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훈 목사] 사막은 은혜의 땅 36

by 코리아포스트 posted May 0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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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올해 칠순을 넘기시는데 이제는 예수님을 꼭 영접하셨으면 합니다. 성경 말씀에 보면 모든 사람이 태어났다가 반드시 죽게 되는데 죽은 뒤에는 심판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진심으로 형님이 천국에 들어가게 되시길 바랍니다."

전화기 저편에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전화기를 내려놓지도 않았다.

"형님, 마음 가운데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하시고 이제부터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교회에 출석하시면서 신앙생활을 시 작하시면 좋은 일들이 있을 겁니다."

또다시 긴 정적감이 전화기를 통해서 전해졌다.

"너 목사된 지 얼마나 됐냐?"

"1995년도에 안수 받았으니까 어느덧 10년 된 것 같습니다."

"그래, 목사로 일하면서 나를 위해서도 기도했던 적이 있었냐."

"물론이죠, 형님."

"정말이냐?"

"예."

"알았다. 한번 교회에 나가보도록 하지."

그리고는 늘 하던 것처럼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나는 조금 전에 형님이 자신의 입으로 했던 말이 좀처럼 믿어지지 않았다.

"그래, 한번 교회에 나가 보도록 하지."

보통 때 같았으면 또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고함부터 지르고 전화를 끊었을 형님인데 생전 처음으로 내 말에 귀를 기울였던 것이다. 나는 울먹이며 아내에게 말했다.

"여보, 둘째 형님이 교회에 나가 보시겠다고 했어. 우리 계속 형님 가족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자고."

마음 속에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끓어올랐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주의 종으로 부르셨다. 내가 주의 종이 되기로 결정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었다. 나를 주의 종으로 부르신 이는 분명히 하나님이셨다. 그리고 그 분은 당신의 때에 당신의 방법으로 당신이 세우신 사람들을 통해 일을 이뤄 나가신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이다. 삼청교육대의 지옥훈련 경험을 하게 하셨던 것도 이제는 왜 그런 끔찍한 일을 겪게 하셨는지 이해가 된다. 삼청교육대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면서 하나님께서는 내게 갇힌 자들을 돌보고 위로하라는 감동을 주셨다. 그동안 관심 없이 그냥 지나쳐 버렸던 부분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안개에 가려져 있던 거대한 산이 바람이 불어 안개가 걷히며 그 위용을 서서히 드러내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성령의 바람은 나의 영혼을 감싸고 있던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안개를   한순간에 몰아내 주었다. 이제는 내가 가야 할 길, 내가 생명을 바쳐 해야 될 장래의 사역들이 환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갇힌 자들은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다. 그들에게 예수님의 복음이 제대로 떨어지기만 하면 그보다 더 좋은 토양이 없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이 땅 위에서 사역을 하시던 동안에도 특별히 옥에 갇히고 억압받는 계층을 위해 많은 관심을 보이셨고 그들을 위한 사역을 많이 하셨다. 예수님의 관심은 세상의 지식을 많이 쌓고 부를 누리고 있는 기득권층에 있지 않았다. 예수님은 가난한 자, 애통해 하는 자, 갇힌자, 심령이 가난한 자, 지식이 없는 자들에게 사역의 초점을 맞추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눅 4:18).

그런데 교회들은 어떠한가. 가난하고 실력이 없고, 사회적 지위도 낮은 사람들은 철저히 무시당하고 오히려 사회적 지위 가 높고 재력도 단단한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도 행세를 하고 있다. 또한 그들이 담임목사의 총애를 받으면서 교회 생활을 즐기는 것이 오늘날 많은 교회들의 모습은 아닐까. 우리는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 자신을 돌이켜 보면서 예수님의 원칙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갇힌 자, 병든 자, 연로한 자들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져야 한다. 갇힌 자들에 대한 사역은 기독교인들에게 항상 중요한 사역 중의 하나였다. 4세기 기독교 사학자로서 지금까지 당시 기독교 문화와 관련된 가장 많은 사학적 자료들을 남기고 있는 기독교 역사학자 유세비우스는 당시 기독교인들의 삶에 관해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교회 내 형제자매들 중에 갇힌 자가 있을 때 주일에 남녀 모든 회중이 이들과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드리며 찬송을 부르면서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는 성찬식을 먼저 거행했다. 그리고 옥에 있는 형제를 위한 합심기도를 하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왜냐하면 옥에 갇힌 자들은 옷도 제대로 못 입고, 음식도 공급받지 못했다. 그래서 오로지 외부에서 그들을 방문하는 가족, 친척들에 의해 먹을 것을 공급받고 근근이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 기독교인들은 그 형제, 자매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가지고 있는 크고 작은 것들, 귀한 음식들을 아낌 없이 나누었다."

예수의 가르침대로 초대교회 성도들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형제, 자매들을 위해 자신의 것을 열심히 나누는 그런 거룩한 마음을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 아름다운 행동들이 있었기에 초대교회 시대 때 사자 굴에 던져지고 산 채로 나무에 매달려 화형을 당하는 감당하기 힘든 환난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교회가 나날이 늘어나고 믿는 자들의 수가 갑절로 계속 늘어나는 강한 생명력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이었다. 오네시모는 무익한 자에서 하나님의 사역에 쓰임받는 유익한 자로 변신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오네시모는 노예로 있던 집에서 물건을 홈쳐 도망했다가 로마의 옥에 갇혀 있는 동안 사도 사울을 만났다. 그 후 오네시모는 예수의 복음을 통해 새롭게 중생하는 경험을 하고, 바울의 도움으로 옛 주인을 찾아가 용서를 받았다. 그 후에는 바울의 충실한 제자로서 그의 이름대로 유익한 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오네시모라는 이름은 유익 또는 이익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저희가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 게 하리라"(골 4:9).

나는 성령의 조명을 새롭게 받으면서 이 시대의 오네시모가 되리라는 결단을 했다. 나는 오네시모와 같이 무익하고 주인의 집에 있는 물건들을 도적질했던 사람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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