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철 목사 신앙칼럼] 바른 기도

by 코리아포스트 posted Sep 24, 201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jaecheol.jpg



서기 66년 유대인들은 그들을 통치하던 로마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로마 군대는 그 반란을 무력으로 진압했고, 그 와중에 남아 있던 일단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피신하여 문을 잠그고 끝까지 항거하였습니다. 

마침내 로마의 티투스 장군은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고 그 속에 있던 유대인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유대인에 대한 티투스 장군의 증오가 얼마나 컸던지, 그는 유대인들이 신성시하던 예루살렘 성전을 철저하게 파괴, 그야말로 초토화시켰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받치고 있던 축대마저 모두 허물어 버리면서도 서쪽 축대의 일부만은 그대로 남겨 놓았습니다. 그것은, 로마의 군대는 이 세상의 그 무엇도 이처럼 철저하게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만방에 과시하기 위한 상징이었습니다. 이 때가 서기 70년이었습니다.

그 이후,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던 나라 잃은 유대인들은 이곳을 찾아와 돌벽에 이마를 대고 눈물을 흘리며, 그들의 한 많은 고통과 비통의 삶을 하나님께 호소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돌벽을 '통곡의 벽'이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1967년 6일 전쟁이 터졌을 때, 이스라엘군은 요르단이 점령하고 있던 예루살렘에 최정예 부대를 투입하여 예루살렘과 함께 통곡의 벽도 탈환하였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통곡의 벽은 유대인들이 가장 즐겨 찾는 기도의 명소입니다.

그런데 그 앞에 서면, 폭 60미터 높이 18미터의 벽을 이루고 있는 거대한 돌과 돌 사이사이가 온통 새하얗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모두 그 곳에서 기도한 사람들이 자신의 소원을 기록한 종이들을 그 틈새에 꽂아 두었기 때문입니다. 통곡의 벽이 옛날 그토록 신성하던 예루살렘 성전의 일부분인 만큼, 그 곳에서 기도하고 그 곳에다 기도문을 꽂아 두면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고 틀림없이 응답해 주시리라는 믿음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그 곳을 찾는 외국 순례자들도 거의 모두가 그 곳에 기도문을 꽂아 둡니다. 아래쪽에 꽂아 둘 자리가 없으면 물건을 타고 올라가 높은 곳에 꽂기도 합니다. 높은 곳에 꽂아 둔 사람일수록 자신의 기도가 더 높이 하나님을 향해 올라갔다는 생각으로 기뻐합니다. 

동행한 순례객들에게 그 곳에 꽂아 둔 기도문의 내용에 대해 물어 본 결과, 그 내용은 주로 자녀의 대학입시 합격, 자녀 결혼, 남편이나 본인의 사업에 관한 것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통곡의 벽을 찾아가 드리는 기도, 그 돌벽 사이에 꽂아 둔 종이 위에 적힌 기도를 더 기뻐하시고 더 응답해 주신다면, 돈이 없어 일평생 통곡의 벽을 찾아갈 수 없는 가난한 자들의 기도는 그만큼 덜 응답된다는 말입니까? 

오히려 성경은,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과부들과 불쌍한 고아들을 더 사랑하시고 그들의 기도에 더 귀 기울이신다고 밝혀 주고 있습니다. 

(중략)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저희 부부는 개인적으로 돈을 모으지 않습니다. 때로 살다 보면 목돈이 필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경우에도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을 못미더워서가 아닙니다. 백 퍼센트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제가 구하지 아니해도 제게 있어야 할 것을 미리 아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제게 필요한 것이라면 하나님의 방법으로 반드시 이루어 주시고, 불필요한 것이면 기도해도 허락지 않으심을 지나온 세월 동안의 경험으로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아이들은 그 동안 한 방에서 자라 왔습니다. 그런데 위의 두 아이들의 학년이 높아 가면서, 늘 공부에 방해가 되는 어린 동생들과 떨어진 자기들만의 공부방을 갖기를 원했습니다. 또 다른 집 아이들처럼 침대와 어린이용 책상도 갖기를 원했습니다. 아이들에게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것은 부모의 도리라 생각했지만, 그러나 그것은 적지 않은 돈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습니다.

몇 주 전에 전화를 한 통화 받았습니다. 옛날 제가 경영하던 회사에서 근무하다가 15년 전에 퇴사한 사람입니다. 꼭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15년 만에 저희 집에서 만났습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던 그가 주머니에서 봉투를 하나 꺼내면서, 옛날 제게 입힌 금전적 피해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라는 돈이지만, 이 정도라도 갚지 않고서는 도저히 편히 살 수가 없어 가져왔으니 받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다 보니 모든 것이 기억났습니다. 그는 15년 전 상당한 금액의 회사 공금을 횡령했던 자였습니다. 그는 신학대학 출신이었고, 아버지는 가난한 농부였습니다. 그는 돈을 갚을 능력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의 장래를 생각해서 모든 것을 불문에 붙이고 제 개인 돈으로 그가 횡령한 공금을 변제해 넣었습니다. 그 뒤 그는 자진 퇴사를 했고 저는 그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습니다. 그가 15년 만에 전화를 하고 제 앞에 나타났을 때에도 그 예전 일은 기억조차 못했습니다. 그가 두고 간 봉투 속에는 놀랍게도, 아이들의 공부방을 꾸미기 위해 필요한 금액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액수의 돈이 들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정확한 분입니다. 나를 위해서는 구하지 아니해도 이처럼 완벽하게 준비해 주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당신의 자식 삼으신 우리 아버지시기 때문입니다. 이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다면, 진정 우리 기도의 내용은 이제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우리 기도의 범주를 결코 벗어나지 못합니다. 인간은 현재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을 위해 기도하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이기적인 기도로 일관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목표가 지극히 이기적임을 의미합니다. 이런 기도를 드리는 사람이 많을수록 인간 사이의 다툼과 분쟁은 더욱 심화되기 마련입니다.


김찬홍 목사(주찬양교회)가 이재철 목사의 허락을 받아 이재철 목사의 책 『요한과 더불어 제 5권』 에서 발췌


Articles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