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와 이란을 가다 (9) 영원한 불꽃 하페즈 시인 -이영범 박사

by 코리아포스트 posted Jan 18, 201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new11.JPG


1) 그 많은 시간이 흘렀어도 태양은 지구에게 네가 나에게 빚을 졌다고 말하지 않는다. 보라 그와 같은 사랑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그것이 온 하늘을 덮지 않았느냐?

2) 네 눈으로부터 그 부드러움을 쏟아내라. 마치 태양이 따뜻하게 땅을 쳐다 보듯이.

3) 피하거라. 너의 귀한 싹트는 날개에 힘을 실어주지 못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피하거라. 

4)우리가 말하는 것들이 우리가 사는 집이 된단다.

5) 그것이 무엇이던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기쁨을 주는 그것들에게 가까이 서거라.

6) 사랑은 하늘과 땅이 창조되기 전에 존재해 있었단다.

7) 이 하늘 네가 사는 이 하늘 그곳은 너의 날개를 잃어서는 안되는 곳이다. 그래서 사랑 사랑 사랑이다.

8) 행복이 너의 이름을 알게 된 이후 행복은 너를 찾으려고 온 땅을 헤매였단다.

9) 모든 어린이들이 알아야 하는 신은 "안된다"하는 신이 아니요 이상한 짓을 하는 신은 더욱 아니다. 그 신은 네 마디 말만 알고 그 말만을 되풀이 하는 신이어야 한다. "오라 나와 춤을 추자" "오라 나와 춤을 추자" "나와 함께 춤을 추자"   

10) 길가는 아저씨가 주막집 할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구원으로 가는 길이 어디 있습니까? 술잔을 들고 할아버지는 말했습니다. "그 길은 남의 잘못을 말하지 않는 곳이란다."

(하페즈)


하페즈 시를 접하고 그가 태어나고 자라고 사랑하며 살다가 가버린 그의 고향 이란의 쉬라즈를 찾게 된 것은 말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 이곳은 하페즈 뿐 아니라 또 유명했던 쉬라즈의 시인 사디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단데와 함께 다빈치 미켈란젤로 위대한 조각가와 문인들이 한 시대에 모였던 이태리의 프로렌스 도시를 연상케도 한다.

한국 사람이 김소월 시인을 사랑하듯이 독일 사람이 괴테를 잊지 못하듯이 이란 사람들은 하페즈 시인을 정말 사랑한다. 집집마다 두 권의 책이 있다. 하나는 코란경 또 하나는 하페즈의 시집이라고 한다. 결혼식에 참석했었던 그 날, 한 여인이 하페즈의 시를 낭독하는 것을 나는 보았다.


하페즈(Hafez)는 1325년경 슈리아즈에서 태어난 이란의 대시인이다. 그는 술과 사랑을 노래한 시인이며 진리와 자유를 말하며 종교적 위선을 상징적으로 지적한 시인이었다. 이란 사람들은 그의 시를 가슴으로 배우고 말씀을 생활에 활용한다. 

섣달 그믐이 되면 꿈 많은 소녀들은 수북히 담긴 과일 접시를 준비하고 노래하며 명상을 한뒤에 각자가 마치 제비뽑기 하듯 임의로 책을 펴고 시를 뽑는다. 거기에 나타난 시를 가슴에 담고 새해를 사는 것이다. 그들은 서로의 뽑은 시를 나눈다. 그 말씀은 새해를 위한 묵시이며 다음 해의 행운을 말해주는 예언이기도 하다. 지식인들은 코란경 보다 그의 시를 더 많이 읽는다. 문학자들은 그의 작품이 이란의 문학에 최고봉이라고 평가한다. 

머리가 명석하여 코란 한 권을 다 외워 버린 천재소년이라는 이야기와 어린시절 부자촌에 아침에 빵을 배달하는 일을 하였는데 그때 부잣집 한 여인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는 기록 외에 그의 개인적 삶에 대한 기록은 희박하다. 그는 자기 보다 앞서간 시인 루미(1201), 사디(1210)와 같은 대가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이들 시인은 서피(Sufi Mystics) 신비주의적 시인으로 구별되는데 이들은 진리라는 것은 논리나 이성으로만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계시와 영적 체험으로 이루어 지는 것을 강조한다. 

