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홍 목사의 삶과 신앙] 섭리

by 코리아포스트 posted May 0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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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수업』의 저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뉴욕에서 1500여 명의 청중에게 강연한 후, 수백 명의 독자들이 로스의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서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로스는 비행기 시간 때문에 기다리던 사람 모두에게 사인을 해 줄 수 없었습니다. 적당한 시간에 사인을 중단하고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허둥지둥 공항 청사 안으로 들어갔는데 다행히 비행기 출발 시간이 15분 늦춰졌습니다. 

로스는 강연 내내 화장실에 가고 싶었던 것을 꾹꾹 참았는데, 잠깐 남는 시간에 화장실을 갈 수 있었습니다.

변기에 앉아 있는데 누군가가 밖에서 말을 걸었습니다. 

"로스 박사님, 괜찮으시다면 …."

'무슨 일이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벌써 로스가 쓴 책 한 권과 펜이 화장실 문 아래 틈으로 들어왔습니다. 

로스는 좀 짜증이 났습니다. 

그래서, "아니요, 괜찮지 않습니다" 하며 일단 책은 받아 들었습니다.

변기에 앉아서 곧바로 사인을 해서 다시 문 아래로 건네줄 수 있었는데, 도대체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했습니다. 밖에 나와 보니 뜻밖에도 수녀 한 분이 서 있었습니다. 

로스는 퉁명스런 말투로 "당신을 절대 잊지 못할 겁니다" 하면서 사인을 해 주었습니다. '어떻게 화장실에서 제대로 볼 일도 못 보게 방해할 수 있죠!' 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았습니다. 

그러자 수녀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너무나 감사해요. 이건 하나님의 은총이에요."

로스는 모든 게 싫었습니다. 그것도 화장실에서 말입니다. 

수녀는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책 그대로 이렇습니다.

"제 동료 수녀가 지금 병상에서 죽어가고 있어요. 그녀는 박사님의 강연 날을 손꼽아 기다렸어요. 너무나도 오고 싶어 했지만 몸이 아파서 올 수가 없었어요. 저는 그녀를 위해 무엇인가 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박사님의 강연을 대신 듣고, 녹음을 하고, 또 박사님이 친필로 사인하신 책을 선물하려고 했어요. 그것이 친구에게 얼마나 소중한 기념이 될지 알기 때문에 한 시간 넘게 줄을 서서 기다렸어요. 그런데 제 앞으로 몇 사람 남지 않았을 때, 박사님은 떠나셔야만 했어요. 박사님의 사인을 받기 위해 제 힘이 닿는 한도 내에서 온갖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안타깝게 기회를 놓치고 말았어요. 박사님이 이 화장실로 들어오시는 걸 본 순간, 제가 왜 이 상황을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생각했는지 이제 이해하시겠어요?"

그녀는 엘리자베스 로스가 어디로 갈지, 비행기로 갈지 자동차로 갈지, 비행기로 간다면 어느 공항으로 갈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로스와 화장실에서 마주쳤을 때 정말 그녀는 너무도 놀랐을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로스는 책에서, 이 경험을 통해 세상에 우연이란 없으며 모든 것은 하나님의 치밀하신 계획과 섭리 가운데 일어난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독서하면서 적어놓는 메모 카드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알람시계가 우리를 깨운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를 깨우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보통 알람을 맞추고 우리 스스로 일어나는 시간을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몇 시에 일어나서 어디에 가고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하며 내 걸음을 내가 계획하고 결정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알람시계 뒤에 더 큰 분의 시계가 있습니다. 

내 삶의 이정표 뒤에 더 큰 이정표, 더 큰 그림이 있습니다. 

알람시계를 맞추는 것은 자유입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그 배후에, 나의 계획 나의 지식 나의 걸음 나의 알람, 그 배후에 훨씬 더 큰 그림, 훨씬 더 큰 손길, 훨씬 더 큰 섭리가 있다는 사실을. 

지난주간 판문점에서 이루어진 남북 정상 회담 영상들을 보고 또 보고 있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지루하지 않고 흥분과 감격이 여전합니다. 

목사로서 가장 뭉클했던 장면은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을 보내고 난 후 잠시 하늘을 물끄러미 응시했던 장면입니다. 

'아, 저 분이 하늘의 섭리를 믿으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면서 감사한 마음에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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