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와 이란을 가다 (10) 영광의 유적지: 펄세포리스 -이영범 박사

by 코리아포스트 posted Jan 1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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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이 트고  밝아 오는 아침이 좋다. 안식의 밤이 지나간 것이다. 새로운 역사의 하루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아직도 아침의 단잠을 자는 아내의 얼굴은 행복해 보인다. 조용히 커튼을 치켜들고 산 언덕 위 10 층 호텔방에서 보이는 쉬라즈의 도시는 무척 조용하고 신선해 보인다.

오늘은 2500년 전 페르샤 제국의 궁전이 있는 펄세포리스(Persepolis)시를 답사 하는 날이다. 여기서는 미니 버스를 빌리면 운전기사도 보낸다. 잘생긴 기사님은 영어를 모르고 나는 이란의 말 팔시(Farsi)를 모르니 말을 못하고 버스 뒷자석에 아내와 함께 앉아서 달리는 차에서 창밖을 내다 본다. 나무가 없는 돌산 그리고 사막이 지나고 이따금 농장이 보인다. 

첫번째 목적지는 가이루스(Cyrus) 왕 때의 옛 도읍터  파사그라데(Pasagradae)다. 이 왕은 많은 나라를 정복하며 인류 최초의 제국을 건설했는데 바빌론을 정복하고  4만 명의 유대인들을 이스라엘에 돌려보내는 이야기는 성경에도 나온다.(에스라 1:2-4 고레스 왕으로 번역됨) 이 도읍터는 지금은 도시라기 보다는 조그만 한 부락에 불과 하나 수백 에이커에 이르는 유적지는 보호구역으로 약 20점의 유적들이 여기저기 흐트져 있다. 그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가이루스 대왕의 2500년된 돌 무덤이었다. 돌로 7 계단을 쌓아 올린 단 위에 돌집을 지어 놓고 그 안에 시신을 안치하여 놓은 것이다.  그 후 수많은 전쟁을 치르고 수많은 왕조가 흥하고 망했지만 그 역사를 지켜보며 이 무덤은 오늘에까지 현존하고 있다.          

두번째 목적지는 거기서 멀지 않은 곳 Naqsh-e_Rusta에 제왕들의 네 무덤이 있는 곳을 찾았다. 이 무덤은 가이루스 왕의 것과 대조가 된다. 큰 돌산을 깎아서 조각으로 장식을 하고 굴을 뚫어서 무덤을 만들어 왕들의 시신을 모셨다. 그 중의 하나가 다리우스(Darious) 대왕의 무덤이다. 그 왕이 곧 펄세포리스 궁전을 지어 당대 최대의 제왕으로 군림하여 영화를 누렸던 분이다.

서기 7세기 전 아케메니드(Achaemenid) 왕이 최초의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하였다. 그의 증손자 가이루스 2세가 왕이 되면서 영토를 넓히어 남으로는 파키스탄, 북으로는 지금의 터키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그가 전쟁에서 사망하자 나라를 차지한 다리우스 1세 대왕은 수도를 펄세포리스로 옮기고, 왕중의 왕으로 자처한 그는 산턱에 가로 세로 450미터 X 300미터의 대지에 12개의 궁을 지었다. 그가 처음 지은 궁은 아파다나(Apadana) 궁으로 그의 위대함을 빛내는 가장 크고 잘 지은 궁으로 그의 생존에 사용할 수 있었다. 많은 건물들은 30년의 긴 세월을 걸쳐 그의 아들 제렉스(Xerxes) 대왕 때에, 또는 그의 손주 알타제렉스(Artaxerxes III) 때에 완성이 된다.  200년 영화를 누리던 이 궁들이 기원 전 300년에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대왕의 침공을 받으면서 그 궁들이 초토화되어 버리고 지금은 빈 터에 기둥들과 부서진 건물의 잔재가 앙상하게 남아 있다. 

남아 있는 벽이나 건물구조에서는 여러 가지 그림들이 조각으로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란의 귀족들, 임금님의 행차, 불멸의 일 만의 페르샤 장병, 힘을 상징하는 큰 짐승들, 여러 나라에서 찾아온 왕들의 행렬과 가지고 온 선물들, 이런 것들은 그 시대의 이야기들을 후대 자손들에게 알려준다.  

현재 남아 있는 대계단은 펄세포리탄 계단이라고도 하는데 궁은 20미터(66피트 , 약 5층 건물 높이) 축대 위에 지어져 있음으로 여기에 올라가도록 지은 계단인데  111개의 계단으로 그 계단의 높이가 4인치 정도로 아주 낮게 되어 있다. 