그는 600여편의 시를 남겼는데 하늘에 대한 사랑을 말로 표현했다. 그리고 취하도록 하나가 되는 노래를 불렀다. 술 이야기, 술 주정뱅이 그리고 여인이 그의 시에는 자주 등장한다. 이것들은 사랑의 주제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그는 비유를 사용하여 이란 사람의 복잡한 정체성을 아름다운 팔시(Farsi)의 언어로 구사해 나갔다. 그의 천부적 문학적 표현력과 단어의 선택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인구 백 오십만의 쉬라즈 도시 중심에 아름다운 역사적 정원이 있다. 크기는 가로와 세로가 각각 아마 1킬로미터가 넘는 큰 공간이다. 입구에 가까운 벽에 그의 저서들이 진열되어 있다. 사람 키보다 높은 크기로 하페즈가 지은 저서들을 모형으로 만든 것이다. 두드려 봤더니 쇠소리가 났다. 이 정원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 가는 곳으로 하페즈의 정원 또는 쉬라즈 정원이라고 부른다. 그 정문 반대편에는 하페즈 경기장이 보였다. 공원 안에 팔각형의 정자가 있고, 그 가운데에 돌로 지은 관이 있고, 그 안에 하페즈 시인의 시신이 지난 600년의 세월 속에 안치되어 있었다. 오늘도 시민들은 줄을 지어 그를 찾아 오고 있다.

이 넓은 공간에 오래된 소나무가 여기 저기 있고, 아름다운 장미밭이 있고, 아이들이 발을 담그는 물터도 있다. 오렌지의 향기가 은은히 퍼져온다. 시집을 옆에 끼고 연애를 하러 온 젊은이도 있고 그의 시를 읽는 사람들, 시와 문학을 논하는 문학가들이 있다. 정치에 짜증이 나는 시민들이 답답함을 토해내는 그룹들도 있다. 막막한 인생의 갈림길에서 산자가 죽은 시인에게 길을 물으러 온 여인도 있었다. 그 여인은 무덤가를 뱅뱅 돌고 관 위에 손을 얹고 시인의 책을 펼치고 그 속에서 위로의 경구를 발견한다. 해가 지고 어둠이 오면 불꽃들이 무덤의 주위를 비추이고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고 시를 외우며 밤의 축제는 열기를 더해 간다.   

그 시대의 슈자(Shah Shuja) 왕은 그의 시를 사랑했다. 또 다른 유명 시인 사디(Saadi)와 함께 하페즈의 시는 쉬라지 도시에 문화의 꽃을 피웠으며 그의 시는 국경을 넘어 여러 나라로 퍼져 나갔다. 괴테는 "그를 대적할 시인이 없다" 하였고, 그의 시를 영어로 번역한 에멀슨은 그를 "시인 중에 시인"이라 하였다. 니체도 그의 시를 읽고 감화를 받았다고 한다. 

시인이 죽은 후에도 융숭한 대접과 시민들의 존경을 받는 나라! 그에게 큰 무덤을 만들어 주고 공원을 지어주는 나라! 나는 깊은 인상을 받았다. 더 놀란 것은 10세기 경에 유명했던 시인 페르도시(Ferdosi 940 AD) 시인의 돌무덤은 성경에도 나오는 고레스(Cyrus) 대왕의 무덤보다도 더 큰 것이다. 그 왕은 이웃에 많은 나라들을 정복하고 고대 페르시아 대제국을 건설한 대단한 왕이었다. 물론 대왕의 돌무덤은 기원전 500년경에 세워진 것이고 시인의 무덤은 그 분의 탄생 1000년을 기념하는 1933년에 4년 공사를 마치고 완성 된것이다. 그래도 여기서 이란 백성들의 시인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지어진 문화유산을 찾아 볼 수 있다. 하페즈 시인이 종교의 강권시대 그리고 혁명시대에도 살아남은 것은 그를 아끼는 시민들의 마음을 뺏어 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에 이사야와 에레미아 선지자가 있었듯이 이란에는 시인 사디와 하페즈가 있다. 시를 사랑하고 시인이 존경받는 나라는 아무리 나라가 어려워도 진리와 자유를 찾는 그들의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홀로 하여 보았다.

끝으로 인상깊게 읽었던 하페즈의 시 한 편을 선사해본다.


너무 많이 배웠다.(I have learned so much)

나는 신으로부터 너무 많은 것을 배워서 이제는 나를 알 수가 없다

기독교 힌두교 무슬림교 불교 유대교 그 많은 진리가 나를 공유했다

이제 나는 남자 여자 천사 아니 순결한 영혼이라고 나를 부를 수 없다

사랑이 하페즈를 온전히 싸고 덮어서 나는 재(Ash)로 변하고

내 마음이 알았던 모든 생각과 영상에서 나를 자유케 하였다

-Daniel Lindsky의 영문 번역책 'Gift'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