임한 마가로 인해 바울은 바나바와 결별했고, 결별한 바나바와 정반대편으로 향하다 보니 유럽 대륙 그리스 반도에까지 발길이 닿게 되었고, 그리스를 두 번씩이나 찾다 보니 당시 지중해 세계의 심장인 로마를 자기 인생 최후의 목적지로 삼게 되었다. 

그 모든 것이 마가의 덕분이었다. 마가의 무책임한 처신이 바울의 인생에 합력하여 선으로 귀결된 것이었다. 예전에는 마가의 그릇된 행위만을 보고 그를 버렸지만, 마가의 부적절한 처신을 통해 역사하시는 주님의 위대한 구원의 섭리를 바울이 뒤늦게나마 깨달은 것이었다. 그 사실을 확인한 이상 가만히 있을 바울이 아니었다. 

(중략)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몬 1:24). 

더욱이 바울은 함께 옥에 갇혀 있는 마가를 자신의 동역자라 불렀다. 나이, 경력, 인품 등 어느 모로 보나 젊은 마가는 바울과 같은 반열에 설 수 없는 자였다. 그러나 바울은 그와 화해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아예 자신의 동역자로 삼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딤후 4:11). 

디모데후서는 순교 직전의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다. 다시 말해 사도 바울이 임박한 자신의 죽음을 내다보며 이 땅에 남긴 마지막 서신이다. 그 최후의 서신을 통해 바울이 살아생전 마지막으로 만나 보기 원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마가였다. 얼마나 마가를 사랑하고 신뢰했으면, 죽기 직전의 바울이 마가를 가리켜 자신의 일에 유익한 자라 표현했겠는가? 마가로 인해 바나바와 결별할 때라면 상상치도 못할 일이었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관점이 자기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바뀌었기에 가능하였다. 자기중심의 관점으로 볼 때 1차 선교여행 시 무책임하게 중도 하차한 마가는 전혀 쓸모없는 인간이었고, 그런 인간과 동역한다는 것은 시간 낭비일 뿐이었다. 그러나 하나님 중심의 관점으로 되돌아보았을 때 마가야말로 바울의 인생행로를 새롭게 열어 준 주님의 귀한 도구요, 은혜였다. 그 사실을 깨달은 바울이 마가를 죽을 때까지 자신의 동역자로 사랑하고 신뢰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였다. 만약 바울이 이처럼 마가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마가의 매듭을 맺지 않았던들, 바울은 오늘날 성경이 전해 주는 것과 같은 위대한 사랑의 사도가 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이 마가의 매듭을 맺은 결과 마가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다음은 사도 베드로의 말이다. 

"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벧전 5:13) 

베드로는 자신의 서신을 통해 마가를 '내 아들'이라 부르고 있다. 바울의 동역자였던 마가는 바울이 순교한 뒤 베드로를 도왔다. 무식한 어부 출신인지라 헬라어나 라틴어를 할 줄 몰랐던 베드로의 통역을 담당했다. 베드로전.후서 역시 베드로를 위해 마가가 대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베드로에게 마가가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었는지는 베드로가 그를 가리켜 '내 아들'이라 부르는 것으로 잘 나타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마가는 4복음서 중의 마가복음을 기술하였다. 한마디로 마가는 초대 교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 인물이 되었다. 바울이 계속 그를 외면한 채 중용(重用)하지 않았다면 생각하기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바울이 하나님의 관점에서 마가를 재평가하고 믿음으로 마가의 매듭을 맺었을 때 마가를 통해 이루어진 주님의 섭리는 상상을 불허할 정도였다. 마가의 매듭이 중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우리 각자에게도 지난 세월 동안 여러 의미의 마가가 있었을 것이다.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끼친 마가가 있었을 수 있고, 심각하게 명예를 해친 마가와 호의를 배신으로 갚은 인면수심의 마가도 있었을 수 있다. 그로 인해 아직 밤잠을 설치고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마가를 평하는 관점을 자기중심으로부터 하나님 중심으로 바꾸어 보자. 마가가 끼친 막대한 경제적 손실로 인해 도리어 하나님과 더 가까워진 것은 아닌가? 마가가 나의 명예와 자존심을 짓밟았기에 하나님을 향한 나의 영성이 더욱 깊어지지는 않았는가? 그의 배신이 나로 하여금 이 세상에서 오직 신뢰할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심을 더 깊이 깨닫게 해 준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이제 마가의 매듭을 맺어야 한다. 그는 내 신앙의 성숙을 위해 하나님께서 사용하신 도구였다. 주저치 말고 그와 화해하며 그와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그때 그와의 관계 속에서 상상치도 못했던 주님의 섭리가 펼쳐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사람의 만남을 통해서 역사하신다.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무의미한 만남, 하찮은 사람이 없다. 마가의 매듭은 마가를 위하기 이전에 진정한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려는 나 자신을 위한 매듭이다.  


김찬홍 목사(주찬양교회)가 이재철 목사의 허락을 받아 이재철 목사의 책 『매듭 짓기』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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