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훈 목사] 사막은 은혜의 땅 29

by 코리아포스트 posted Mar 1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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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는 신학교를 졸업한 후 이러한 목회의 진실을 깨닫지 못하고 명예와 학벌, 교단 정치와 같은 헛된 것만을 추구 하며 시간을 낭비했다. 그때를 돌이켜 보면 정말 낯이 뜨거워진다. 아니 눈이 멀어도 유분수지, 어떻게 그렇게까지 학벌과 명예욕에 사로잡혀 다른 것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을까. 또한 하나님께서는 그런 나의 모습을 내려다보시면서 얼마나 가슴 아파하셨을까. 당신의 종이라고 기름 부어서 목사로까지 세우셨는데, 하라는 영혼 구원 사역은 뒷전에 미뤄두고 명예와 감투 싸움, 교단 정치에만 모든 정신이 팔려 있던 한심한 나를 보며 하나님이 얼마나 답답해하셨을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찔할 뿐이다. 나는 이 시대에 혹시라도 나와 같이 영적 불감증, 명예 걸식증에 시달리고 있는 주의 종들이 있다면 나의 이런 솔직한 고백이 도전이 되길 바란다. 내 마음 속에 깊이깊이 묻어 두었던, 드러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과거의 어리석은 일들을 대기 중으로 내어 놓는 순간, 내 안의 곪고 썩어 들어가던 상처가 치유되는 것을 경험했다. 상처는 역시 공기 중에 노출되어야 아무는 법이다.

모로코 왕국의 왕자가 뉴욕에 유학 와 있는 동안 내가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장로님의 태권도장에서 태권도를 배우게 되었다. 블랙 벨트를 받을 때까지 거의 3년 동안 왕자에게 태권도를 성의껏 전수했던 태권도 사범 장로님과 모로코 왕자는 그 후에도 사부와 제자지간으로 아주 가까운 관계가 되었다. 그런 연유로 모로코 왕국을 가끔씩 드나들곤 했던 태권도 사범 장로님이 하루는 아주 중요한 비즈니스 정보를 가지고 왔다면서 나를 한번 만나자는 것이었다. 비즈니스 정보라면 사업하는 사람을 만나야 할 터인데 왜 목 사인 나를 보자고 하는 것인지 의아스러우면서도 오랜만에 얼굴도 볼 겸 맨해튼 식당에서 장로님을 만나기로 했다.

"목사님, 기도를 많이 해주셔야 될 일이 생겼습니다. 제가 모로코 왕자와 사제지간인 것을 알고 계시죠."

"예."

"이번에 모로코를 방문하고 있는 동안 왕자의 비서되는 사람이 한국의 현대중공업과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냐고 물어 보지 않겠어요. 그래서 잘 아는 사람이 있는데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입이 떡 벌어지는 말을 했습니다."

"그래요? 그게 뭔데요."

"다름이 아니라 모로코에서 이번에 항만 시설을 대폭 개선하는 공사를 계획하고 있는데 이 항만에 설치할 대형 포크레인 공사를 어느 업체에게 맡길지 고민 중에 있다는 것입니다."

"근데 장로님이 현대중공업에 연줄이 있습니까?"

"아니요, 그래서 목사님을 뵙자고 했습니다. 목사님이 워낙 발이 넓고 주위에 아는 사람이 많으시니까 혹시 현대중공업 측에 연결할 수 있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해서요."

"그런데 우리가 현대중공업 관계자들을 연결시켜 준다고 해도 반드시 낙찰이 현대 쪽으로 된다는 보장이 없지 않습니까?"

"저도 그 점이 의심스러워서 비서와 오랫동안 이야기를 했고 왕자와도 따로 저녁 식사를 나누면서 의견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일단 우리가 추천한 업체에 우선권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현대중공업에 대한 이미지가 상당히 좋아서 여러 가지로 유리한 상황입니다."

"그럼 낙찰이 될 확률이 높은 편이네요."

"예, 목사님. 그럼, 우리 오늘부터 열심히 기도하면서 현대 중공업의 문을 두드려 보도록 하지요."

황당무계한 이야기 같았지만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판단이 들어서 현대 본사 측에 직접 연락을 했다. 그런데 의외로 본사 이사님이라는 분이 큰 관심을 보이면서 빠른 시일 내에 한국에서 회의를 갖자고 연락이 왔다. 나는 장로님께 곧바로 연락을 드리고 그 다음 날로 1등석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황급히 입국했다. 로비스트 목사로서 김태훈의 커리어가 시작되는 것 같은 야릇한 기대감에 젖어들었다. 현대 측과 이틀 동안 연석회의를 가진 후, 모로코 왕자와의 면담 날짜가 결정되는 대로 팀을 조직해서 현지에 가기로 합의했다.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나와 장로님은 먼저 모로코에 도착해서 왕자의 비서를 통해 우선 현대 본사 측의 뜻을 전했다. 그리고 항만 시설 보수공사의 실무 책임자와 협상회의 날짜를 정해서 현대 측에 통보했다. 현대 본사에서는 이사님을 위시해서 4명의 직원이 팀을 구성해서 모로코에 도착했다. 그때 나는 한국 최고의 대기업 직원들의 전문성과 철저한 준비성에 크게 감탄했다.

'아,역시 대기업이 되는데는 나름대로 이유와 그 원인이 분명히 있구나.'

현대 측에서는 회사를 소개하는 멀티미디어 프레젠테이션을 포함해서 본사에서 설치할 수 있는 포크레인의 용량과 규모, 그리고 성공적인 해외 대형 수주 사례들을 아주 완벽하게 브리핑 했다. 왕자의 실무 책임자들도 모두 현대 측의 브리핑에 만족하는 분위기였고 이제 일주일 내로 계약서에 서명하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날 밤 침대에 누워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현대 본사에서 나라는 사람을 도대체 어떻게 믿고 모로코까지 실무책임자와 4명의 직원을 파송할 수 있었는지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명함에는 후원으로 얻은 박사 학위, 신학교 이사 등의 그럴듯한 직함들이 가득 적혀 있기는 했지만 그것을 곧이곧대로 믿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이렇게 된 것은 하나님의 역사하심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었다.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인간적인 목사에 의해 애매하 게 매도당하는 순간이었다. 목사로서 뉴욕 한구석에 개척한 교회에 대해서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성도들도 생각나지 않았고, 다음 주에 무슨 말씀을 전할 것인지, 누구에게 말씀을 부탁해야 하는지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서 실성한 사람처럼 실실 웃음 지으면서 마치 약에 취한 사람처럼 그렇게 하룻밤을 거의 꼬박 새다시피 했다. 

"목사님,지금 빨리 호텔 로비로 내려오세요."

밤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새벽녘에 겨우 잠들었던 것 같았는데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아침 단잠에서 깨어났다.

"장로님, 무슨 일입니까?"

"좀 긴급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지금 빨리 현대 본사 사람들과 함께 왕자를 만나야 될 것 같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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