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홍 목사의 삶과 신앙] 大辯若訥(대변약눌)

by 코리아포스트 posted Feb 1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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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로 "매우 말 잘하는 것은 말을 더듬는 것 같다"는 뜻입니다. 

중국 고전 명언 사전에는 그 뜻을 풀이하여 "위대한 웅변은 더듬거리는 말과 같아서 많은 말을 하지 않는다. 많은 말을 하지 않고도 사람들을 마음으로부터 복종시키므로 가장 말을 잘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군자는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묻는 제자에게 공자는 '말을 더듬는 사람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말을 뱉어놓고 그대로 하지 못할 것을 염려하다 보니 말을 더듬는다는 것이죠. 

군자, 즉 도를 깨우치고 어떤 경지에 이른 사람은 그렇습니다. 

실천할 수 있는가를 살피며 말을 합니다.

영화배우 오달수 씨에게 비슷한 일화가 있습니다. 

서른 살 생일에 부산에 있는 아버지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이번 생일에는 집에 내려오라는 것입니다. 

바쁜 촬영을 뒤로 하고 집에 가서 아버지에게 큰 절을 하며 낳아주신 은혜 감사하다고 하는데,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달수야, 너도 이제는 서른이니 말을 더듬어라.' 

수많은 영화에서 조연을 하며 능수능란한 언어를 구사하던 오달수였는데, 아버지가 '너도 이제 서른이 되었으니, 생각하며 진중하게 실천할 수 있는 말을 하라'는 당부였지요.

작년 10월 초 교회 청년들과 그랜드캐년을 등반했습니다. 

보통 금요일 오후에 올라가 다음 날 새벽에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세 팀으로 나누어 출발하는데, Full Course 팀, Indian Garden 팀, 그리고 초보자 팀으로 각각 출발 시간이 다릅니다. 

저는 Full Course 팀으로 새벽 5시에 내려가기 시작하여 협곡 바닥에 있는 콜로라도 강물을 보고 다시 올라왔습니다.

Bright Angel Trail로 내려가서 South Kaibab Trail로 올라왔는데, 정상에 닿았을 때 오후 2시 20분이었습니다. 

South Kaibab은 경사가 급해서 보통 올라오기 보다는 내려가는 코스로 잡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반대로 South Kaibab으로 올라왔습니다. 

당연히 힘들었고 막판 1시간 정도는 한 발 한 발 옮길 때마다 온 몸의 힘을 다 모아야 할 정도였습니다.

내려갈 때 보았던 Bright Angel은 장관이었습니다. 

주로 올라오기만 했지 내려가 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장관이었습니다. 

그랜드캐년을 중국 말로 대협곡(大峽谷)이라 하는데, 그야말로 대협곡이었습니다. 

'이래서 세계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관광지의 첫 번째이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9시간 여 대협곡을 횡단하면서 침묵을 배웠습니다. 

대협곡이라는 거대한 자연 앞에 할 말을 잃었습니다. 

동행하던 교우들과 얼마 후부터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았고, 특히 올라올 때는 거의 혼자 침묵하며 걸었습니다. 

올라온 후에도 등반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내에게 약간의 느낌을 말했을 뿐, 그렇게 많이 말하지 않았습니다. 

어땠냐고 물어오는 동료 목사님들에게도 별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과거에는 자랑하듯 말을 많이 하고 다녔는데 이번에는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저 자신이 이상할 정도였습니다.

손석희 씨가 진행하는 JTBC 뉴스를 자주 듣습니다. 

한국 소식을 정확하고 공정하게 들을 수 있는 방송이라는 생각에서입니다. 

몇 주 전 성추행 당한 사실을 드러내는 여자 검사와 인터뷰를 하면서 멈칫 멈칫 말이 끊기는 손석희 씨를 보았습니다. 

할 말을 잊은 듯 보이기도 했고, 분노를 참는 듯 머뭇거리는 손석희 씨였습니다. 

그래서 방송인 중 손석희 씨를 가장 신뢰합니다. 

말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과 실천을 담은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말에는 졸하다"(not a trained speaker)하며 자신의 서툰 말솜씨를 인정하는 사도 바울이(고린도후서 11:6), 자신의 어리석게 들리는 설교를 통해 오히려 하나님은 믿는 사람을 구원하신다고 확신합니다(고린도전서 1:21). 

언행일치, 대변약눌(大辯若訥), 특별히 사람을 믿음으로 이끌고 구원받게 하는 언어생활이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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