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더 테레사는 1910년 마케도니아 아드리아 해변 마을인 스코플례에서 태어났습니다. 12세에 성소(Holy Calling)라는 거룩한 부르심의 소명을 받고 18세에 가족과 고국을 떠나 로레토 수녀회에 입회합니다. 그때 이후 1차 2차 세계 대전과 동서 냉전의 시대를 거치면서 마더 테레사는 어머니 드라나필을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됩니다. 어머니가 계시던 고국 알바니아가 공산권 국가가 됨으로 인해 모녀는 1972년 어머니가 죽을 때까지 서로 만나고 싶어도 만나지 못하는 운명이 됩니다. 그러나 소녀 테레사에게 끼친 어머니의 영향력은 참으로 지대했습니다.
마더 테레사는 8살 때 아버지를 잃게 되는데, 갑작스런 아버지의 죽음은 특히 어머니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막내 마더 테레사가 8살이었고, 아들 라자르가 11살, 큰 딸 아가가 14살이었는데, 이들 세 자녀의 교육과 온 집안의 의식주를 해결하는 일은 어머니에게 참으로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굳굳하게 해냈고, 또 그 어려운 중에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나누며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며 보여주었습니다. 마더 테레사는 나중까지도 어머니가 하신 말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데, "함께 기도하는 가족은 함께 머문다"는 말이나, "누군가에게 좋은 일을 할 때는 말없이 하여라. 바닷물 속에 돌을 던지듯 말이다"와 같은 말입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사과 한 바구니를 가져왔습니다. 아이들을 다 불러모아 사과들을 살펴보게 했습니다. 세 남매는 사과가 아주 맛있게 잘 익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성한 사과들 사이에 썩은 사과 몇 개를 듬성듬성 집어넣었습니다. 뚜껑을 닫고 방에 이틀을 보관한 뒤 아이들을 다시 불러모았습니다. 과연 사과가 어떻게 되었는지 살펴보라고 하시면서요.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썩은 사과 가까이 있던 사과들은 모두 상했거나 상하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사과도 광주리 안에 있던 사과는 먹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때 어머니가 중요한 가르침을 주세요. 마더 테레사는 이때의 가르침을 나중까지 잊지 않게 되는데, 이런 말씀이었습니다.
"얘들아, 너희는 참 착한 아이들이다.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지. 하지만 나쁜 사람들과 어울리는 그 순간부터 이 사과들처럼 상하기 시작할거다. 그러니 사람을 사귈 때는 신중하여라."
평범하고 단순한 가르침이지요. 그리 어렵지 않은 교훈입니다. 그러나 하루하루 먹을 것을 염려하며 살았던 가족이었거든요. 산다기 보다는 생존하고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할 수 있었던 가난한 삶이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사과 한 바구니를 썩게 하면서까지 일깨워주셨던 그 어머니의 교훈은 열살 남짓이었던 소녀 테레사에게 참으로 귀중한 교훈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나쁜 사람들과 어울리는 그 순간부터 이 사과들처럼 상하기 시작할거다. 그러니 사람을 사귈 때는 신중하여라."
스탈린에 대한 일화 가운데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한번은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모인 앞에서 스탈린이 닭 한 마리를 안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닭털을 한 개씩 뽑기 시작했습니다. 완전히 알몸뚱이가 될 때까지 그 닭의 털을 다 뽑았습니다. 피로 얼룩진 닭을 바닥에 집어 던졌습니다. 그리고 모이를 조금씩 던져 줍니다. 놀라운 것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닭은 피를 뚝뚝 흘리면서 모이를 좇아 스탈린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스탈린 책상 아래까지 따라와서 모이를 쪼아댔어요. 털이 다 뽑힌 그 고통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먹을 것만 좇고 있는 닭. 스탈린은 주위를 돌아보며 간단한 연설을 했습니다.
"여러분 보았습니까! 닭은 고통스럽지만 먹이를 주고 있는 사람을 따르고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통을 주어도 먹을 것을 같이 던져주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공산당 전략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먹을 것만 던져주면 고통이 있어도 먹이를 좇는 인간의 원초적 탐욕, 배만 불려주면 어떤 식으로든 이용해 먹을 수 있다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인간의 미련한 욕망을 철저히 이용하는 스탈린의 공산화 전략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둘러보십시오. 아니 우리 자신을 보십시오. 돈만 된다면 무엇이든, 그 과정이나 방법은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누룩처럼 탐욕은 인간을 썩게 하며 세상에 퍼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을 누룩과 같은 존재라고 비난하시며 제자들에게 저들을 멀리하고 조심하라고 하십니다. 저들은 결국 주님을 십자가에 죽게까지 했습니다. 오늘 우리를 썩게 만드는 것, 탐욕과 이기심, 멀리하고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썩은 사과 옆에 있을 때 같이 썩어버리듯, 탐욕과 이기심에 가득한 사람과 같이 있기를 반복한다면 결국 탐욕과 이기심에 사로잡히고 말 것입니다. 누구와 사귈 것인지 신중하게 살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