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훈 목사] 사막은 은혜의 땅 3

by 코리아포스트 posted Sep 24,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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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조서 만들 때 누가 뭐라고 하든지 조서 내용을 네 눈으로 직접 확인해야 한다. 너 같은 녀석은 곧바로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을 거니까 내 말을 꼭 명심해라."

구치소에서 재판을 대기하며 미결수로 기다리고 있던 시간은 참으로 무료하고 답답한 시간이었다. 감옥에는 외부로 향한 작은 창문 하나가 벽 높은 곳에 있었다. 가끔씩 그 창문가에 참새들이 날아와서 마음껏 지저귀다가 마음이 내키면 다른 곳으로 날아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참새가 너무도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롭게 행동하고, 가고 싶은 곳을 찾아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자유가 그렇게 크고 고마운 것이라는 사실을 감옥 안에 있으면서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한 일 주일 정도가 지난 후 드디어 호출이 왔다.

'내가 왜 여기를 들어왔나.'

마음 속으로 다시 한 번 되새기면서 검사실로 들어갔다. 방에는 사복 차림의 형사 그리고 군인 분위기가 물신 풍기는 다른 2명의 건장한 사람이 역시 사복 차림으로 있었다.

"이름이 김태훈 맞나?"

"예."

"얼마 동안이나 선량한 사람들을 찾아가서 공갈 협박하는 건달짓을 하면서 살았나?"

"무슨 말씀이시죠?"

"시치미 떼도 소용없다. 이미 너를 동네 깡패로 고소한 사람들이 있으니까."

"아니, 누가 나를 동네 깡패라고 합니까?"

"글쎄,고소한 사람이 있으니까 네가 구치소까지 들어온 것이 아니겠냐고. 긴 말할 시간 없으니까 조서에 지장이나 찍 어. 순순히 조서에 지장을 찍으면 좋은 일이 있을 테니까 알아서 하라고."

"조서 내용을 한 번 읽어볼 수 있습니까? 그리고 난 후에 지장을 찍겠습니다. 그리고 정식 재판을 받게 해주십시오. 이런 식으로 사람을 무조건 죄인으로 몰아세우는 데서는 아무 것도 안 하겠습니다."

"아니,이 새끼가 아직 주둥이만 살아가지고,정식 재판 같은 소리하고 자빠져 있네"

조서 내용을 직접 보겠다는 말 한마디에 갑자기 욕설이 퍼부어지더니 방 안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이 새끼가 깡패 건달 주제에 하라는 대로 하지 않고 무슨 이래라 저래라 말이 많아. 이 새끼, 정신이 바짝 나게 한 번 맛 좀 보여 줘라."

잽싸게 사복 차림의 형사와 군인이 동시에 팔을 뒤로 잡아채더니 구둣발로 정강이를 사정없이 걷어차기 시작했다. 비명을 지를 틈도 없었다. 뼈가 쪼개지는 듯한 날카로운 통증에 자칫하면 정신을 잃을 뻔했다. 그런 와중에 그들은 조서를 들고 팔을 잡아끌어 강제로 지장을 찍게 했다. 그 조서 안에 무슨 내용이 적혀 있는지도 모르는 채 나는 결국 강제로 그 조서 내용에 동의한다는 지장을 찍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 날 10여 대의 버스가 구치소에 도착했고 완전무장한 계엄군인들에 의해 공포 분위기를 느끼는 가운데 어디론가 강제 이송되고 있었다. 재판도 받지 못한 채 끌려가고 있던 것이었다. 지금은 세상 이 좋아졌지만 1980년대에는 군사 정권이 개인의 자유를 빼앗을 수 있었다. 6시간 정도는 족히 버스가 달려온 것 같다. 버스 안에서 여러 차례 내 손으로 여기저기를 심하게 꼬집어보기도 했다. 제발 현실이 아니라 꿈이기를 바랐다. 이런 악몽이라면 정말 빨리 깨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서 살점이 떨어져 나가도록 허벅지를 꼬집어보기도 했는데 현실은 현실이었다. 마음 속으로는 정말 간절하게 이 모든 일들이 꿈이기를 바랐는데... 아직 동이 트기도 전인 새벽 미명에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밤새도록 어디론가 달려온 버스는 구치소 수감자들을 군부대 연병장에 쏟아 놓고 마치 청소차가 할 일을 다하고 쓰레기 하차장을 빠져 나가는 것처럼 사라져 버렸다. 버스에서 내릴 때부터 주위에 서 있던 군인들은 말끝마다 욕설이었다. 연병장 중앙에 고장난 로봇처럼 어정쩡하게 서 있던 사람들에게 군복이 한 벌씩 지급되었다. 옷의 크기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무조건 지급된 군복 안에 자신의 몸을 맞춰 집어넣어야 했다. 배가 남산만큼 나온 사람이 조그만 군복을 지급받아 배꼽이 볼썽 사납게 불거져 나왔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땅콩처럼 조그마한 사람이 큰 군복을 받아서 완전히 쌀푸대 속에 아이가 들어가 있는것과 같은 그런 웃지못할 모습을 하고 있기도 했다. 군복으로 갈아입힌 후에는 일제히 바리깡으로 머리를 삭발시켰다. 긴머리가 땅으로 뚝뚝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어떤 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했다. 그 옆에서 함께 흐느끼던 사람은 남자녀석이 계집애처럼 질질 눈물을 흘린다고 붙잡혀가서 기절할 정도까지 구타를 당했다. 머리를 깎는 바리깡은 머리털을 자르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털을 뽑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얼마나 난폭하게 바리깡을 밀어대는지 가끔씩 머리 살점이 머리털과 함께 떨어져 나오면서 머리에서 피가 줄줄 흘러 내리기도 했다. 그래도 어느 한 사람 말을 할 수 없었다. 버스에서 내린 순간부터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절대 함구령이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함께 도착한 사람들은 모두 300-400명 정도는 족히 되어 보였다. 머리를 모두 삭발시킨 뒤에는 5개조로 사람들을 나눠서 합판 조각으로 엉성하게 야전 침대를 만들어 놓은 막사 안으로 각각 나눠서 배치를 시켰다. 그리고 아침 해가 제법 높이 올라 왔을 때 쯤 막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다시 연병장으로 집합시키더니 소속군대 고위 장교 쯤으로 보이는 사람이 일장 훈시를 시작했다.

"여러분들은 사회에 올바로 적응하지 못하고 많은 문제들을 일으킨 연유로 인해서 오늘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당신들은 이곳에서 정신과 육체를 말끔히 순화하고 사회에 온전히 적응할 수 있도록 집중훈련을 받은 후, 순화교육 평가에 따라 빠르면 4주 이내에 다시 사회로 복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니 한순간도 다른 생각하지 말과 이번 순화교육을 통해 새로운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되길 바란다. 국가는 여러분들이 사회를 혼란시키는 사회악이 아니라 앞으로는 사회의 발전과 건설에 앞장서는 건전한 사람들이 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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