여기서 잠깐 상상해 보자.  

세계에서 모여든 28개국 나라의 왕들이 페르샤 왕 제렉스(Xerxes)를 문안하러 입궁을 한다. 차례대로 돌로 된 여러 계단을 밟고 올라가고 나즈막한 계단을 조심스러운 몸가짐으로 올라가야 하니 갖가지 색의 긴 예복을 입고 천천희 올라가는 그 모습은 점잖고 우아하고 멋있어 보였을 것이다. 계속 올라가다 보면 넓은 공간이 나오고 방향을 바꾸어서 돌문을 향해서 걸어간다.

이 문을 열방의 문(Gate of All Land)이라고 한다. 이 문은 5층 건물 높이의 네모 형 두 탑이 묵중하게 양쪽으로 서 있는데 이 탑에는 살아 움직이는 듯한 힘센 큰 황소가 조각되어 있다. 소는 보호와 번성의 상징이기도 하다. 안쪽 탑의 상부에는 고대 페르샤 말과 바빌론 의 말로 "페르샤의 왕, 왕 중의 왕, 세계의 왕, 여러 나라의 왕, 다리우스 왕의 아들 제럭스 …"이라고 각인되어 있다. 이 문을 지나자 25x25미터(1미터는 3.3 피드) 넓이의 방이 있고 이 방은 더 넓은 방으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의 방이다. 이 방은 16.5 미터 높이의 네 기둥으로 지붕을 받들고 있는데 다행이 세 기둥이 보존되고 있다. 그 기둥을 자세히 보면 맨 위에는 힘을 자랑하는 두 황소가 궁둥이를 맞대고 있는 큼직한 조각품이 얹혀 있다. 이것이 완성된 시기는 제렉스 대왕의 시절 490-470 BC경으로 추측된다.

먼 여행길에 여기까지 와 열방의 문에서 웅장한 환영을 받으며 여러 나라 왕들과 교제하는 것을 상상해보자.

폐허가 된 옛 궁터를 보고 여행자들은 그 내용을 알 수가 없다. 다만 학자들의 설명으로 이해를 해보게 된다. 

1931년에 발굴 책임을 맡은 독일의 고고학자에 의하면 아파다나 궁전은 다리우스의 왕을 위하여 지은 곳으로 가장 크고 화려했다. 중앙홀에는 1만 명의 손님까지도 수용될 수 있는 가장 큰 건물이며 그 주위에 동서남북으로 조그만 방(Portico) 들이 있었다. 이 궁의 기둥 높이는 25미터가 되며 72개의 기둥 가운데 현재 14개가 남아서 빈 터 위에 굳굳하게 서있다. 2500년 전 페르샤 사람들은 무슨 힘과 재주로 이런 궁전을 지었을까? 또, 대를 이어서 짓는 그 지구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이 홀에서 한 때는 페르시아 제국의 대왕이 각 나라에서 온 왕들의 인사를 받으며 대왕의 위엄과 힘을 과시하였을 것이다.

서기 300년 전에 알렉산더 대왕이 페르샤를 침공하면서 그는 2만 마리의 노새와 5000마리의 낙타에 금은 보화를 약탈하여 본국에 보내고 페리세폴리 궁전은 불살러 버리어 그 화려했던 궁들이 초토화되어 버렸다. 이렇게 220(550-300 BC)년 영화를 누리던 페르샤 제국은 무너지고 알렉산더 대왕이 3년 후 죽자 그의 영토를 일부 접령하게 된 희랍의 셀루시드(Seleucid) 장군이 그 세력을 페르샤에까지 펼치면서 160년 간의 통치를 하게 되는데, 이때 페르샤 사람들은 희랍문화의 영향을 받게 된다.(312-162 BC). 페르샤 역사에 획기적 사건은 아마도 아랍의 침략으로 이루어진 415년 간(637-1050 AD)의 통치에서 페르샤가 이슬람 국가로 된 것이다. 

팔레비샤 정권 시절 페르샤는 그 이름을 이란으로 바꾸었고 1980년 이란은 세계 최초의 이슬람 공화국이 된다. 이 제도에서는 대통령이 통치를 하지만 최후의 권한은 이슬람교 최고 지도자에게 있다. 

이제 고대의 광활한 영토는 사라졌지만 세계 최초의 제국을 이루었던 자부심은 아직도 이란 사람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살아 움직이고 있다.