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훈 목사] 사막은 은혜의 땅 32

by 코리아포스트 posted Apr 0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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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난감한 상황이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기도를 많이 해왔는데 나는 기도 시간부터 더 늘리고 하나님 앞에 더욱 간절히 기도했다.

"하나님, 제가 혹시 잘못한 것이 있나요? 그렇다면 그 모든 것을 스스로 깨닫게 하시고 철저히 회개하게 해 주시옵소서. 하나님, 상가 건물을 조속히 처분할 수 있도록 사람을 보내 주시옵소서."

내 기도만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뉴욕에서 잘 알고 지내던 목사님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서 중보 기도를 부탁했다. 나는 주의 종들의 중보기도의 힘을 확실히 믿고 있었다. 주의 종들이 설사 자신의 행실에 문제가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받은 종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영적 권위가 있기 때문에 저들의 기도는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영적인 힘이 실려 있는 것이다. 여러 목사님들에게 현재 상황을 전하고 기도 부탁을 했다.

"목사님, 우리 식구들이 애리조나에 와서 잘 지내고 있는데, 지금 상가 건물이 제때 팔리지 않으면 좀 어려운 상황이 될 처지에 있습니다. 꼭 기억하고 기도해 주세요."

그렇게 말씀드리면 어떤 목사님은 물질에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라고 권면의 말을 해주시는 분도 있었고, 어떤 목사님은 두말하지 않고 전화를 통해서 그 자리에서 중보의 기도를 해주시는 분도 있었다. 나는 기도만이 이런 어려움을 이겨나갈 통로라는 확신이 있었다. 한번은 시카고에서 사역하고 있던 목사님께 전화를 걸어서 중보기도를 부탁하려고 했는데, 그 목사님은 더 이상 교회에서 사역하지 않으셨고 다른 목사님이 전화를 받으셨다. 사실 얼굴도 모르고 그 목사님에 대해서 알고 있는 점도 없었지만 주의 종이라는 한 가지 사실만 확인하고 전화로 중보기도를 부탁했던 기억이 있다. 나에게는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주의 종들의 중보기도가 필요했다. 나는 물질에 지나치게 욕심을 부렸던 적은 없다. 지금도 물질에 특별한 욕심을 부리지는 않는다. 옛날에 가난하게 살았던 것이 지긋지긋하게 기억나는 때는 있지만, 그렇다고 물질을 갖기 위해서 게걸스럽게 욕심을 부린 적은 없었다. 나는 부동산 거래에 대해서, 기술에 대해서 배워 본 적은 없지만 몇 번 거래 를 직접 성사시키면서 부동사 거래 절차에 있어서 중요한 점들을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물질에 욕심을 부리는 것과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물질적인 복을 내 것으로 잘 받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상가 건물 거래가 이제 일주일 안에 성사되지 않으면 땅을 구입하기로 하고 걸었던 계약금을 그냥 날리게 될 형편이었다. 땅 주인은 불과 몇 달 사이었지만 땅값이 또 뛰어오르자 은근히 계약이 깨졌으면 했다. 그렇지만 나와 아내의 마음 가운데는 하나님께서 이 거래도 반드시 성사시켜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단지 그 방법은 아직까지 알 수 없었고 그 길도 보이 지 않았다. 나는 계속해서 아는 분들에게 중보기도만 열심히 부탁드리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의 해결이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방법으로 다가왔다. 당시 우리 상가 건물 거래를 맡고 있던 부동산 에이전트 가 우리의 상황을 알고 일정 이자만 받고 30만 달러를 빌려주겠다는 제안을 해왔다. 처음에는 믿어지지 않았다. 이 사람이 부동산 에이전트인데 우리에게 뭘 믿고 빌려주겠다는 건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에이전트가 계산에 귀신처럼 밝은 유대인이라는 점에서 믿어지지 않았다.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내가 영어가 좀 짧아서 그러는데 다시 한 번 말해 주겠습니까?"

"그냥 내 마음에 당신들을 도와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내 친척들 중에 은행 CD 어카운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CD를 취소하고 현금으로 한 30만 달러 정도를 당분간 유통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계산을 해보니까 이자는 한 5천 달러 정도 될 것 같고 원금 환수는 상가 건물 거래가 성사되면 돌려 주는 조건으로 돈을 빌려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너무도 놀라서 대답도 제대로 할 수 없었지만 간신히 그렇게 하자고 이야기해 놓고 집에 돌아와서 나와 아내는 기도하면서 펑펑 울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 그 유대인 에이전트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으면 도무지 불가능한 일이 현실로 일어나게 된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에이전트가 친척들을 통해 급전한 30만 달러를 가지고 땅 구입 계약을 완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상가 건물 구입자가 타주에서 나타나서 좋은 조건에 건물 매매를 마칠 수 있었다. 거래를 다 마치고 난 후 알게 되었지만 우리를 도와주었던 유대인 에이전트는 유대교에서 개신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인해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을 우리 주변에 두고 계셨다가 급박한 상황 가운데 처하게 되었을 때 그들을 통해 도움의 손길을 마련해 주셨다. 하나님의 방법은 인간의 생각과 지혜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신묘막측한 것이다.

물질적인 복은 영적 메마름의 지름길이다. 기독교 역사를 돌이켜 보면 물질적인 복과 영적 풍요함은 많은 경우에 반비례 곡선을 긋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물질적으로 받은 복을 잘못 활용하거나, 물질의 풍요함에 안주하기 시작하면 영적으로 메말라가기 때문이다. 오히려 물질적인 가난함이 영적으로는 풍요함을 경험케 하는 좋은 토양이다. 그래서 중세시대 때 많은 수도사들은 풍요와 육신적인 안락함을 떠나 의도적으로 극도의 가난함과 육체적인 고행의 길을 걸음으로써 영적인 풍요함을 누리고, 하나님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했다. 한국의 예를 봐도 그렇다. 한국이 잘살기 시작한 것은 불과 십수 년 전의 일이다. 1960-1970년대 한국의 형편을 돌이켜 보면 전국 곳곳이 빈민촌이었고, 끼니를 제때 찾아 먹는 것이 가장 큰 일이었다. 오죽하면 "식사하셨습니까?"라고 물어보는 것이 일종의 안부 인사가 되었겠는가. 한국은 현재 영적으로 심각한 질병을 앓고 있다. 물질적으로 엄청난 풍요를 누리게 된 반면, 영적으로는 망가질 대로 망가져 버린 것이다. 목회자들의 윤리의식에 큰 구멍이 뚫렸고, 성도들도 교회와 세상 사이에서 이중인격이라는 가면을 뒤집어쓰고 가식과 위선으로 살아가면서 심신이 피곤하다. 사회적으론 반기독교 세력이 판치고 있다. 안티 기독교 운동으로 불리고 있는 이런 일련의 움직임은 익명의 공간인 사이버 세계, 인터넷을 통해서 바이러스처럼 확산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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